[운명을 바꾸는 선택]‘사람을 버리지 마라! 무기인(無棄人)’, 노자의 강력한 외침
기사입력 2012.03.29 11:53:07
기사입력 2012.03.29 11:53:07
‘한 명의 천재가 수십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말이 있다. 일반 직원들과 엄청난 차이가 나는 급여를 주면서라도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을 스카우트 해 오면 그 사람으로 인하여 만명, 십만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일명 ‘천재경영론’이다.
이 화두는 적절한 검증 없이 거의 정설로 굳어지는 것 같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총수의 언급으로 언론에서 수없이 다룬 화두이며, 언론이 이를 기정 사실화시키고 있다. 허나 기정사실화는 강요된 진실, 거짓된 진실 같아서 선뜻 받아들기에 힘들다. 더욱이 천재경영의 이면에는 천재가 아닌 사람의 위치가 대충 짐작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민을 2500여년 전 역사상 천재인 노자에게 조심스럽게 토로했다.
‘도를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도가 아니다’라면서 말하기를 꺼리는 노자에게서 별다른 말을 들을 것이라고는 내심 생각지 못했다. 허나 노자는 뜻밖의 강력한 화두를 제시했다.
“무기인(無棄人).”
“사람을 버리지 말라는 말입니까.”
“세상에는 버려질 만큼 필요 없는 사람은 없다네. 훌륭한 사람은 재능에 따라 사람을 쓰고, 항상 각자의 소질을 발견하여 개발시킴으로써 필요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네.”
무기인의 핵심은 사람을 잘 관찰하여 각각의 재능을 이해하고, 그 재능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3세기경 노장학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중국 위나라의 왕필은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성인은 외형적인 이름이나 율법을 세워서 사물을 구속하는 법이 없고 진보의 기준을 세워서 그 진보에 뒤처지는 사람들을 못났다고 버리는 법이 없다. 사물의 스스로 그러함을 도울 뿐이다. 그러므로 노자는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에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전국시대 중엽 진나라 왕이 제나라의 맹상군을 잡아 가두었다. 맹상군은 진나라 왕의 애첩에게 풀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녀가 반대급부로 원하는 것은 여우 겨드랑이 흰털로 만든 호백구. 호백구는 이이 진나라 왕에게 바친 뒤였다. 이때 맹상군의 식객 중 하나가 개 흉내를 내어 보물창고 속의 호백구를 훔쳐 돌아왔다.
호백구를 첩에게 바친 뒤 간신히 풀려나와 맹산군 일행이 관문인 함곡관에 도착했을 때는 한밤중이었다. 한편 진왕은 맹산군을 풀어준 것을 후회하고 그를 뒤쫓게 했다. 당시 성문의 규칙은 새벽에 닭이 울어야 문을 열 수 있었다. 이때 맹상군의 식객 가운데 닭 울음을 소리 흉내를 잘 내는 사람의 기지로 무사히 성문을 빠져나왔다.
닭울음소리(鷄鳴)와 개흉내(狗盜)로 맹산군의 목숨을 구한 계명구도(鷄鳴狗盜)란 고사성어의 배경 이야기이다. 남들이 말하는 천한 재주가 맹상군의 목숨을 구한 것이다. 이 일화의 깊은 뜻은 맹산군의 생명이 아니다. 조의 평원군, 위의 신릉군, 초의 춘신군과 함께 전국 시대 4공자 중 한명을 추앙받던 맹산군이라는 거물이 하찮은 재주인 닭울음소리, 개 흉내를 가진 자를 식객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사람을 버리지 않는 사고방식이 맹산군을 전국 4공자중 으뜸으로 올려 놓은 것이다.
무기인으로 세상을 뒤엎은 역사적 사례로는 수없이 많다. 이중 중국역사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드라마를 연출한 초한지의 주인공 유방의 스토리에서 우리는 무기인의 정수를 체득할 수 있을 것이다. 유방을 도와 한나라 건국의 초석을 다진 진평은 떠돌이었고, 대장군 번쾌는 백정, 주발은 거리의 악사, 누경은 마부, 한신은 불량배, 팽월은 강도였다. 만일 유방이 이들의 재능을 보지 않고 출신 성분이나, 직업으로 평가했다면, 그리고 그들을 버렸다면 초한지의 승자는 누가 되었을까.
또한 춘추시대 제나라 환공에게는 관중과 영척이 있었다. 제갈공명과 더불어 중국 최고의 명재상으로 꼽히는 인물인 제나라 관중은 한때 개도둑이었다. 영척은 남의 수레나 몰던 별 볼일 없는 사람이었다. 허나 제환공이 이들의 재능을 발견하고 주변의 의견을 무시한 채 이들을 기용, 제나라를 춘추오패 중 으뜸의 나라로 만든 것이다.
인재경영의 비결은 사람의 단점을 줄이는데 있지 않고 그 사람의 장점을 어떻게 발굴 하느내에 달려 있다. 이 시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의 말이다.
노자의 얘기를 좀 더 들어보자.
“성인상선구인 고무기인(聖人常善救人 故無棄人)
상선구물 고무기물 시위 습명(常善救物 故無棄物 是謂 襲明)”
성인은 늘 사람을 잘 구하고 버리지 않는다. 사물을 항상 잘 파악하여 구함으로써 모든 물건을 버리지 않는다. 이를 일러 밝음이라 한다.
무기인의 이치를 노자는 밝음(明)이라 표현했다. 밝음은 근본을 아는 것, 영원한 진리를 깨우치는 것을 말한다. 만물이 얽히고 설켜도 각각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정(靜)이고 상(常)이다. 상을 이해하는 것이 명(明)이고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재앙이 뒤따른다고 경고했다.
노자에게 다시 물었다. 천재를 어떻게 다뤄야 합니까. 노자의 대답은 간결했다.
“불상현 사민부쟁(不尙賢 使民不爭).”
현명하고 능력 있는 자들을 숭상하지 말라. 그러면 사람들이 다투지 않는다는 말이다. 똑똑한 사람이라고 평가받는 사람들을 우대하고 무조건 부러워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일침을 놓는 외침이다. 부쟁은 노자철학의 핵심코드 중 하나로 자연의 도리에 근본을 둔 말이다. 자연은 말 그대로 스스로 드러낼뿐 뽐내지도 다투지도 않는다.
꽃이 붉은 것은 뽐내려 해서가 아니다. ‘꽃은 스스로 붉다’는 시 구절을 음미할 줄 아는 자는 부쟁의 철학을 깊이 이해하는 자이다.
불상현과 연관해서 생각해 볼 것은 도덕경 11장에 나오는 바퀴통의 이야기이다. ‘서른 개의 바퀴살이 하나의 바퀴통으로 모이고, 그 바퀴통속의 빈 공간 때문에 수레는 쓸모가 있게 된다’고 했다. 바퀴통이 힘을 제대로 발휘하자면 서른 개의 바퀴살이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어야 한다. 강한 바퀴살 하나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서른 개의 바퀴살이 협력해서 바퀴통을 지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화학의 이론 중에는 결합의 오류라는 법칙이 있다. 가장 좋은 것만 뽑아서 합하면 최상의 결과를 얻을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실제로는 최악의 결과를 얻게 된다는 이론이다.
이대목과 관련, 역시 피터 드러커의 어록을 찾아보자.
“오늘날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주인의식에서 협동정신으로, 개인적인 직무에서 협력적인 직무로의 변화이다.”
“성공적인 기업은 인재를 많이 채용하고 있는 회사가 아니라 인재들이 조화롭게 일하도록 하는 회사이다.”
노자의 인재관은 무기인이 커다란 축이고 불상현이 그것을 보충하고 있다. 무기인이나 불상현의 사상은 세간에서 말하는 인재관과는 전혀 다르다. 기정사실화된 의견과는 다르다는 것 때문에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허나 노자에 대한 그런 비판에는 전혀 수긍할 수 없다. 노자는 현실과 이상을 아우르는 현실주의적 이상주의자이다. 도덕경 12장에 나오는 거피취차(去彼取此,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 성인위복불위목(聖人爲復不爲目,성인은 실질적인 것을 추구하지 눈에 보이는 환상을 추구하지는 않는다)이라는 대목에서 노자의 실용주의를 강하게 읽을 수 있다.
최근 들어 따뜻한 자본주의 4.0자본주의가 부상하고 있다. 따뜻한 자본주의의 코드는 ‘우리 함께’라는 단어일 것이다. 첨단을 달린다는 21세기에 기원전 5세기경 천재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할 이유 역시 ‘우리 함께’를 철학으로 삼는 인재관, 즉 무기인 때문일 것이다.
[정보철 : (주)이니야 대표, `한 끗 차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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