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바꾸는 선택]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그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사입력 2012.05.25 13:45:25 | 최종수정 2012.05.25 13:54:42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그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대 그리스의 기인 헤라클레이토스가 아름다운 말을 했다. ‘우리는 같은 강물 속에 발을 담구지만 같은 강물에 발을 담그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역설적인 언어에 담긴 숨은 뜻은 가히 충격적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영원을 추구한다. 영원한 안식처를 갖고 싶어 하고, 영원한 사랑과 우정을 갈망한다. 영원한 건강, 영원한 젊음, 영원한 권력, 영원한 부, 영원한 직장, 영원한 사업파트너, 영원한 그 무엇을 간절히 추구한다.
그러나 하나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이 세상에서 영원은 없다. 영원은 단지 환상일 따름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외형적으로 모든 것이 똑같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 처럼 보일 따름이다. 모든 것은 변화하며 흐른다.
이를테면 아침의 나와 저녁의 나는 다르다. 똑같은 몸에 얼굴이라지만 매순간의 나의 의식은 흐르고 있다. 오후에 내린 시원한 비로 마음은 상쾌해진다. 오랜 친구의 다정어린 전화로 마음은 쾌활해진다. 책속에서 찾은 한줄기 청량한 글귀, 동료들의 웃음에 나도 모르게 미소 짓는다. 이러한 순간순간 모든 것들이 나를 새롭게 한다. 나는 끊임없이 변하며 흐른다.
헤라클레이토스는 ‘판타 레이(panta rei)’, 즉 만물은 끊임없이 유전한다’고 말했다. 지상에 있는 모든 것은 영원불변하지 않다.
변화가 삶의 본질이다. 만물은 매순간 변한다. 순간순간이 새롭다. 매순간이 새롭다면 삶은 즐거움으로 충만하다. 미지의 세계가 펼쳐지는데 짜릿한 전율이 오지 않을 수 없다.
변화의 참뜻을 이해할 때 삶은 축제의 마당으로 변모한다. 삶은 고통으로 신음하는 무대도, 어지러움을 호소하는 장소도 아니다. 순간순간 세상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삶은 즐거운 축제의 장으로 펼쳐질 것이다. 영원을 사랑하지 말고, 순간순간을 즐겨라. 순간순간을 놓치지 말라. 그는 말한다.
모든 것은 흘러간다. 아무것도 머물지 않는다.
모든 것이 사라진다. 아무것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
중국 상고시대의 정치의 기록인 서경에도 ‘오직 천명은 항상에 있지 아니하다(유명불어상,惟命不於常)’는 구절이 있다.
이게 만물의 본질이다. 본질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다. 본질에 어긋나려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 누구도 거센 물결을 계속해서 거스를 수는 없을 것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우리들보다 견고한 그 무엇이 되려하지 말고 항상 변모하는 그 무엇이 되라고 한다. 굳세고 영원한 바위가 되지 말고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가 되라고 한다. 이는 세상의 상식과 어긋나는 일이다.
상식은 영원을 노래하고, 견고한 바위를 찬양해왔다. 영원한 사랑, 영원한 젊음, 영원한 건강, 영원한 행복, 영원한 직장, 영원한 권력, 영원한 부를 염원했다. 우리는 이 터무니없는 상식을, 전혀 통찰이 없는 상식을 깨뜨려야 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영원을 추구하느라 우리는 삶의 귀중 한 순간들을 날려 보낼 수 없다. 우리가 두 번 같은 강물에 발을 담그려고 하는 동안에 강물은 이미 저 멀리 흘러가버린 것이다. 영원한 그 무엇을 추구하느라 만물의 본질, 삶의 핵심을 계속해서 놓치고 사는 것이다. 그것은 쓸데없는 집착일 뿐이고 전혀 지혜롭지 않다. 그래서 집착을 버리는 방법으로 그는 날마다 뜨는 태양을 새롭게 볼 것을 제안했다.
태양은 날마다 새롭다.
어제의 태양은 오늘의 태양이 아니다. 내일 또 다른 태양이 떠오른다. 예민하게 받아들여야할 것은 세상은 반복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반복되는 것은 없다. 태양은 새롭게 뜨고 있지만 예민하지 못한 우리는 이를 반복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반복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반복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반복의 프리즘은 거추장스러운 도구이다. 반복프리즘은 세상의 진면목을 가리는 불투명한 거울이다. 불투명한 거울로는 만물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할 수 없다. 반복되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크게 두 가지 잘못된 인식으로 이어진다. 비극적인 결과가 예견되는 인식이다.
그 첫 번째 잘못된 인식이 고정관념이다. 우리는 자신이 내린 결론에 집착한다. 한번 결론을 내리면 사실이 고정관념에 들어맞기를 원하는 성향이 있다. 생각을 바꾸는 대신 현실을 무시하는 쪽으로 흐른다. 현실과 맞지 않는 고정관념이 삶을 핍박하게 만드는 것이다. 패자들의 삶에서 항상 느끼는 것이 이 고집스런 고정관념이다.
역사의 승자들의 가르침 중 공통된 특징 중 하나는 고정관념 뒤집기이다. 공자는 네 가지를 끊었다고 했다. 자의(恣意)가 없었고, 기필(期必)이 없었고, 고집이 없었고, 사사로움이 없었다고 한다. 바로 고정관념을 탈피하는 유연한 사고방식을 말하는 것이다.
두번째 잘못된 인식은 자기 확신이다. 몇 번 비슷한 사례가 되풀이되면 별다른 통찰 없이 흔히 자기확신이라는 미신에 빠져버린다. 자기확신에 젖은 인간은 다른 사람의 다른 생각할 권리를 빼앗는다. 내 생각의 자유만큼 남의 생각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다. 나만의 것이 옳고, 남의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자기 확신의 요체이다. 세상은 넓다. 세상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다. 내가 옳고 내가 아닌 세상은 틀리다는 고집스런 생각에 파묻힌 사람들은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없다. 그 결과 자신뿐만 아니라 남의 행복마저도 빼앗아버리는 것이다. 지난날 문명사회에서 저지른 뼈아픈 전쟁의 대부분은 자기 확신에 찬 자들이 저지른 것이다. 자기 확신이 성행하는 사회는 그들의 주장대로 번영의 길이 아니라 정반대인 쇠퇴의 길로 접어든다. 고정관념과 자기확신은 죽은 사고방식이다. 죽은 것은 굳어져있다.
지난해 분재로 세계적인 명승지로 탈바꿈되고 있는 제주도의 ‘생각하는 정원’을 찾았다. 성범용원장이 한 말이 특히 기억난다.
“분재는 3년 내지 5년이 되면 뿌리가 화분에 꽉 차게 자랍니다. 그냥 나두면 안되고 뿌리가 썩어서 죽게 됩니다.”
나무는 뿌리를 잘라주지 않으면 죽는 것처럼 사람은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빨리 늙는 것이다. 고정관념, 자기 확신은 바로 자신을 늙게 하는 요인이고, 자신을 서서히 말라 죽이는 것이다. 유연성이 있는 변화가 키워드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늙음과 죽음뿐이다.
시장에서 불변의 법칙이 있다면 변화이다. 변화를 읽는 기업이 시장에서 성장한다는 것이다. 변화를 읽지 못하는 기업은 시장에서 도태되는 것은 물론이다. 변화에 빠르게 반응하며 그 변화에 적응하는 회사 조직, 개인만이 최고의 자리에 차지하고 유지할 수 있다.
기업에서 성장은 임직원이 그동안의 틀에 박힌 사고를 버림으로써 시작된다. 그동안 기업체를 일으켜왔던 성공패턴을 과감히 벗어던짐으로써 최고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 거대한 계획, 막강한 자금, 우수한 인재가 우량한 기업을 만드는 요소가 절대 아니다. 시선을 바꿔보면 브랜드력이 뛰어난 롱런 기업들의 특질은 변화를 읽고 활용하는 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변화를 하나의 기회로 활용하는 것은 기업가 정신의 본질이기도 하다. 이를 철저히 응용한 것은 GE의 수장이었던 잭 웰치이다. 잭 웰치는 기업경영을 상세하게 짜인 전략에 맡기는 대신 분명한 목표를 광범위하게 설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었다. 이와 같은 목표와 변화의 이색적인 혼합을 경영학적 전략으로 삼은 게 잭 웰치의 ‘계획적 기회주의’이다.
계획적 기회주의의 시각으로 기업의 성패를 바라보는 것은 또 다른 통찰이다. 우선 생각나는 대로 나이키, 월마트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마이크로소프트, 홈데포, 삼성전자 그룹과 코닥 모토롤라 노키아 허시퍼피 소니 샤프 그룹으로 나누어보자.
이 둘의 차이는 무엇인가. 시장을 보는 눈이다. 후자는 자사의 사업 분야에서 포화시장을 보았고 전자는 이 세상에 포화시장은 없다고 본 것이다. 전자는 변화를 읽어내는 눈으로 사업의 틈새를 찾아내고, 그 틈새를 특화시키면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거듭났다.
“경쟁업체들이 그렇게 많았는데도 우리의 발목을 잡으려는 업체가 없었다는 것은 놀라울 뿐이다. 그들은 할 일이라는 것에 대한 진정한 의지가 없었다. 그들은 장기적으로 기존의 잡화점 개념을 그대로 유지하려 했다. 그들은 45% 이윤 남기기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벗어날 수 없었다.”
영세한 자본력을 갖고 출발한 후발주자이면서도 마트시장을 석권한 월마트의 샘 윌튼의 말이다. 샘 윌튼의 생애에서 우리는 변화를 리드하는 자와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자의 말로를 넉넉히 읽어 내릴 수 있다. 샘 윌튼이 전적으로 옳은 것은 그가 성공했다는 점도 있지만 그가 말하는 고정관념을 탈피하려는 생각과 의지가 만물의 본질과 그대로 들어맞기 때문이다.
최고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업체들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것은 포화산업이라든지 성장산업이라는 용어이다. 세상에는 포화산업도 없고 성장산업도 없다. 퇴출되는 기업과 정상을 누리는 기업만이 있을 뿐이다. 자기확신과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시각으로는 이 말을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시선을 바꾸는 결단이 필요하다. 마케팅전문가 시어도어 레빗이 주장한 말을 다시 한 번 반복해 보자.
“오직 성장의 기회를 창출하고 거기에 투자할 수 있도록 조직되고 운영되는 기업이 있을 뿐이다.”
최근 국내에도 포화시장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피자 치킨에 이어 근자에 불거지고 있는 게 커피시장이다. 2~3년 전부터 커피시장은 포화가 됐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커피브랜드는 시장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대목에서 루 거스너의 사례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그가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신용카드 사업 책임자가 되었을 때의 일이다. 그에게 가장 많이 제출된 보고서는 신용카드 산업이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허나 시장을 분할함으로써 보고서를 일축했다. 그는 당시로서는 생소하게 법인카드 골드카드 플래티늄카드로 시장을 분할, 각각의 시장을 성장시켜버린 것이다.
똑같은 방법으로 계속 승리할 수는 없다. 기업경영이나 전쟁에서는 고정된 상황이 없다. 따라서 상황에 따라 전술을 바꿔 승리하는 자만이 최고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병법의 대가 손자는 손자병법에서 이우위직 이환위리(以迂爲直 以患爲利,우회하면서 직진의 효과를 만들어야 하고, 나의 환란을 이득으로 변화시켜야 한다)이라며, 유연한 곡선사고를 강조했다.
유연한 곡선사고는 성공을 지속 가능케 한다. 반대로 성공이 지속 가능치 못하는 이유는 사람들은 성공하면 하나의 패턴에 묶이게 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성공 패턴을 모범 교과서로 떠받치는 것이다. 패턴은 앞서 말한 고정관념과 자기 확신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성공의 패턴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생각이 고정된다는 것이고, 이는 결국에 실패로 가는 길로 접어든다는 말과 다름 아니다. 과거성공 패턴의 중시는 예전의 성공보다 훨씬 더 큰 문제를 발생시키며 상황을 추락시킨다는 것을 수많은 경험이 증명하고 있다. 중국 전국시대 다양한 일화로 세상을 일깨운 한비자의 유명한 얘기가 떠오른다.
송나라에 어떤 농부가 밭을 갈고 있었다. 갑자기 토끼 한 마리가 뛰어오다가 밭 가운데 있는 그루터기에 부딪쳐 목이 부러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덕분에 토끼 한 마리를 얻은 농부는 농사일은 집어치우고 매일 밭두둑에 앉아 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가 오기만 기다렸다. 그러나 토끼는 그곳에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으며, 밭은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 농사를 망치고 말았다. 수주대토(守株待兎)의 고사내용이다.
한비자는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이 아니라 진화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복고주의는 진화에 역행, 따라서 요순을 이상으로 하는 왕도정치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문제가 발견되면 시대의 환경의 변화에 순응하여 새로운 방법으로 처해야 한다고 주장 했다. 새로운 시대의 변화에 순응할 줄 모는 사람에게 한비자는 이 수주대토의 비유를 적용한 것이다.
올해는 개나리 꽃 구경을 하지 못했다. 개나리꽃을 보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그만 절경을 놓치고 만 것이다. 벚꽃도 지고, 진달래도 속절없이 지고 말았다. 뒤늦게 찾아간 산야에는 꽃이 핀 흔적만이 놓여 있었다. 세상의 이치가 이행(移行)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만 실천을 하지 못한 것이다. 두고두고 삶의 본질을 따져볼 일이다. 대룡선사를 찾아보았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형태가 있는 것은 반드시 멸합니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는 없을까요.”
대룡선사가 대답했다.
“저 산에 만발한 꽃을 보라. 비단으로 산을 덮은 것처럼 보이지 않느냐. 저 골짜기에 잠잠히 있는 물을 보라. 꼭 쪽빛을 흘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대룡선사의 말을 따라 가다보면 하나의 아름다운 그림이 저절로 그려진다. 그가 그리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행’이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이야말로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라는 그림이다.
변화에 대한 인식과 선택은 삶의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문제이다. 변화를 삶속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자는 삶의 본질을 깨달은 자이다. 그는 영원을 무시하고 이 순간을 산다.
그러기에 그의 삶은 즐거움으로 충만하고 생생하게 살아있다. 이게 바로 헤라클레이토스가 원하는 인간상이다.
[정보철 : (주)이니야 대표, `고전경영` `한 끗 차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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