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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스크랩][매일경제]한국을 뒤덮은 디스토피아 먹구름

세계적으로 디스토피아 라는 단어가 화두가 되고 있다. 우리 나라 역시 이러한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아니, 사실 그러한 문제의 중심에서 가깝다. 하지만 좌절보다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다.
원래 변화란 한계점에서 더 쉽게 발생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변화의 문턱에 더욱 가까이 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과도기적인 단계에서는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래를 더 나은 사회로 만들어나갈 것인가, 아니면 이러한 짐을 후세대에 그냥 떠넘길 것인가.
결국 우리 한사람 한사람의 선택과 행동에 달려있을 것이다.




한국을 뒤덮은 디스토피아 먹구름
기사입력 2012.02.20 17:56:59




"불행하다, 불안하다, 불신한다, 부족하다…."

대한민국 사회가 모두가 불행한 사회, `디스토피아(Dystopiaㆍ유토피아 반대말)`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온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이상향) 대신 `코리아 디스토피아`가 처절한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지난달 25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 전 세계가 디스토피아로 치닫고 있다는 뼈아픈 진단이 나왔다. 경제위기가 정치ㆍ사회 불안정을 동반하고, 전통적 리더십은 이런 악순환을 끊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2012년 대한민국 사회에 짙게 드리운 디스토피아 먹구름은 다보스포럼에서 내린 진단보다 넓고 어둡다. 코리아 디스토피아는 폭력과 각종 범죄, 부정과 비리, 경제난과 양극화, 실업난, 교육 붕괴와 인간성 상실, 가치관 부재, 리더십 실종, 늘어나는 우울증과 자살 등 사회 총체적 문제로 확장된다.

코리아 디스토피아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 등에서 묘사된 전체주의 사회와는 다르다. 오히려 범죄와 폭력, 인성 상실, 부정과 비리, 양극화, 리더십 부재, 사회 불신, 환경오염 등이 만연한 영화 `배트맨` 배경인 고담시티와 닮았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살인, 강도, 폭력 등 5대 범죄 발생건수는 총 61만2357건으로 2007년에 비해 17%가량 늘었다.

친구들 따돌림과 폭력을 견디다 못한 학생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은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온다. 기본적인 인성과 시민소양을 길러줘야 할 가정교육과 공교육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 지 오래다.

사회불안을 조장하는 루머를 퍼뜨리거나 시장을 교란하는 주가조작, 각종 보험사기, 보이스피싱, 퍽치기 등 날로 진화하는 신종 범죄는 허탈함과 불안을 증폭시킨다. 정치권과 고위공직자들 사이에선 `돈봉투`가 오간다.

사회 신뢰의 마지막 보루인 사법부마저 불신에 흔들린다. 높아진 실업률과 취업난에 젊은이들은 비틀거린다.

떳떳하게 자수성가한 고액 자산가조차 불신과 불안의 늪에 빠진 한국 사회를 떠날 채비를 하고 있을 정도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며 100억원대 자산을 모은 박 모씨(58)는 요즘 자산 투자를 위해 베트남이나 러시아로 출장을 자주 다닌다. 박씨는 "포퓰리즘 정책이 횡행하는 등 무턱대고 가진 자를 비난하는 분위기를 견딜 수 없다"고 말했다.

김석호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물질적 발전에 걸맞은 가치관이 정립돼 있지 않고, 시민적 소양이 확립돼 있지 않다"며 "상식적인 룰을 어기고 부정부패가 난무하다 보니 사회적 합의는 온데간데없고 사회가 분열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용어설명>

디스토피아(Dystopia) : 고대 그리스어 `디스(Dys)`와 `토피아(topia)`의 합성어로 뜻은 `나쁜 장소`. 유토피아의 반대말이다. 영국의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이 1868년 하원 연설에서 처음 사용하면서 등장했다. 소설 `1984`(조지 오웰), `멋진 신세계`(올더스 헉슬리)나 영화 `배트맨` 시리즈에서 묘사돼온 디스토피아는 지난달 다보스포럼에서 화두로 제시됐다.

■ 작년 577만명이 우울증 1%도 99%도 디스토피아 증후군

◆ 코리아 디스토피아 上

"얼마 전 중소기업 최종면접에서 떨어졌다. 지원서만 100곳 이상 냈지만 전문대를 졸업한 나는 `투명인간` 취급을 당했다.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며 힘껏 살았는데 왜 이렇게 불행한지 펑펑 울었다."(취업준비생 최 모씨)

"피땀 흘려 돈을 번 부자(富者)를 질시하고 `공공의 적(敵)`으로 매도하는 한국 사회에 비전이 없다. 자산을 옮겨둘 만한 해외 투자처를 찾고 있다."(100억원대 고액자산가 박 모씨)

지금 한국 사회에선 만인(萬人)이 "행복하지 않다" "불안하다"고 입을 모은다. 가진 자나 못 가진 자나, 소위 1%나 99%나 상대성은 있으나 불행하긴 매한가지다. 나라 전체가 `디스토피아 증후군`을 앓고 있는 셈이다.

중견기업을 운영하며 100억원대 자산을 모은 박 모씨(58)는 "총선ㆍ대선이 치러질 올해 어떤 바람이 시장에 휘몰아칠지 예측이 안돼 불안한 나머지 장기투자를 포기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서울 목동에 사는 고액자산가 김 모씨(59). 20년 넘게 중소기업을 경영하며 부를 일군 김씨는 "돈을 벌수록 폄훼의 대상이 되는 한국 사회에서 평생 모은 자산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지 불안해진다"며 "해외 안전한 곳에 묶어 놓을 생각"이라고 털어놨다.

99% 사람들도 취업난과 빈부격차 확대, 상대적 박탈감, 노후 불안 등으로 고단한 삶을 보내고 있다.

취업준비생 최 모씨(29)는 학벌 핸디캡을 극복하려고 한 사이버 대학에 지원해 합격했지만 등록금 100만여 원이 모자라 끝내 입학을 포기했다. 편의점 등 온갖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그는 "고졸은 취업에 숨통이 트였지만 전문대졸은 막막하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며 고개를 떨궜다.

경기도 산본에서 중학교 1학년 딸을 키우는 주부 순 모씨(45)도 "학교 안팎에서 벌어지는 경쟁 때문에 딸이 우울증에 걸렸다"며 "조폭 뺨치는 학교폭력, 등골 휘는 사교육비, 줏대없이 바뀌는 입시정책 등 학부모와 학생 모두가 불행하다"고 말했다.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으로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18세 이상) 577만명이 최근 1년 사이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앓았다. 전체 한국 인구 중 16%에 달하는 수치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예측이 안되는 급속한 변화는 사람들에게 불안과 불행을 느끼게 만든다"며 "1%는 그나마 버틸 수 있지만 변화 적응력이 떨어지는 99%는 충격이나 피해가 더 클 수 있다"고 말했다.

곽 교수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하면서 빠른 성장은 이뤘으나 이러한 압축성장 과정에서 사회 구성원들이 따를 수 있는 공통된 가치관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모두가 더 혼란스러워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 상위권조차 불안…인성 사라지고 룰도 작동안해

◆ 코리아 디스토피아 (上) / `암울한 한국` 전문가 진단 ◆

`코리아 디스토피아`가 찾아온 원인은 경제위기와 양극화에 따른 경쟁 과열과 이를 제때 가라앉히지 못한 리더십의 실패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가 급격하게 성장하는 과정에서 윤리가 자리 잡히기 전에 경쟁 만능주의가 자리 잡았다"며 "학교에서 일어나는 폭력 현장도 경쟁 과열에 따라 폭력이 난무한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지적했다.

서이종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장기적 불황으로 사람들이 심리적 여유가 없어지고 자기 것을 더 지키려고 드는 경향만 심해졌다"고 진단했다. 과거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생계형 범죄를 저질렀다면 지금은 경쟁 심화로 상대적으로 나은 사람조차 더 나아지려는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고 서 교수는 덧붙였다. 학교 폭력 사태로 재차 불거진 공교육 불신도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한 경쟁심 과열에 있다고 서 교수는 지적했다. 경제가 급속하게 성장한 반면 그에 걸맞은 시민사회 발전이 뒤따르지 않은 점도 각종 사회 병리 현상의 원인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시민적 소양`이 부족하단 얘기다.

김석호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물질적 발전에 걸맞은 가치관이 정립돼야 하는데 남을 배려하고 더불어 살려는 시민적 소양이 없으니 계층 간 공감대가 없고 결국 남이 잘사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고도 성장기에 습관화한 `서열 매기기` 습성이 일반 시민사회부터 지도층, 재계에 이르기까지 반칙, 폭력과 부정, 부패가 난무하게 했다는 진단도 나온다.

박세정 연세대 가치경영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과거 권위주의의 강력한 리더십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어떤 형태로든 서열을 매기는 습성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갑(甲)은 을(乙)에게, 을은 병(丙)에게 권력 관계를 재확인시키는 질서가 권위주의 시대가 지난 지금도 학교와 사회에서 버젓이 자리 잡은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정치적인 질서의 부작용을 잠재워줄 만한 사회적 규율이 없다는 점이다.

김영세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사회적ㆍ윤리적 규율이 없기 때문에 디스토피아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라며 "웬만한 제도나 법이 마련돼 있는데도 상식적인 원칙이 지켜지지 않다 보니 사회 기강이 무너지고 사회 통제가 안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통되고 보편적인 기준을 세우기 어려워진 `아노미` 상태에 빠졌다는 진단(김용수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도 나온다. IT 발달에 따른 급격한 정보의 증가는 이 같은 아노미 상태를 더욱 심화시킨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원칙도 없고 신뢰도 없다. 무작정 경찰서나 검찰청을 찾아가 고소ㆍ고발장을, 법원에 소장을 낸다. 소액심판을 중심으로 국내 민사소송도 급증하고 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법정으로 오는 일은 사회적 신뢰로 해결되지 않는 경우"라면서도 "법이 제도나 사회를 따라가지 못하니 법마저 불신하게 된다"고 말했다. 최근 사법 불신 추세도 같은 맥락의 얘기다. 이 같은 사회적 신뢰를 창출하지 못하는 리더십 결함에 전문가들은 주목하고 있다. 먼저 국가가 제 역할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계화로 국가의 독자적인 정책 시행이 어려워졌고"(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사회가 분산화하고 네트워트가 강해지면서 중앙 통제 능력이 상실됐기"(김용학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때문이다.

현재의 디스토피아는 본격적인 선진국으로 접어들면서 새로운 리더십을 찾기 위한 과도적 현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양학부 교수는 "과거의 가치관과 새로운 가치관이 교체되는 과도기에 (한국 사회가) 정체돼 있다"며 "경제성장, 민주화, 세계화라는 급격한 변화에 따른 진통을 겪고 있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도 지금 한국 사회를 "열심히 살긴 했는데 뭔가 성장이 한계에 달한 후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혼란스러워 하는 격"이라고 설명했다.

[정석우 기자 / 임영신 기자 / 김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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