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있던 니체, 당신은 왜 이제서야 나를 다시 찾아온 것인가요...
니체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한층 높여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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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 니체는 철학자이기는 했지만, 난해하고 추상적인 모든 문제에 대해 사색하며 그 이론을 플어냈던 사람은 아니다. 그는 당시의 기독교적 도덕이 지나치게 내세적이라 비판하고, 이 세상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진리나 선, 도덕임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 니체의 이름이 전 세계에 알려지고, 현재까지도 화자되는 이유는 그의 날카로운 통찰력 때문이다. 핵심을 찌르는 듯 날카로운 시점, 강인한 생기, 불굴의 영혼, 보다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려는 굳은 의지가 참신하고 짧은 명문장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에 그의 말은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의 귀를 젓히고 마음 깊이 아로새겨지고 있다.
* 니체의 철학 또는 독특한 사상은 칸트나 헤겔처럼 장대한 체계를 목표로 정리된 것이 아닌, 정열적인 문장으로 엮은 단편과 짧은 산문체가 많다.
* 칸트처럼 올곧은 철학자라면 자신의 설에 이유를 설명하고 철학의 골자로 삼았겠지만, 니체는 그같은 발상을 아무렇지 않게 던져 버렸다. 그런 점에서 보면 니체는 철학자라기보다 예술가에 가깝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 니체의 사상이 히틀러나 나치즘에 영향을 미쳤다는 오해는 근거 없는 악질 소문이다. 히틀러나 나치즘은 자신들의 공허한 부분을 채우면서도 허세를 부리기 위해 기존의 여러 다양한 분야의 사상을 제멋대로 왜곡하고 거침없이 끌어들였다....
니체가 반유태주의였다는 주장 역시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반종교주의에 가까웠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 니체는 니힐리즘 철학자가 아니다. 오히려 니힐리즘을 비판하는 것이 니체였다. 니힐리즘이라는 용어는 허무주의로 번역되는 경우가 많다. 니힐Nihil은 라틴어로 '무'라는 의미로, 절대 가치와 진리 따윈 없다는 입장을 취하는 것이 니힐리즘이다.
<자신에 대하여>
* 자신을 대단치 않은 인간이라 폄하해서는 안 된다. 그같은 생각은 자신의 행동과 사고를 옭아매려 들기 때문이다. 오히려 맨 먼저 자신을 존경하는 것부터 시작하라.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은 자신을, 아직 아무런 실적도 이루지 못한 자신을 인간으로서 존경하는 것이다. 자신을 존경하면 악한 일은 결코 행하지 않는다. 인간으로서 손가락질당할 행동 따윈 하지 않게 된다. 그렇게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고 이상에 차츰 다가가다 보면, 어느 사이엔가 타인의 본보기가 되는 인간으로 완성되어간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가능성을 활짝 열어 꿈을 이루는데 필요한 능력이 된다. 자신의 인생을 완성시키기 위해 가장 먼저 스스로를 존경하라.
* 누구든 자신에 대한 타인의 생각을 알고 싶어한다....그러나 자신에 대한 평판에만 지나치게 신경 써서 남들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우는 것은 좋지 않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항상 옳은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신이 원하는 평가를 받는 경우보다, 그것과 완전히 상반된 평가를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평판이나 평가 따위에 지나치게 신경 써서 괜한 분노나 원망을 가지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타인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그같은 일에 지나치게 연연하지 마라.
* 냉정히 반성하기란 결코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 반성은 필연적으로 우울이라는 덫에 걸려들 수밖에 없다. 지쳤을 때는 반성하는 것도, 되돌아보는 것도, 일기를 쓰는 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활기차게 활동하거나 무엇인가에 흠뻑 빠져 힘을 쏟고 있을 때, 즐기고 있을 때에는 어느 누구도 반성하거나 되돌아보지 않는다. 그렇기에 스스로가 한심하게 여겨지고 사람에 대한 증오심이 느껴질 때에는 자신이 지쳐 있다는 신호라 여기고 그저 충분한 휴식을 취하라. 그것이 스스로를 위한 최선의 배려다.
* 자기혐오에 빠졌을 대, 모든 것이 귀찮게 느껴질 때, 무엇을 해도 도무지 기운이 나지 않을 때, 활기를 되찾기 위해서는 무엇을 하는 것이 좋을까?....그 어떤 것보다도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한 뒤 깊은 잠을 청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법이다. 그것도 평소보다 훨씬 많이. 그런 후 잠에서 깨어나면 새로운 기운으로 충만해진 다른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 자기표현이란 자신의 힘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베푼다, 비난한다, 부순다....당신은 어떤 방법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있는가?
* 누군든지 한 가지의 능력은 가지고 있다. 그 하나의 능력은 오직 그만의 것이다....틀림없는 사실은, 어떠한 경우라도 주눅들지 않고 씩씩하고 과감하게 그리고 꾸준히 도전해 나가면 언젠가는 자신마닝 가진 한 가지 능력을 반드시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 하루에 한 가지,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자제를 각오하라.
* 작은 일에 자제심을 발휘할 수 없다면, 큰일엣도 자제심을 기대할 수 없고 성공에 이를 수 없다. 자제할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수많은 방법론을 담은 책을 읽어도, 유명한 경영자나 억만장자의 성공 노하우를 배워도 자기 자신에게 맞는 방식과 방법을 찾는다는 보장은 없다....자신의 '왜?'라는 의문에 명백한 대답을 제시할 수 있다면 이후의 모든 것은 매우 간단해진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곧 알 수 있다.
* 자신의 모든 행위는 다른 행위와 사고, 결단 등을 이끌어 내는 요인이 되거나 혹은,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 자신에 대하여 얼버무리거나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며 살지 말라.
* 과거에는 틀림없는 진실이라 생각했던 것이 지금은 잘못된 것으로 여겨진다. 과거에 이것만큼은 자신의 확고한 신조라 여기던 것이 이제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그 같은 변화를 자신이 어려서, 깊이가 없어서, 세상을 몰라서라는 이유로 그저 묻어두지 마라. 그 무렵의 당신에게는 그렇게 하고하고 느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수준에서는 그것이 진리요, 신조였다. 인간은 늘 껍질을 벗고 새로워진다. 그리고 항상 새로운 생을 향해 나아간다. 그렇기에 과거에는 필요했던 것이 지금은 필요치 않게 되어버린 것에 불과하다.
*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는 너그러우면서도 타인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스스로를 볼 때는 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바라보는 반면, 타인을 볼 때는 너무 먼 거리에서 윤곽만을 어렴풋이 보기 때문이다. 이 거리를 반대로 두고 차분히 타인을 관찰하면 타인은 그만큼 비난받아 마땅한 존재가 아니며, 자신은 생각만큼 너그럽게 허용할 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 타인의 신뢰를 얻고자 한다면 말로 자신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피할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상황에서의 진실하고 흔들림 없는 행동이야말로 타인의 믿음에 호소할 수 있다.
* 모든 일은 어떻게든 해석이 가능하다. 좋은 일, 나쁜 일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좋다, 나쁘다, 도움이 된다, 해가 된다, 훌륭하다, 추악하다... 그 어떤 것이라도 해석하는 이는 결국 자기 자신이다.
*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길 원하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자신을 향해 던지고, 성실하고 확고하게 대답하라. 지금까지 자신이 진실로 사랑한 것은 무엇이었는가? 자신의 영혼이 더 높은 차원을 향하도록 이끌어준 것은 무엇이었는가? 무엇이 자신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기쁨을 안겨주었는가? 지금까지 자신은 어떠한 것에 몰입하였는가? 이들 질문에 대답하였을 때 자신의 본질이 뚜렷해질 것이다. 그것이 바로 당신이다.
* 늘 기분 좋은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요령은 타인을 돕거나 누군가의 힘이 되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것으로 존재의 의미를 실감하고, 순수한 기쁨을 누리게 된다.
* 주목받고 싶기에 주목받지 못한다....
자기현시욕. 말하자면 자신만을 내세우는, 자신만이 특별히 주목받고자 하는 욕망이다.
* 공포심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태어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악의 4분의 3은 공포심에서 태어난다. 공포심을 가지고 있기에 이미 체험한 적 있는 많은 것들에 대해서도 여전히 힘들어한다. 하물며 그것은 아직 체험하지 않은 것마저도 두려움에 떨게 만든다. 그러나 사실, 공포심의 정체라는 것은 현재 자신의 마음 상태가 어떠한가에 달려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힘으로 얼마든지 변화시킬 수 있다. 자신의 마음이기에.
* 높은 곳을 향해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은 결코 헛되지 않다. 비록 지금은 헛도니 장난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조금씩 정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 풍요로운 대상물을 찾을 것이 아니라 자신을 풍요롭게 만들어야 한다. 그것만이 자신의 능력을 높이는 최고의 방법이요, 인생을 풍요롭게 살아가는 방법이다.
<기쁨에 대하여>
* 더 기뻐하라. 사소한 일이라도 한껏 기뻐하라. 기뻐하면 기분이 좋아질 뿐 아니라, 몸의 면역력도 강화된다. 부끄러워 하지 말고 참지 말고 삼가지 말고 마음껏 기뻐하라. 웃아라. 싱글벙글 웃어라. 마음이 이끄는 대로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라....주위 사람들도 덩달아 즐거워할 만큼 기뻐하라. 기뻐하라. 이 인생을 기뻐하라. 즐겁게 살아라.
* 지금은 향락주의자 또는 쾌락주의자라는 잘못된 의미로만 사용되는 'Epicurean'이라는 용어가 있다. 그 어원이 된 그리스 철학자 Epicouros는 삶에 있어 쾌락을 추구했다. 그리하여 도달한 정점이 만족이라는 이름의 사치였다. 그러나 그 사치를 누리는 데 필요한 것은 많지 않았다. 아담한 정원, 그곳에 심어진 몇 그루의 무화과, 여기에 약간의 치즈와 서너 명의 친구만 있으면 충분했다. 그것만으로 그는 충분히 사치스럽게 살 수 있었다.
* 오늘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하고 싶다면, 잠에서 깨었을 때 오늘 하루 동안 적어도 한 사람에게, 적어도 하나의 기쁨을 선사할 수 있는지에 대하야 생각하라. 그 기쁨이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상관없다. 그리고 어떻게든 그 바람이 실현되도록 노력하며 하루를 보내라.
* 누군가에게 기쁨을 선사하는 행위는 자신까지도 기쁨으로 충만케 만든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있다면 우리의 양손에, 가슴에 기쁨이 가득할 것이다.
* 지혜로워라. 기쁨을 품어라. 가능하다면 현명함도 더하라. 그리고 마음에는 언제나 기쁨을 간직하도록 하라. 이것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 가능한 한 행복하게 살아라. 그러기 위해서 현재를 즐겨라. 마음껏 웃고, 이 순간을 온몸으로 즐겨라.
* 내면이 깊을수록 섬세함을 즐긴다.
<삶에 대하여>
* 모든 것의 시작은 위험하다. 그러나 무엇을 막론하고,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 그때그때의 체험과 보고 들은 것은 그저 기념물로만 간직한다면 실제 인생은 정해진 일만 반복될 뿐이다. 그렇기에 어떤 일이든 다시 시작되는 내일의 나날을 활용하고, 늘 자신을 개척해 가는 자세를 갖는 것이야말로 인생읠 최고로 여행하는 방법이다.
* 인생은 그리 길지 않다. 어스름해질 무렵 죽음이 찾아와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때문에 우리가 무엇인가를 시작할 기회는 늘 지금 이 순간 밖에 없다. 그리고 이 한정된 시간 속에서 무언가를 하는 이상, 불필요한 것들을 벗어나 말끔히 털어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 지금 이 인생을 다시 한 번 완전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라.
* 많은 사람들을 이해시키거나 그들에게 어떠한 효과를 미치고자 한다면 주저하지 말고 단호히 잘라 말하라. 자신의 의견을 정당화하기 이해 이렇다 저렇다 논하지도 말라. 그것은 오히려 많은 사람들에게 불신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고 싶다면 일단은 단언하라.
* 인생을 쉽게, 그리고 안락하게 보내고 싶은가? 그렇다면 무리 짓지 않고서는 한시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 속에 섞여 있으면 된다. 언제나 군중과 함께 있으면서 끝내 자신이라는 존재를 잊고 살아가면 된다.
* 당신은 어떠한 일에 책임을 지려 하는가. 무엇보다 자신의 꿈의 실현에 책임을 지는 것은 어떠한가. 꿈에 책임질 수 없을 만큼 당신은 유약한가? 아니면 용기가 부족한 것인가? 당신의 꿈 이상으로 당신 자신인 것도 없다. 꿈의 실현이야말로 당신이 가진 온 힘으로 이루어내야 하는 것이다.
* 계획은 실행하면서 다듬어라.
* 더욱 깊이 사고하고, 반성하고, 개선을 거듭하여 지성과 예술적 감성을 생활의 기본에 드리워야 한다.
* 소유욕이 정도를 넘게 되면 사람을 노예처럼 부리기 시작한다. 더 많은 돈을 차지하기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시간과 능력을 소모하는 나날이 시작된다. 소유욕은 휴시마저도 앗아가고, 그 사람을 완전히 구속한다...우리는 어느덧 소유욕이 자신을 지배하려 하지는 않는지 항상 경계해야 한다.
* 목표에만 사로잡혀 인생을 잃지 마라...
산을 오른다. 짐승처럼, 망설임도 없이. 땀범벅이 되어 오직 정상을 목표로 오를 뿐이다. 오르는 동안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질 테지만, 오로지 높은 곳을 향하는 것 외에는 알지 못한다. 그것이 여행이든 늘 하는 일이든, 하나의 것만 탐닉하고 다른 것은 완전히 잊어버린다. 사람은 그 같이 우매한 짓을 때때로 저지른다. 일의 경우 매출 향상만이 오직 단 하나의 목적인 양 착각한다. 그리고 어느새 일하는 의미를 잃고 만다. 이 같은 어리석은 행위는 언제나 반복된다. 마음의 여유를 잃고 이해타산적인 행동만을 중시한 나머지 오로지 그 관점에서 인간적인 것조차 모두 쓸모없는 짓이라 간주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자신의 인생 자체를 잃게 되는 일이 빈번히 자행되고 있다.
* 죽는 것은 이미 정해진 일이기에 명랑하게 살아라. 언젠가는 끝날 것이기에 온 힘을 다해 맞서자.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에 기회는 늘 지금이다. 울부짖는 일 따윈 오페라 가수에게나 맡겨라.
<마음에 대하여>
* 창조적인 일을 할 때는 물론, 일상적인 일을 하는 경우에도 경쾌한 마음으로 임하면 순조롭게 잘 진행된다. 그것은 거침없이 비상하는 마음, 사소한 제한 따윈 염두에 두지 않는 자유로운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역사는 분명 존재한다. 그것은 매일의 역사다. 현재인 오늘 하루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행동하는가, 그것이 매일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 시점을 바꾸거나 역발상을 하거나
* 매일 사소한 습관의 반복이 만성적인 병을 만든다. 그와 마찬가지로 마음의 습관적인 반복이 영혼을 병들게도, 또 건강하게도 만든다. 하루에 열 번 주위 사람들에게 냉담한 말을 퍼부었다면 오늘부터는 하루에 열 번 주위 사람들에게 기쁨을 안겨주는 말을 건네보라. 그러며 자신의 영혼이 치유될 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마음도 상황도 한결 나아질 것이다.
* 평등이라는 개념어를 즐겨 사용하는 사람은 두 가지 욕망 중 어느 한쪽을 숨기고 있다. 하나는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수준까지 끌어내리려는 욕망이다. 다른 하나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려는 욕망이다. 따라서 부르짖는 평등이 어느 쪽인지를 명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 승리자는 예외 없이 우연이라는 것을 결코 믿지 않는다. 비록 그가 겸손한 마음에 우연성을 입에 담는다고 해도 말이다.
* '더 이상 나아갈 길이 없다'고 생각하면 개척으로 향한 길이 존재해도 느닷없이 시야에서 사라진다. '위험하다'고 생각하면 안전한 곳은 사라진다. '이것으로 끝'이라 믿으면 종말의 입구로 발을 내딛게 된다. '어떻게 할까'라고 생각하면 불현듯 최선의 대처버을 찾을 수 없게 된다. 결론은, 두려워하면 패배한다는 것이다. 파멸하고 만다. 상대가 너무 강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없던 곤경에 빠져 있기 때문에, 상황이 너무 나쁘기 때문에 역전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패배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속에 두려움을 가지고 겁먹고 있을 때, 스스로 파멸과 패배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 대부분의 사람은 사물이나 상황 그 자체를 보지 않는다. 그것은 사로잡힌 자신의 생각이나 집착, 고집, 그 상황에 대한 자신의 감정 또는 머릿속에 멋대로 떠올린 상상을 본다. 결국 자신을 이용하여 사물이나 상황 자체를 감추고 있다.
* 표현하는 방법, 설득하는 방법, 발언에대한 기술적인 것에도 분명 고심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기술로는 미치지 못하는 것, 결국 의견을 말하는 사람의 성격이나 용모, 인품, 생활태도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 싫증을 느끼는 이유는 자신의 성장이 멈췄기 때문이다.
* 피곤하다고 느낀다면 사고를 멈추고 휴식을 취하거나 잠을 자는 것이 최선이다. 그리고 다시 의연히 활동할 수 있도록 내일을 향해 준비하라.
* 우리는 특정한 그 무언가가 자신에게 쾌감 또는 불쾌감이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 모든 것은 자신의 사고방식의 작용에 의한 것이다.
* 자유를 추구하고, 사물을 보는 시점을 보다 자유롭게 하여 자신의 능력과 개성을 최대한 발휘하려고 하는 노력은 많은 이점을 낳는다.
<친구에 대하여>
* 친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눠라. 여러 가지에 대하여 이야기하라. 그것은 단순한 수다가 아니다. 자신이 이야기한 것은 자신이 믿길 원하는 구체적인 어떤 것이다. 가슴을 열고 허심탄회하게 친구와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가 명확히 보인다. 또한 누군가를 친구로 삼는다는 것은 자신이 그 친구 안에 존경할 만한 그 무엇, 인간으로서 어떤 동경을 품고 있음을 뜻한다. 그렇기에 친구를 사귀고,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존경하는 것은 높은 곳을 향함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 늘 민감하고 날카로울 필요는 없다. 특히 사람과의 교제에서는 상대의 어떤 행위나 사고의 동기를 이미 파악했을지라도 모르는 척 행동하는 일종의 거짓 둔감이 필요하다. 밀은 가능한 한 호의적으로 해석해야 하며, 상대를 소중한 사람인 양 대하되 결코 이쪽이 일방적으로 배려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아야 한다. 맟 상대보다 둔한 감각을 가진 듯이. 이것이 사교의 요령이며, 사람에 대한 위로이기도 하다.
* 어린아이는 인간관계를 돈벌이나 이해관계, 연애로 시작하지 않는다. 일단은 친구관계에서 시작한다. 즐겁게 놀고, 싸우고, 위로하고, 경쟁하고, 서로에게 제안하고...여러 가지 일이 두 사람 사이에 우정이라는 것을 형성하고 서로는 서로에게 친구가 된다.
<세상에 대하여>
* 세상에 존재하면서 이 세상을 초월하여 살아라. 세상을 초월하여 산다는 것은 우선 자신의 마음과 감정이 시도 때도 없이 작용하여 이쪽저쪽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정동에 휘둘리는 것이 아닌, 정동이라는 말에 올라타 능숙하게 그것을 다루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해지면 세계와 시대의 흐름, 변화에 휘둘리지 않는다. 그리고 확고한 자신을 가지고 강인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된다.
* 반대 의견이나 새롭고 이질적인 발상을 두려워하고 자신들의 안정만을 추구하는 자세는 오히려 조직과 사람을 근원부터 부패시켜 급격한 퇴폐와 파멸을 초래하고 만다.
* 반드시 모든 이로부터 사랑받아야 한다고 생각지 말라. 이러한 때에는 무리하게 애쓰지 않고, 평소의 자세로 담담히 지내는 것이 최선이다.
* 살아 있는 물고기를 손에 넣기 위해서는 밖으로 나가 스스로 낚아 올려야 한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의견을 가지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깊이 파고들어 언어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 도덕적으로 행동하느 사람이 진정 도덕적이라 단언할 수는 없다. 그것은 단순히 도덕에 복종하고 있는 것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스스로는 아무런 생각도 판단도 하지 않고 세상에 대한 체면 때문에 단순히 따르고 있거나, 자만심에 차 그 같이 행동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 덥다의 반대는 춥다, 밝다의 반대는 어둡다, 크다의 반대는 작다....이런것들은 상대적 개념을 사용한 일종의 언어유희다. 그러나 현실도 이와 같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예컨대 '덥다'는 '춥다'에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들 두 가지 개념은 어떤 현상에 대해 자신이 느끼는 정도의 차이를 이해하기 쉽게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도 이처럼 대립한다고 믿는다면 그것이 자신을 괴롭하는 곤란과 역경으로 작용해 작은 변화가 큰 고통이 되고 단순한 거리가 소원해지거나 절교로 이어지는 단초가 되고 만다. 그리고 대부분의 고민은 이 정도의 차이를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늘어놓는 불평불만에 지나지 않는다.
* 누군가가 무언가를 인정한다. 그 이유는 세 가지다. 우선은 그 일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그것이 세상에서 너무도 흔한 일인 듯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번째는 이미 그 사실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 비판이라는 바람이 불어오지 않는 폐쇄적인 곳에는 반드시 부패와 추락이 태어나 거침없이 자란다. 비판은 깊은 의심에서 나온 심술이나 고약한 의견 따위가 아니다. 비판은 바람이다. 이마를 시원하게 식히기도, 눅눅한 곳을 건조시키기도 하여 나쁜 균의 번식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비판은 쉼 없이 들을수록 좋다.
* 조직과 파벌이라는 것은 고만고만한 도토리의 집합체, 작은 물고기의 무리와도 같아서 사고방식까지도 보통 사람의 틀 안에 가두어 버린다. 그러므로 사고방식의 차이로 조직에 익숙해지지 않는다고 하여 자신만을 이상하게 여길 필요는 없다. 그것은 조직이라는 좁은 세계를 초월한 넓은 차원에 이르렀기 때문일 수도 있으므로.
* 질서를 만들기 위해서, 나쁜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혹은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서,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 규칙이나 법률이라는 것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후에는 규칙이 존재하기에 새로운 상황이 형성된다. 그것은 규칙이 필요했을 때의 상황과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 규칙을 폐지하더라도 규칙이 없었던 과거와 똑같은 상황으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규칙은 환경도 인심도 바꿔 놓기 때문이다.
* 악인에게는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그들의 공통점이란 자신을 증오한다는 것이다.
* 포도가 탐스럽게 열려 있다. 여우 한 마리가 그곳을 찾아와 포도를 따려고 한다. 하지만 포도송이는 저 높은 가지에 달려 있어 아무리 높이 뛰어도 닿을 수가 없다. 이윽고 여우는 포도를 따겠다는 생각을 포기하고 '저 포도는 어차피 시어서 먹지도 못할 게 틀림없어'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가버린다. 이것은 이솝 우화의 서른두 번째 이야기다. 이 우화는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변명과 억지만을 늘어놓는 행태에 관한 교훈을 담고 있다. 그런데 현실에는 이 같은 여우보다 훨씬 더 교활한 인간이 있다. 그런 인간들은 손을 뻗어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많이 차지할 수 있었던 포도송이에 대해서도 '너무 시어서 먹을 수 없었다'며 거짓 소문을 낸다.
* 가짜 교사가 가르치는 것은 모두 가치 판단일 뿐이다. 그들은 인간과 사물에 대한 본질을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조금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이렇듯 인생의 본질마저 모르고 살아가도 좋은가?
* 유능한 사람이나 유명인을 곁에 둠으로써 자신이 보다 돋보이고 주목받게끔 만들려는 음흉한 속내를 지닌 인간이 있다. 그런 인간을 경계하라. 그 전형적인 예가 정치가다. 정치가는 유능해 보이는 사람들, 세상에 이름을 널리 알린 지식인이나 유명인을 기꺼이 자신의 주변에 두려고 하며, 무슨 일이든 그들이 참여하도록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정책을 펼침에 있어 효율적이고 유용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자신의 허점, 공허함을 위장하기 위해서다. 결국 자신이 주인공이기 위해 끊임없이 타인을 이용한다.
* 한 번 말로 뱉은 것은 단호하게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위대한 청렴함으로 여겨진다. 남자답고 결단력이 있는 듯 느껴지기도 하며, 의지가 강한 사람으로도 보인다. 왠지 모르게 그 행위가 옳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자. 한 변 뱉은 말을 단호하게 실행하는 것은 일종의 완고함은 아닌지, 감정적인 행위나 고집의 표출은 아닌지,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이면에 명예심과 같은 허영심이 감춰져 있는 것은 아닌지.... 행위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좀 더 다른 이성적인 시점에서 그 행위가 진정 바람직한가 아닌가를 파악한 뒤에 행해야 하지 않을까.
* 빚진 것을 돌려줄 때에는 과게에 자신이 맏았던 것보다 더 충분히, 더 넉넉히 되돌려주어라. 더해진 부분은 도움을 주었던 상대에게 이자로 돌아가 그를 기쁘게 할 것이다. 이것은 갚는 쪽에게도 기쁨을 안겨준다. 되돌려 주는 사람은 좀 더 많이 되갚음으로써 과거 도움을 청했을 당시의 초라함과 작은 굴욕감을 넉넉한 양으로 되사게 한다.
<인간에 대하여>
* 타인을 이렇다 저렇다 판단하지 말 것. 타인을 평가하지도 말 것. 타인에 대한 소문도 입에 담지 말 것. 그 사람은 이렇다 저렇다 하는 생각도 애당초 하지 말 것. 그 같은 상상이나 사고를 가급적 하지 말 것. 이 같은 것에 좋은 인간성의 상징이 있다.
* 인간과 자연, 이런 식으로 대립시켜 보면 인간과 자연은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 자연 속에 포함된 존재이다. 그렇기에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자연적 성향은 본래 마땅히 모욕해야 할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있다. 사회적인 고상함을 강조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강하게 주장하듯 인간성을 일그러뜨리는 것도 아니요, 수치스러워할 것도 아니요, 반인간적인 것도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연 그 자체이며, 필연적으로 자연의 본성을 가지고 있다.
* 큰 칭찬을 받는다. 그때 칭찬받는 한 사람은 매우 부끄러워 한다. 다른 한 사람은 더욱 자만해진다.
* 자신을 카리스마를 가진 깊이 있는 사람처럼 보이길 원한다면, 어느 정도 자신의 모습을 감출 수 있는 일종의 어둠을 몸에 두르면 된다. 자신의 모든 것이 온전히 드러나지 않도록, 밑바닥이 보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 끝,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일종의 신비와 깊이를 느끼기 때문이다. 연못과 늪이 그 혼탁함으로 인해 바닥이 보이지 않으면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늪의 깊이에 두려움을 느낀다. 카리스마 있는 인물이라 불리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란 그 정도의 것이다.
* 체험만으로는 부족하다...
분명 체험은 중요하다. 체험에 의해서 사람은 성장할 수 있다. 그러나 갖가지 체험을 많이 했다고 해서 다른 사람보다 무조건 훌륭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비록 많은 체험을 했을지라도 이후에 그것을 곰곰이 고찰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 될 뿐이다. 어떤 체험을 하든지 깊이 사고하지 않으면, 꼭꼭 씹어먹지 않으면 설사를 거듭하게 된다. 결국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며 무엇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한다.
* 대개의 사람은 자신의 약점에 대해서는 보고도 보지 못한 척 외면한다. 그러나 성공한 사람들은 그것을 똑바로 마주하며 자각한다. 그것이 보통 사람과 그들의 차이다.
* 약속은 개인 간의 약속에 그치지 않는다. 약속에 요구되는 언어의 이면에 있는 것이 약속의 진정한 정신이다....그것은 인간적인 맹세라 말할 수 있다.
* 까딱 잘못하면 낙상 사고가 일어나기 쉬운 계곡의 좁은 비탈길이나 다리 같은 곳에는 반드시 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사실, 실제로 사고가 일어나면 난간과 함께 떨어져 버릴 테니 확실한 안전을 보장받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난간으로 인해 나름의 안정감을 얻을 수는 있다. 이러한 난간처럼 부모, 교사, 친구는 우리에게 보호받고 있다는 안도감과 안정감을 안겨준다. 비록 그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은 얼마 받을 수 없을지라도, 의지하고 그댈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마음을 지탱하는 큰 지지대가 되어 준다. 특히 젊은 사람에게는 난간과 같은 역할을 묵묵히 맡아줄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다. 스스로가 약하기 때문이 아니라 더욱 잘 살아가기 위해서.
* 잘못에는 책임을 지려고 하면서 어째서 꿈에는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가?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자신의 꿈이지 않는가? 내 꿈은 이것이라며 드높여야 하지 않는가? 그만큼 유약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용기가 없어서인가? 애초 자신의 꿈에 책임을 질 생각이 없다면, 꿈은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 인품은 중요하다. 사람은 때때로 그 사람의 의견이나 아이디어에 찬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사람됨에 찬동하기 때문이다. 인품은 무슨 까닭에서인지 연출이 불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자신이 얼마나 좋은 인품인지를 아무리 떠벌려도 사람들은 신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중은 자신이 이룬 선행에 대해서 침묵하는 사람을 신용하고 함께하려 한다.
* 너무 어릴 때 성공하여 공적을 쌓고 추앙을 받으면, 그 사람은 오만과 같은 삐뚤어진 감각에 사로잡혀 동연배의 사람이나 차근차근 노력해 가는 사람에 대한 외경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만다. 뿌남ㄴ 아니라 성숙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며 성숙에 의해 유지되는 문화적 환경에서도 자연히 멀어진다. 타인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성공을 이루고 일에 깊이를 더하는데, 자신은 그것을 이루지 못하고 언제까지나 어린아이처럼 과거의 성공과 공적을 간판으로 삼으려는 인간이 되어 버린다.
* 자신이 본업에 힘을 쏟아 충분한 성과를 얻은 사람은 자신처럼 일하는 사람이나 동업자에 대해서는 관용을 가지고 이해심 넓은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자신의 일을 충분히 해내지 못하는 사람, 돈만을 목적으로 시큰둥하게 일하는 사람은 동업자에게 온갖 원망과 증오를 품는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인생을 착실히 살아가지 않는 사람은 타인에 대하여 증오를 가지는 경우가 많다.
* 인간의 성격은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분노라는 것은 한때의 충동이며,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그 감정을 처리할 충분한 능력이 있다....우리는 그 감정들을 자유자재로 처리하고 다룰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문장을 쓰기 위해 문장의 기술을 아무리 배웠다고 해도 논리적인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표현이나 문장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기술을 배우기 이전에 자신의 머릿속을 개선하는 일이 우선이다.
*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자란 나무, 그 나무들이 성장하는데 거센 바람과 거친 날씨가 없었다면 그 같은 성장이 가능했을 까?...인생에는 여러 가지 악과 독이 존재한다. 그것들은 가급적 없는 편이 나으며, 그러한 환경 속에서 사람은 건전하고 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증오, 질투, 아집, 불신, 냉담, 탐욕, 폭력...혹은 모든 의미에서의 불리한 조건과 장애...그 같은 악과 독이 존재하기에 사람은 극복할 기회와 힘을 얻고,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만큼 강하게 단련된다.
* 에고이스트, 즉 이기주의자는 무슨 일이든 미리 손익을 계산하고 자신에게 득인지 아닌지를 철저히 가늠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가까이에 있는 것을 중시하고 자신에게서 먼 것을 경시하는 경향의, 단순하고 근시안적인 계산을 하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에고이스트가 사고하는 거리의 기준은 본인이 때마다 멋대로 판단한다. 그런 의미에서 에고이스트의 계산은 조금도 면밀하지도 사실을 반영하지도 않는, 굳이 말하자면 감정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즉 에고이스트의 판단은 근거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에고이스트는 감정적이고 신용하기에는 부족한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 적극적인 열정이 의견을 만들고 마침내 주의, 주장이라는 것을 낳는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의 일이다....아무리 옳은 듯 보이는 의견이나 주장도 끊임없이 신진대사를 반복하고, 시대의 변화 속에서 사고를 수정하여 다시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 사람을 볼 때는 그 사람의 고귀함을 보도록 하라. 그 사람의 비열한 면이나 표면상 드러나는 것만 본다면, 그렇게 보는 이 스스로가 매우 좋지 않은 상태에 있다는 증거다. 그것은 누군가의 저급한 면만을 봄으로써, 어리석고 노력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에 두 눈을 질끈 감고 자신은 저런 인간들보다 고귀하다고 생각하려 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고귀함을 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과는 관계하지 마라. 자신 또한 그와 똑같은 저급한 인간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 서로 사랑할 때에도, 서로 싸울 때에도, 또한 서로 존경할 때에도 언제나 두 사람 중 한쪽만이 고뇌하는 역할을 도맡는다. 그 사람들의 특징은 공통적이다. 결국 성급한 성격이다. 성격이 급한 사람은 어떠한 경우나 상황, 일이 진행되는 순간순간 단락적으로 반응하며, 그때마다 감정을 파열시키고 지나친 언동을 저지르고 만다. 그 때문에 아주 평범한 일조차도 여러 손이 가는 번잡한 일이 되어버린다.
* 인생에는 돈도, 쾌적한 주거도, 건강하고 풍성한 식사도 필요하다. 그것들을 손에 넣음으로써 사람은 독립하여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소유가 도를 넘으면 사람은 180도 돌변하여 소유욕의 노예가 되어버린다. 소유하기 위해서 인생을 소비하고 휴식 시간까지 구속당하며, 조직에 조종당하고 끝내는 국가의 구속까지 받게 된다. 인생이란 것이 끝없이 많이 소유하는 경쟁을 위해서 주어진 시간일 리 없다.
* 용기 있는 사람을 움직이기 위한 요령이 있다. 그 행위가 위험으로 가득하다, 상당히 어렵다는 사실을 알리면 된다. 실제로는 그만큼 위험하고 곤란한 일이 아니라 할지라도 말이다. 용기 있는 사람은 그 행위가 위험하기 때문에 자신이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도 움직이지 않을 것 같은 기분에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 행위나 상황이 타인에게는 상당히 어려운 것이기에 도전하려는 심리다.
<사랑에 대하여>
* 사랑이라는 것은 젊고 아름다운 사람을 사랑하여 손에 넣고자 하거나, 훌륭한 사람을 어떻게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그 영향력 아래에 두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과 비슷한 자를 찾거나 슬픔을 나누는 것도 아니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과는 완전히 정반대이 삶을 사는 사람을 그 상태 그대로, 자신과는 반대의 감성을 가진 사람을 그 감성 그대로 기뻐하는 것이다. 사랑을 이용하여 두 사람의 차이를 메우거나 어느 한쪽을 움츠러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 모두 있는 그대로 기뻐하는 것이 사랑이다.
* 처음 듣는 음악의 경우, 우리는 그 익숙하지 않는 것을 꺼리지 않고 일단 마지막까지 듣는 인내와 노력, 관용을 가져야만 한다. 그것을 반복함으로써 친밀함이 생기고 이윽고 그 음악의 매력을 조금씩 발견하게 된다. 그럼으로써 음악이 가진 깊은 아름다움을 발굴해 내고 그것을 사랑하게 되며 그 음악이 자신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되어 간다. 이것은 비단 음악에 한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사랑에 대해서도 처음의 낯설음에서 출발하여 사랑을 배우는 길을 걸어왔다. 일을 사랑하는 경우에도, 자신을 사랑하는 경우에도,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사랑은 언제까지고 이처럼 배움의 길을 거니는 모습을 보여준다.
* 당신은 연인을 원하는가. 좋은 사람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가. 자신을 깊이 사랑해 줄 사람을 원하고 있는가. 이것은 실로 잘난 척의 최절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만큼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받기 위하여 좋은 인간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는지 반문해 보라.
* 사랑이란 자신과 다른 방식으로 느끼며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을 이해하고 기뻐하는 것이다. 자신과 닮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는 대립하여 살고 있는 사람에게 기쁨의 다리는 건네는 것이 사랑이다. 차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차이를 사랑하는 것이다.
* 누구나 타인에게 친절을 베푼 되에는 쾌감을 맛볻나. 친절한 행동이나 선행 자체가 쾌감일 리는 없고, 그러한 행위 뒤에 자신이 조금은 성자 또는 순결한 사람에 다가간 듯한 기분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 속에서 친구나 지인에게 친근하게 대할 때에는 그것 또한 선행이라 의식하지는 않는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좋은 일을 하고, 그 행위에 의해 자신이 순결한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을 맛보는 일도 없다. 바로 그 같은 것이 의식적으로 친절을 행한 행위보다 훨씬 더 진실한 마음과 사랑이 가득한 상위의 것이다.
* 사람은 사랑하는 것을 잊는다. 그렇게 되면 다음에는 자기 안에도 사랑할 가치가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자신마저 사랑하지 않게 된다. 이로써 더 이상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만다.
* 악이란 무엇인가? 사람을 모욕하는 것이다. 가장 인간적인 것이란 무엇인가? 어떤 사람에게도 창피를 안겨주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얻는 자유란 무엇인가? 어떤 행위를 해도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
* 주어진 임무나 약속을 잘 이해하고 꾸준히 지키기 위해서는 충분한 이해력과 기억력이 필요하다. 이해력과 기억력은 단련하여 획득할 수 있는 지성의 일부다. 또한 상대에 대하여, 혹은 멀리 있는 누군가에 대하여 동정심을 갖기 위해서는 충분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상상력 또한 훌륭한 지성의 일부다. 인간적인 윤리나 도덕이라는 것은 이런 식으로 지성과 강하게 결부되어 있다. 그리고 지식이 없는 지성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듯 보이는 지금의 공부 하나하나가 인간으로서 잘 살아가는 데 필요한 토대가 된다고 할 수 있다.
* 우리가 읽어야 할 책이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읽기 전과 읽은 후 세상이 완전히 달리 보이는 책. 우리들을 이 세상의 저편으로 데려다 주는 책. 읽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마음이 맑게 정화되는 듯 느껴지는 책. 새로운 지혜와 용기를 선사하는 책. 사랑과 미에 대한 새로운 인식, 새로운 관점을 안겨주는 책.
* 대부분의 독서는 많은 유익함을 가져다준다. 특히 고전은 자양분으로 충만해 있다. 옛 서적을 읽는 것으로 우리는 지금의 시대에서 멀리 날아갈 수 잇으며, 완전히 낯선 외국의 세계로 갈 수도 있다. 그런 뒤 다시 현실로 돌아왔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 현대의 전체적인 모습이 지금까지보다 더욱 선명히 보인다. 이렇게 우리는 새로운 시점을 가지고 새로운 방법으로 현대를 접할 수 있게 된다. 막다른 길에 서 있다고 느낄 때 읽는 고전은 지성의 고양에 특효약이다.
* 좋은 학교에 가면 좋은 교사가 있고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사실일까? 무엇을 배울 것이라 기대하는가? 어떤 교육을 받고자 하는가? 교사나 학교에 따라 가르치는 것이 달라지는 것일까? 진정한 교육자란 경력이나 실적에 의해서 가늠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능력을 최대한 빌휘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결국 진정한 교육자란 당신을 굴레에서 해방시켜주는 사람이다. 당신이 생동감에 넘쳐 자유롭고 활발하게 본연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사람이야말로 지정한 교육자요, 당신의 학교다.
* 일을 완성하는 데에는, 재능과 기량보다도 시간에 의한 숙성을 믿으며 끊임없이 걸어가는 인내의 기질이 결정적인 역할을 맡는다.
* 배우고 지식을 쌓고 지식을 다시 교양과 지혜로 넓혀가는 사람은 지루함을 느끼지 않는다. 모든 것이 이전보다 한층 더 흥미로워지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같은 것을 보고 들어도 그 사람은 평범한 것에서 교훈이나 단서를 간단히 찾아내고 사고의 틈새를 메울 그 무언가를 발견한다....매일이 발견과 탐색으로 가득하기에 지루할 틈이 없다.
* 자신이 가진 힘의 4분의 3정도의 힘으로 작품이나 일을 완성시키는 것이 가장 적당하다. 온 힘을 다해, 온 마음을 기울여 완성한 것은 왠지 모르게 보는 이에게 고통스러운 인상을 주고 긴장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종의 불쾌감과 혼탁한 흥분을 필연적으로 가져온다. 거기에는 그것을 만들어낸 인간의 불쾌감이 어딘가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4분의 3 정도의 힘으로 완성한 것은 어딘지 모르게 느긋한 여유가 느껴지는 넉넉한 작품이 된다. 그것은 일종의 안심과 건전함을 선사하는 쾌적한 인상의 작품이다. 결국 많은 사람이 쉽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완성된다.
* 무엇인가의 프로페셔널이 되려고 한다면 미연에 극복해 두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성급함, 조급함, 앙갚음을 포함한 복수욕, 정욕이라는 것이다. 자신 안에 잠재되어 있는 이것들을 배척하고 충분히 제어할 수 있게 된 후에 비로소 일에 매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이것들이 범람하는 강물처럼 거칠어진 마음이 되어 모든 것을 망쳐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 당신이 서 있는 장소를 깊이 파고들어라. 샘은 당신의 발 아래에 있다. 이곳이 아닌 어느 먼 장소에, 알지 못하는 이국의 땅에 자신이 찾는 것, 자신에게 가장 맞는 것을 찾으려는 젊은이들이 지나치게 많다. 실은 자신이 한 번도 시선을 주지 않았던 발아래이기에 끝없이 깊은 샘이 자리하고 있다. 추구하는 것이 묻혀 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많은 보물이 잠들어 있다.
* 수학에서 가장 짦은 길은 출발점과 도착점을 직선으로 잇는 길이라 말한다. 그러나 현실에 있어 가장 짧은 길은 그렇지 않다. 옛날 뱃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지금 가장 알맞게 불어오는 바람이 돛을 활짝 부풀려 이끄는 항로가 목적지를 향한 최단거리"라고. 이것이야말로 실제로 일을 해낼 경우에 통용되는 가장 짧은 길에 관한 이론이다. 일은 머리로 세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현실의 그 '무엇'이 먼 길을 가장 짧은 길로 만들어 준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사전에 알 수 없으며, 현실에 발을 내딛었을 때 비로소 알게 된다.
* 모네가 그린 점묘화는 가까이서 보면 무엇을 표현한 것인지 알 수 없다. 멀찌감치 물러서서 감상한 후에야 바로소 거기에 그려진 대상의 윤곽을 알 수 있다. 어떤 일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 사람도 이와 같다. 가까이에 있으면 무엇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일에서 멀찌감치 떨어져서 보면 무엇이 문제인지 또렷이 보인다. 소용돌이를 구성하는 축이 무엇인지 확연히 부각되기 때문이다. 이 방법은 복잡한 것을 단순화시킨다. 사상가라 불리는 사람은 우선 이 방법을 사용하여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일에서 굵직한 틀이 되는 것을 끄집어내어 단순화하고, 어느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것으로 만든다.
* 일반적으로 '철학을 가진다'라고 말할 경우, 어느 정도 굳어진 태도와 의견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을 확일화하도록 만든다. 그런 철학을 갖기보다는 때때마다 인생이 들려주는 속삭임에 귀 기울이는 것이 낫다. 그 편이 일이나 생활의 본질을 명료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야말로 바로 철학하는 것이다.
* 천부적인 재능이 없다고 비관할 필요는 없다. 재능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습득하면 된다.
* 지금까지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와 깊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과 일단 결별하라. 그리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되돌아보라. 그러면 무엇이 보이는가? 지금까지 살아온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섰을 때, 마을 중심에 있던 탑이 다른 집들보다 얼마나 높게 솟아 있는지를 비로소 알게 된다. 그것과 마찬가지 일이 일어난다.
* 업무는 물론이고 대개의 일에 대하여 냉정하고 침착하게 대응할 때, 그 진행이 원활히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 냉정함에는 성격이 다른 두 종류가 존재한다. 하나는 정신활동이 쇠퇴했기 때문에 생기는 냉정함이다. 어떤 일에든 무관심하고, 대부분의 일을 자신과 동떨어진 별개의 것으로 느끼기 때문에 겉에서 보기에는 매우 냉정한 듯 보인다. 또 하나는 자신의 충동과 욕망을 극복함으로써 얻는 냉정함이다. 이 냉정함을 가진 사람은 정확한 대처가 가능하고 대부분의 것에 이해를 표하며, 일종의 쾌활함이 느껴진다는 특징이 있다.
* 현명하게 생각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면 어느 결에 그 사람의 얼굴은 슬기로움의 빛으로 채워진다. 표정뿐 아니라 겉모습에서도 현명함이 묻어난다. 예컨대 타인의 눈에는 그의 동작이나 자세에서 섬세함이 엿보인다. 이렇듯 어떤 정신을 가지는가에 의해 인간의 행동 또한 달라진다. 건강한 사람이 활기차게 걷듯이, 슬품과 실의를 간직한 사람이 터덜터덜 걷듯이.
* 이러이러한 원인이 있었기에 이 같은 결과가 되었다. 이처럼 생각되는 일들은 많다. 그러나 그 원인과 결과는 우리가 멋대로 명명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어떠한 사물이나 현상도 원인과 결과로 간단히 분석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 않다.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요소가 수없이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같은 사실을 무시한 채 어느 하나의 것만 원인과 결과로 단정하여, 거기에 어떤 강한 연관성이 있는 듯 생각하는 것은 너무도 어리석은 일이다. 원인과 결과로써 사물의 본질을 이해한다고 느끼는 것은 오만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똑같은 생각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당연히 옳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 어떤 일이 불합리하다는 것이 그것을 폐지해 버리는 최우선적인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불합리하기에 오히려 그 같은 일을 필요로 하는 첫 번째 조건이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 완전히 새롭고 독특한 것을 발견하는 특수한 촉수를 가진 소수의 사람을 독창적이라 일컫는 것이 아니다. 이미 낡은 것이라 여겨지는 것,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어 너무도 흔하다 여겨지는 것, 많은 사람들이 충분히 가지고 있다는 생각에 너무도 쉽게 간과하는 것을 마치 전혀 새로운 창조물인 양 재검토 하는 눈을 가진 사람이 독창적인 사람이다.
* 가끔은 등을 굽히고, 가능한 한 자세를 낮추듯 웅크리고 앉아 풀과 꽃, 그 사이를 춤추는 나비를 가까이서 바라보라. 지금껏 그저 멀리서 내려다보기만 했던 그곳에는 풀과 꽃, 곤충이라는 또 다른 세계가 있다. 어린아이가 매일 당연한 듯 보고 있는 세계의 모습이 펼쳐져 있다.
* 눈앞의 현실만 보고 그때마다 현실에 적합한 대응을 하는 사람은 명백한 현실주의자다. 이는 어쩌면 믿음직스럽게 보일지도 모른다. 물론 우리는 현실 속에서 살고 있으므로 현실에 대응하는 것은 중요하다. 현실은 멸시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토대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사물의 본질을 보려고 하는 경우에는 현실만을 봐서는 안 된다. 현실의 맞은편에 있는 보편적인 것, 추상적인 것이 무엇인지 꿰뚫어 보는 시선을 지닐 수 있어야 한다. 고대 철학자 플라톤과도 같이.
* 제대로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최소한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사람과 교제할 것, 책을 읽을 것, 정열을 가질 것. 이들 중 어느 하나라도 결여된다면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없다.
<아름다움에 대하여>
* 이상을 버리지 마라. 자신의 영혼 속에 있는 영웅을 버리지 마라. 누구나 높은 곳을 목표로 한 이상과 꿈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과거의 일이었다며, 청춘 시절의 일이었다며 그리운 듯 떠올려서는 안 된다. 지금도 자신을 발전시키기 위한 이상과 꿈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어느 사이엔가 이상과 꿈을 버리게 되면 그것을 말하는 타인이나 젊은이를 조소하게 된다. 시샘과 질투로 마음이 물들어 혼탁해지고 만다. 발전하려는 의지나 자신을 이기려는 마음 또한 버려지고 만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자신을 하찮게 여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결코 이상과 꿈을 버려서는 안 된다.
* 자유롭고 높은 곳으로 당신은 가려고 한다. 하지만 당신은 아직 젊으며 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간절히 원한다. 당신이 사랑과 희망을 결코 버리지 않기를. 당신의 영혼에 깃든 고귀한 영웅을 버리지 않기를. 당신이 희망의 최고봉을 계속 성스러운 것으로 바라보기를.
* '어디에서 왔는가'가 아니라 '어디로 가는가'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이다.
* 꿈을 즐거운 듯이 입으로만 내뱉을 뿐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그럭저럭 현재에 만족하며 주저앉지 마라. 쉬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보다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라!
* 주변을 어둡게 함으로써 상대적으로 하늘이 밝게 빛나는 듯이 보이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기술을 그림을 그리는 것 외에도 응용할 수 있다.
* 때로는 먼 시야라는 것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예컨대 친한 친구들과 떨어져 그들을 생각할 때, 함께 있을 때보다 그들은 한층 더 아름답고 그립게 여겨진다. 음악 또한 그것과 멀어져 있을 때 그것에 대하여 더 큰 사랑과 그리움을 느끼게 된다. 그처럼 때로는 대상과 거리를 두고 멀리 떨어져 응시할 때, 많은 것들이 자신의 생각보다 더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임을 깨닫게 된다.
* 지식이 아니라, 자신의 눈이 지금 보고 있는 아름다움을 인정하라.
* 소나무가 자아내는 분위기는 어떠한가. 마치 귀를 기울이고 무엇인가를 들으려는 듯하다. 전나무는 어떠한가. 꿈쩍도 하지 않은 채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이 나무들은 조금도 초조해하지 않는다. 당황하지 않고, 조바심내지 않으며, 아우성치지 않고, 고요함 속에서 가만히 인내할 뿐이다. 우리도 소나무와 전나무의 태도를 배울 필요가 있다.
* 때로는 광활한 자연 속으로 나아가 긴장을 풀자. 자연은 정결할 뿐만 아니라 우리들에게 어떤 의견도 , 불평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 기술이 이미 숙련을 지나 노련의 영역에 이르는 것은 어떤 상태를 가리키는 것일까. 우선 일의 진행에 있어 실수가 없다. 그리고 실행에 옮길 때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다. 기교를 부리지 않는 듯 보이면서도 매우 정확하고 낭비가 없다.
* 모든 좋은 것은 멀리 돌아가는 길을 통해 목적에 다다른다.
* 자신에게 시련을 주어라. 아무도 모르는, 오직 증인이라고는 자신뿐인 시련을.... 그 수많은 시련을 이겨냈을 때 스스로를 다시 평가하고, 자신이 고상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사람은 진정한 자존심을 가질 수 있다. 이것은 강력한 자신감을 선사한다. 그것이 자신에 대한 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