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이 책에서 문명의 붕괴에 대한 일반적인 11종류의 가설에 대해 먼저 소개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반박한다.
그러면서 이 모든 붕괴를 설명할 수 있는 공통적인 이론을 도출하겠다고 한다.
원래 성격상 환원주의나 몇 개로 귀결되는 원칙을 좋아하지 않아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읽어나갔다.
게다가 그간의 모든 붕괴의 원인에 대한 가설을 부정하고 과연 어떤 원리를 제시할지, 토인비 까지도 비판하고 있는 저자에 대해 일을 너무 크게 벌여놓은 저자가 내심 걱정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고 읽는 과정이 살짝 지루했다.
그런데 일반적인 이야기들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론을 논하기 위해 '한계수익 체감의 법칙'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부터는 이 책에 대해 갑작스런 몰입을 경험하게 되었다. 읽는 속도가 빨라지고 책에 빠져들게 된다. '삼라만상의 공통적인 원리'의 희소성을 익히 알고 있는 나로서는, 이 진기한 논리에 이런저런 반론을 가해보지만, 결국 이것은 또 하나의 희소했던 '공통적인 원리'가 될 수 있음을 시인할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은 마치 황금률, 복리의 법칙, 멱함수의 법칙 등과 같이 세상을 바라보는 또하나의 유용한 프레임이 되어줄 것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중반부에서 후반까지 저자는 이러한 논리를 실제 역사 사례에 접목해보고, 다시 앞에서 언급했던 11종류의 문명 붕괴의 가설에 대입시켜 적용가능성을 검증하고 저자의 이론에 대한 추가적인 내용과 함의를 밝힌다. 여기까지도 훌륭했다.
그러나 책의 마지막 부분, 현대 문명의 붕괴를 지연시키기 위한 저자의 생각을 논하는 부분은 가히 압권이라 할 만 하다...
고대 사회에서 한계 수익의 저하를 해결하는 방법은 새로운 에너지원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농업, 목축, 인력에 주로 의존하던 경제체제에서 이것은 영토의 팽창을 통해 이루어졌다. 고대 로마와 춘추 전국 시대의 진나라는 바로 이 길을 택했다. 과거의 무수히 많은 제국이 택한 방식도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지금처럼 자체적으로 비축해둔 에너지 자원을 가지고 경제를 운영하는 체제에서는, 또 세계 전체가 가득 차 있는 상황에서는 이런 길을 선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본과 기술은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에너지원을 개발하는 데 투입되어야 한다. 한계 수익의 저하가 표면화되지 않도록 기선을 제압하는 길은 기술 혁신과 생산성 향상뿐이다.......산업 사회가 한계 수익이 줄어드는 시점에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불원간 그런 상황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최근의 역사를 보면 우리는 적어도 화석 연료를 비롯한 몇 가지 원자재에서 한계 수익이 줄어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생활 수준의 하락과 세계적 붕괴를 모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에너지를 개발해야 한다. 새로운 에너지가 나온다 하더라도 복잡성에 대한 한계 수익이 저하되는 추세를 뒤집어엎을 수는 없겠지만 복잡성에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은 전보다 많아질 것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권력의 진공이 없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기 때문에 진작에 붕괴했어야 할 이 세계가 아직도 유지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하나의 역설이 아닐 수 없다. 한계 수익의 저하를 감내하면서 일시적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는 것은 모두의 피를 말리는 치열한 경쟁 상황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유예된 시간을 우리는 경제적 안정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새로운 에너지를 찾아내고 개발하는 데 활용해야 한다. 설령 다른 경제 부문에서 자원을 빼오는 한이 있더라도 새로운 에너지의 연구개발에 무엇보다도 중점을 두어야 한다. 모든 산업 국가는 충분한 자금을 이 분야에 투입해야 하고 거기서 얻는 결과를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자금이 민간에서 나오든 정부에서 나오든 어쨌든 충분한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작금에 이르러서야 주요한 이슈가 되고 있는 문제들을 이미 20여년 전에 명확하게 예언했던 이 혁신적인 책을 보라..
그러나.. 이런 책이 우리나라에서는 절판이라는 사실에 조금 안타까웠다....
rating : ★★★★★
<감사의 말>
* 아내와 나의 아들 에미트는 연구와 집필에 쏟아부어야만 했던 꼬박 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흔들림 없이 나의 뒤를 밀어주느 아량을 베풀어주었다.
<옮긴이의 말>
* "현대의 복잡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우리가 역사적으로 얼마나 비정상적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깨닫지 못한다. 인간이 진화를 해온 수백만 년 동안 일관된 정치적 단위는 자급자족을 하며 독립적으로 살았던 자율적인 소규모공동체였다. 오늘날의 우리에게 언무나 익숙한 위계쩍이고 조직적이고 상호의존적인 국가들으 장구한 인류사에서는 대단히 희귀한 현상으로서 불과 6,000년 전에 비로소 나타난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이 희귀한 현상이 어떻게 발생했고 어떻게 소멸해왔는가를 실증으로 분석한 연구서다.
* 저자가 이 독특한 현상을 분석하는 데 동원하는 강력한 개념 장치들은 복잡성과 한계 수익 체감의 원리다. 인간 공동체가 자꾸만 복잡해지는 것은 복잡한 조직이 문제 해결을 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복잡한 조직을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투자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투자 규모는 점점 커지는 반면 이러한 투자에서 돌아오는 수익은 점점 감소하기 마련이다. 결국 한 공동체가 새로운 투자를 할 수 있는 자원은 차츰 고갈된다. 그리고 종국에 가서는 대부분 무너진다.
<붕괴란 무엇인가>
* 문명은 취약하며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 이 연구의 목적은, 다양한 맥락에 적용할 수 있고 오늘의 시대상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붕괴의 일반 이론을 모색하는 데 있다. 이것은 고고학이나 역사학 계열의 책이지만 조금 더 깊이 파고 들어가면 사회 이론을 다루는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 '붕괴한 사회는 일정한 단계 이상으로 확립된 정치사회적 복잡성의 수준을 급격하고 현저하게 상실한 사회이다.' 여기서 "확립된 수준"이라는 말이 중요하다. 그것은 적어도 한두 세대 이상은 복잡한 수준을 유지했거나 그 수준에 바짝 접근해 있었던 사회가 와해되었을 때만 붕괴하는 말을 쓸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붕괴는 또한 급격하게 이루어져야 한다....아울러 정치사회적 구조가 와르르 무너져내려야 한다. 정도가 약하거나 장기간에 걸친 타격은 세력 약화나 쇠퇴로 이해되어야 마땅하다.
* 붕괴의 명백한 조짐은 가령 이런 상황들을 말한다.
- 계층화 및 사회적 분화 수준이 저하되는 경우
- 개인.집단.영토의 경제적.직업적 전문화가 후퇴하는 경우
- 중앙의 통제력이 약화되는 경우, 즉 다양한 경제집단과 정치집단에 미치는 엘리트의 장악력과 통합력이 줄어드는 경우
- 행동 준칙이나 규제가 약화되는 경우
- 웅장한 기념물이나 위대한 예술품처럼 "문명"을 정의하는 요소임과 동시에 복잡성에 수반되어 나타나는 부문에 대한 투자가 줄어드는 경우
- 개인과 개인, 정치 집단과 경제 집단, 중심과 주변부 사이의 정보 교류가 줄어드는 경우
- 자원의 공유, 거래, 배분이 축소되는 경우
- 개인과 집단의 전체적 조화와 조직화가 떨어지는 경우
- 한 정치 체제 안으로 포섭된 영토가 줄어드는 경우
* 복잡한 사회가 붕괴하면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어온 다방면의 구조가 그런 능력을 상실하거나 아예 사라져버린다. 외적으로부터 방어, 내부 치안의 확립, 공공 시설의 유지.보수, 식량과 물자의 공급 같은 활동을 나라에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2 복잡한 사회의 본질>
* 모든 과학적 연구가 그렇지만 여기서도 하나의 물음은 다른 물음으로 이여지고 하나의 문제는 다른 모든 문제들과 연결되는 것처럼 보인다. 탐구의 경계선을 설정하는 것은 그래서 아주 어렵다).
* 복잡성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는 불평등과 이질성이라는 두 개념이 중요하다. 불평등은 수직적 분화나 서열로 이해해도 좋고 물적 자원과 사회적 자원에 대한 불균등한 접근 기회로 이해해도 좋다. 이질성은 좀더 복잡미묘한 개념이다. 이것은 사회를 이루는 뚜렷이 구분되는 단위나 성분의 숫자를 가리킴과 동시에 이런 단위들에 전체 인구가 분포되어 있는 방식을 가리킨다. 다양한 직업과 사회적 역할에 인구가 고르게 분포되어 있는 사회는 동질적인 사회이며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이질성과 복잡성이 증가한다. 따라서 이질성이 강한 사회는 복잡한 사회라고 말할 수 있다.
* 현대의 복잡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우리가 역사적으로 얼마나 비정상적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깨닫지 못한다. 인간이 진화를 해온 수백만 년 동안 일관된 정치적 단위는 자급자족을 하며 독립적으로 살았던 자율적인 소규모 공동체였다. 로버트 카네이로는 인류사의 99.8퍼센트를 지배한 것은 이들 자율적 지역 공동체였다고 추정한다. 오늘날의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위계쩍이고 조직적이고 상호의존적인 국가들은 장구한 인류사에서는 대단히 희귀적인 현상으로서 불과 6,000년 전에 비로소 나타난 것이다. 복잡한 사회는 일단 성립되며 자꾸 팽창하고 군림하려고 한다. 그래서 복잡한 사회는 현재 지구의 거의 모든 땅과 인간을 집어삼켰지만, 그것도 모자라서 자신의 영향권에 아직 들어오지 않은 지역을 점령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이것은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역사적으로는 대단히 희귀한 정치 형태에 익숙한 나머지 이것을 정상으로 받아들이고 그 외의 인간 경험은 양적으로는 압도적으로 많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생경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니 붕괴를 끔찍하게 무서워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 인간의 역사를 지배해온, 우두머리가 없는 작은 공동체는 동질적이지 않았다. 같은 소규모 공동체의 범주 안에서도 상당한 편차가 있었다. 현대 사회와 비교하였을 때 이들 사회가 "단순"했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크기, 복잡성, 위계, 경제적 분화 면에서는 천차만별이었다. 문화 발전을 설명하는 이론들이 천차만별인 것은 이처럼 대상 자체가 다양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개인의 정치적 야심은 공익을 추구하지 않는 한 좀처럼 용인되기 어렵다. 사회적 지위를 높이려면 잉여 자원을 확보하여 그것을 공동체 안에서 위엄을 행사할 수 있는 방식으로 베풀어 추종 세력을 만들어내야 한다.
* 정당성을 획득하고 그것을 항구적으로 유지하려면 이념적 상징을 조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구체적인 자원이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산출되고 보급되어야 한다. 그것은 복잡한 사회가 반드시 치러야 하는 비용이다. 정당성은 복잡한 사회의 본질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강조하는 요인이며 복잡한 사회의 붕괴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고려해야 할 요소이다.
* 웹에 따르면 종족 사회가 정점에 이른 지점에서 국가가 시작된다. 즉 종족 사회와 국가의 차이는 규모와 복잡성 면에서만 따질 수 있다.
* 유형학적 접근의 맹점은 특정한 유형 사이의 사회적 변화에만 주목하고 그것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유형학적 접근에서 탈피하게 되면 아주 흥미롭고 의미심장한 사회적 변화를 도처에서 확인할 수 있다.
* 국가의 기원을 설명하는 이론은 이처럼 다양하지만 많은 연구자들은 이것을 다시 두 갈래로 구분한다. 이것을 편의상 '갈등' 이론과 '통합'이론으로 각각 부른다. 이 상반된 견해는 정치적 발전을 학술적으로 규명하는 이론의 차원을 넘어 정치철학과 사회철학의 문제 영역과도 연결된다.
* 갈등이론은 막시스트들의 저술에서 가장 노골적으로 표명되었다...갈등 이론의 주도적 이론가인 로렌스 크레이더에 따르면 사회적 생산에 직접 참여하는 계급과 그렇지 않은 계급으로 사회가 양분된 결과 나타난 것이 바로 국가이다. 잉여 생산물은 비생산자의 몫으로 돌어간다. 국가는 계급 내부의 관계, 계급간의 관계를 통제하는 사회 조직이다. 국가는 직접 생산자에게 아무런 직접적 이득을 주지 못한다. 국가는 비생산자의 이익에 봉사한다. 크레이더에 따르면 국가는 대립되는 계급으로 구성되는 인간 사회의 형식적 조직이다.
* 엘리트가 누리는 수혜는 그들이 사회에 기여한 정도를 웃도는 경우가 많다. 지나간 역사를 보면 지배층은 기여도에 비해 과도한 이득을 누렸다고 보아야 옳다. 강압과 착취를 행사한 권위주의적 체제는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 붕괴라는 것은 어느 정도 확립된 복잡성이 급속도로 허물어지는 과정을 말한다. 붕괴한 사회는 갑자기 덩치가 작아지고 덜 분화되고 덜 이질화되며 전문 집단의 수도 줄어든다. 뿐만 아니라 사회 성원들의 행동에 대한 장악력도 약해진다. 잉여 자원이 줄어들기 때문에 사회 성원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혜택과 흡인력도 줄어들고 외부의 위협으로부터도 제대로 방어해주지 못한다.
<3 붕괴의 연구>
* 문명 사회를 정의 내리는 데 단골로 등장하는 예술이나 문학의 위대한 전통은 사회적.정치적.경제적 복잡성의 부수적 현상이다. 이러한 전통이 등장하는 것은 복잡성이 그러한 전통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예술과 문학은 복잡한 상황에서만 존재하는 사회경제적 목적에 이바지하기 때문이다. 문명은 복잡성과 함께 등장하고 복잡성으로 인하여 존재한다. 따라서 정의상으로는 복잡성이 사라질 때만 문명도 사라질 수 있다.
* 붕괴의 설명에는 크게 11가지의 주제가 등장한다.
1. 사회가 의존하는 중요한 자원의 고갈
2. 새로운 자원의 확보
3. 극복하기 어려운 재난의 발생
4. 상황에 대한 불충분한 대응
5. 다른 복잡한 사회들의 존재
6. 침략자
7. 계급, 갈등, 사회적 모순, 지배층의 과오나 부패
8. 사회적 기능 마비
9. 신비적 요인들
10. 우연적 사건들의 연속
11. 경제적 요인들
* 앨먼 서비스의 "진화 잠재력 법칙"...."주어진 진화의 단계에서 어떤 형태가 더 정교하게 적응할수록 다음 단계로 이행할 수 있는 잠재력은 줄어든다." 특수한 진화 "발전"은 일반적 진화 "잠재력"에 반비례한다.
* 흔히 슈펭글러의 [서구의 몰락]과 같이 묶여서 거론되고 있지만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는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고, 실제로 토인비는 이 책에서 슈펭글러를 비판한다. 12권으로 된 [역사의 연구]는 토인비가 일생을 기울여 쓴 저서인 만큼 사상적 발전과 변화의 흔적도 보여준다. 그러나 기본적 전제와 가정은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토인비는 유명한 "도전과 응전"의 틀로 문명의 발전 과정을 해석한다. 한 사회는 일련의 문제들에 봉착하기 마련인데 이 하나하나의 도전은 극복되어야 할 시련이다. 도전은 경제를 발전시키지만 "안일은 문명에 해악을 끼친다." 문명은 도전을 극복하는 가운데 발전한다.
* 전체적으로 나는 슈펭글러와 토인비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수긍하는 편이며 그것을 나의 출발점으로 삼겠다
* 특히 문제가 많은 것이 "퇴폐"라는 개념이다. 퇴폐는 골동품처럼 오래 사용되어온 개념이지만 막상 정의하려고 들면 이것처럼 알쏭달쏭한 개념이 없다. 퇴폐스러운 행동은 자신의 윤리관에 어긋나는 행동, 특히 자신이 용납하기 어려운 행동을 과거인이 저질렀을 때 그것을 지칭하는 말일 뿐이다. 행동의 윤리성과 정치적 흥망 사이에 명쾌한 논리적 인과관계가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4 붕괴의 이해 : 사회정치적 변화의 한계 생산성>
* 이 장에서 다루려는 주제는 복잡성에 대한 투자에서 거두어들이는 이익은 변화하며 그 변화의 양상은 일정한 곡선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많은 중요한 영역에서' 사회정치적 복잡성에 대한 투자를 지속적으로 하다 보면 그러한 투자에서 거두는 이익이 조금씩 떨어지는 시점이 나타난다. 처음에는 완만하게 하락하지만 점점 가속도가 붙는다.
* 수익체감의 원리는 경제학자들이 "법칙"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을 정도의 규칙성과 예측 가능성을 가진 보기 드문 현상 가운데 하나이다. 제조업 분야에서 수익 체감 현상은 추가 투입의 형태로 이루어진 투자가 그에 상응하는 생산성의 증가를 가져오지 못할 때 나타나기 시작한다.
* '평균 생산량'과 '한계 생산량'...평균 생산량은 어떤 경제활동에서 투입 단위당 산출량을 말한다. 한계 생산량은 투입이 가져오는 전체 산출량의 증가분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평균비용은 투입 단위당 비용이고, 한계 비용은 산출 단위당 전체 비용의 증가분을 뜻한다.
수익 체감의 법칙에 따르면 평균 생산량과 평균 비용은 한계 생산량과 한계 비용에서 생기는 변화에 대응하고 결국 그것을 따르게 되어 있다. 이것을 한계 생산성 체감의 법칙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그림 1은 한계 생산량과 평균 생산량의 관계를 나타낸 것이다.
* 이 책에서는 투자 단위당 수익 증가분을 나타내는 뜻으로 한계 생산량보다는 한계 수익이라는 용어를 쓸 작정이다. 한 인구 집단이 복잡성에 대한 투자에서 보게 되는 이득을 한계 수익이 더 적절하게 표현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 이제까지 논의한 네 가지 개념은 복잡한 사회가 붕괴하는 이유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인간 사회는 문제를 해결하는 조직이다.
2. 사회정치적 체제는 에너지가 투입되어야 유지된다.
3. 복잡성이 증가하면 단위 비용도 증가한다.
4. 문제 해결을 위한 대응으로 사회정치적 복잡성에 대한 투자를 하면 한계 수익이 감소하는 시점에 봉착하게 된다.
* 정보의 대량 처리는 복잡한 사회의 중요한 특성이다. 그리고 복잡한 사회가 등장하게 된 원인의 하나가 바로 이러한 정보 처리의 필요성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 투자 활동의 생산성이 저하되는 양상은 산업계 전반에서 두루 나타난다. 호넬 하트는 무기 연구개발과는 전혀 무관하거나 부분적으로만 관련이 있는 많은 분야에서 특허의 비율이 꾸준히 하락하는 일관된 양상을 보여주었다. 항공기, 자동차, 직조기, 전자계측기, 라디오, 미싱, 방적기, 무전기, 전화기, 타자기 등이 모두 그렇다. 하트에 따르면 서구에서 이루어진 주요한 발명과 발견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 최근의 연구는 연구개발비와 특허 취득 사이에 강한 비례 관계가 성립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연구개발의 생산성은 실제로 떨어지고 있다. 연구개발비가 증액되어도...이러한 투자의 한계 생산성은 감소하고 있다....
과학 영역에서 투자를 지속적으로 늘려도 한계 수익은 점차로 줄어든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예가 바로 의료 연구와 응용 분야이다.
* 교육과 전문화에 더 많은 시간 투자가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거기서 얻어지는 배움의 한계 수익은 점차 줄어든다. 배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유아기의 학습이다. 유아기의 학습은 일반적 내용으로 이루어진다. 나중에 접하는 전문적 학습은 초기의 이러한 일반적 지식에 의존하게 되므로 일반적 학습의 효용은 거기서 파생되어 나오는 모든 전문적 지식을 포함하게 된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일반적 학습은 전문적 학습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역사적으로 보면 규모가 크고 발달된 경제를 가진 복잡한 사회의 경제 성장률은 미미하기 짝이 없다. 오히려 후발 주자들이 앞서 경제 성장을 이룬 나라들보다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여기서는 중진국의 겅제 성장률이 가장 높고 그 다음이 선진국, 후진국의 순서로 나와 있다.
* 과학의 영역에서 초기의 연구가 낳은 성과에는 나중의 전문적 연구에서 얻어지는 모든 지식이 포함된다고 말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과학의 각 분야에서 가장 이름을 떨친 과학자가 주로 그 분야를 개척하는 데 앞장서면서 기본 골격을 정한 사람이라는 것은 우연으로만 돌릴 수는 없는 사실이다. 물리학의 아인슈타인, 생물학의 다윈, 사회과학의 마르크스처럼 자신의 분야를 혁명적으로 바꾸어놓으면서 막강한 영향력과 명성을 얻은 학자는 좀처럼 나타나기 어려울 것이다.
* 과학 혁명을 통하여 쿤이 패러다임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사고의 학파가 등장하면 새로운 일반적 원칙이 마련되고 그 밑바탕 위에서 후대의 전문적 연구가 이루어진다. 가장 적용 범위가 넓은 일반적 원리에서 적용 범위가 협소한 특수한 원리로 이동하는 현상은 혁명, 패러다임 개발, 패러다임 적용, 혁명이라고 하는 쿤이 제시한 순환 모델에서 거듭 확인된다. 여기서도 가장 오래 가는 지식은 패러다임을 출범시키는 일반적 원리에서 나오는 것이며 이러한 업적을 이루어낸 과학자들은 파생적 연구를 하는 후대의 연구자들보다 더 큰 명성을 얻게 된다.
* 과학의 역사를 조망할 때 전문적이고 파생적인 연구가 가져오는 효용은 그 연구에 투자되는 막대한 비용에 비하여 점점 줄어든다. 과거에는 사회가 과학을 후원하는 데 들이는 비용이 미미하였다....오늘날의 과학은 복잡한 제도, 정교한 기술, 여러 분야의 공동 연구가 이루어져야 하는 비용이 많이 드는 과정이 되었다. 막대한 비용을 투자한 만큼 과학은 놀라운 성과를 내놓기는 하지만 비용이 많이 들어가지 않았던 초기의 일반적 지식보다 더 가치 있는 결과가 나오고 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현대의 수송 기술이 놀라운 것은 사실이지만 바퀴나 배, 증기 기관의 발명보다 이것이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어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 어떤 학문이 성립된 초창기에 일반적 지식이 많이 확립되면 될수록 나중에는 전문적 지식의 연구 비중이 늘어난다. 그러나 이것은 답을 얻기 어렵고 비용도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투자를 늘려도 한계 수익은 줄어든다.
* 맥케인과 시걸의 지적대로 앞으로는 번개가 치는 가운데 연을 날린다거나 집에서 손수 만든 현미경의 관찰을 통하여 과학이 획기적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 위대한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는 "(과학에서) 진보가 이루어질 때마다 더 힘든 과업이 나타난다"고 갈파하였는데 이를 니컬러스 레셔는 "플랑크의 노력 증대 원리"라고 불렀다. 쉬운 질문들이 해결되면서 과학은 더 복잡한 연구 영역으로, 더 덩치가 큰 조직으로 불가피하게 이행한다.
* 의료 분야의 생산성 저하는 많은 비용이 들어가지 않는 질병과 질환은 이미 정복되었다는 사실(페니실린을 낳은 기초 연구에 들어간 돈은 겨우 2만 달러 남짓이었다)과 무관하지 않다. 남아 있는 질병은 정복하기가 어렵고 자연히 비용도 많이 먹힌다.
* 모든 투자의 한계 생산성은...특정한 점을 지난 다음부터 감소하기 시작한다. 그 점에 이르기 전까지는 수익이 비용보다 빠른 속도로 증가한다. 그러나 복잡성에 대한 투자가 한계 수익의 감소를 낳는 단계에 거의 모든 사회는 봉착한다. 그 이후로는 생산성이 점점 줄어드는 발전 경로에 막대한 투자를 하지 않을 수 없고 현상 유지를 하는 데만도 점점 많은 비용이 투입되어야 한다.
* GNP가 늘어날수록 경제 성장률은 줄어든다. 다시 말해서 사회의 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몸집이 불어나는 속도는 떨어진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기술 생산에 들어가는 비용의 급격한 상승에서 원인을 찾는다. 높은 경제 성장률은 기존 지식의 재고를 고갈시키므로 그 이후의 성장은 새로우 지식이 얼마나 창출되느냐에 달려 있다. 중진국의 경제 성장률이 가장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은 다른 곳에서 개발된 지식과 기술을 단순히 흡수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 경제 성장률이 자꾸만 떨어지는 현상을 기존 지식의 고갈이라는 요인으로만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오히려 한 사회의 한계 생산성이 전체적으로 떨어지면서 미래의 성장에 투자할 수 있는 자본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것이 더 큰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 생산성의 증가는 연구개발에 달려 있다. 그런데 연구개발은 과학일반이 그러하듯이 한계 수익 저하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
* 붕괴를 이해하는 데 전제가 되는 네 가지 개념
1. 인간 사회는 문제를 해결하는 조직이다.
2. 사회정치적 체제는 에너지가 투입되어야 유지된다.
3. 복잡성이 증가하면 단위 비용도 증가한다.
4. 문제 해결을 위한 대응으로 사회정치적 복잡성에 대한 투자를 하면 한계 수익이 감소하는 시점에 봉착하게 된다.
이 중에서 처음 세 가지는 마지막 명제의 기초라고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설명의 초점은 마지막 명제로 집약된다.
* 이 장에서 내내 강조하였듯이 복잡성이 늘어나는 사회는 쉴새없이 점점 많은 투자를 한다. 어느 시점에 가면 이 전략에서 거둘 수 있는 투자 수익률이 그림 19의 B1,C1에 도달한다. 기존의 기술과 에너지 자원만 가지고는 한계 생산성이 더 이상 상승할 수 없는 한계점에 이른다. 그 지점을 벗어나도 한동안 수익은 상승하지만 한계 수익은 차츰 떨어진다.
한계 생산 곡선에서 B1, C1과 B2, C2 사이의 영역은 복잡한 사회 안의 불만과 모순이 증폭되는 시기이다. 도처에서 스트레스가 감지되며 이념적 갈등(가령 성장을 구가하는 세력과 그렇지 못한 세력 사이의)이 싹튼다. 한편으로 적응력을 높일 수 있는 대안을 사회 전체가 모색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모색의 과정에서 다양한 이념과 생활 방식이 도입되며 그 원산지는 주로 외국이다...현대의 산업 사회에서는 한계 수익이 줄어들 경우 한계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하여 (깜소하는 자원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를 늘린다. 또 개개인의 차원에서는 눈에 띄게 휘청거리는 경제에서 최대한 자기 몫을 챙기려는 의도로 교육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진다. 세금은 올라가고 물가 역시 현격히 올라간다. B2, C2 지점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계속되는 투자와 쥐어짜기로 근근히 버텨나가지만 붕괴 가능성은 점점 높아진다.
B2,C2와 B1,C3사이의 영역이 중요하다. 이 시기로 접어들면 경제 체제의 기반이 소진될 대로 소진되어 복잡성에 대한 투자를 늘려도 총수익은 오히려 줄어든다. 사회의 전 부문이 줄어드는 경제 생산물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이것은 대단히 위험한 시기이다. 중대한 재난이 발생하면 여분의 자원이 없는 사회는 맥없이 무너지고 만다.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가 낳는 잉여 생산은 감소한다.
B2,C2,를 지나면 조만간 B1,C3에 도달하게 되는데 여기서부터는 복잡성에 대한 비용은 늘어나는 반면 수익은 예전에는 훨씬 낮은 투자 비용으로 얻을 수 있었던 수준으로 떨어진다. 따라서 B1,C3에서 거두는 수익은 B1,C1에서 거두었던 수익보다 결코 높지 않으며 한계 생산성은 훨씬 밑돈다. B1,C3에 도달한 사회는 내부 이탈이나 외세 침략으로 인해 붕괴할 위험성에 처한다. 중심부와의 관계를 끊을 때 생산성을 훨씬 높일 수 있다고 믿는 사회의 구성 단위들이 늘어난다. 이것은 폭동과 내란으로 이어지고 체제는 더욱 약화된다.
B1,C3같은 지점에서는...급격한 해체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 한계 생산성이 더 이상 올라가지 않는 상황에서 왜 평형 상태를 계속 유지하면 안 되는 것일까 하는 중요한 물음을 여기서 던질 수 있다. 복잡성에 대한 투자를 하여 일정한 수준의 수익을 올리게 되었을 때 사회는 그 성과에 만족하고 그 수준을 유지해 나갈 수는 없는 것일까? 인구의 탄력성이 높고 비교적 단순한 채집 사회는 장기적으로 평형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인구밀도가 높은 복잡한 사회에서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이 지극히 낮다....인구밀도가 워낙 높거나 복잡한 사회정치적 요인으로 말미암아 인구의 대대적 분산을 현실적으로 추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경제적 투자와 사회정치적 투자를 늘려서 문제를 풀어보겠다는 쪽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그러한 식의 문제 해결은 조직에 대한 투자의 증대를 요구하기 마련이어서 복잡성의 한계 수익은 궁극적으로 떨어지게 되어 있다.
* 오늘날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제도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기술 혁신은 인류의 역사에서는 매우 특이한 현상이다. 기술 혁신은 연구개발에 일정한 수준 이상의 투자가 이루어져야 가능하다. 그런데 1인당 잉여 생산물이 낮은 농경 사회에서는 그러한 투자를 할 수 있는 자본이 부족하다.
* 인간 사회에서 사회경제적 성장을 이어가고 한계 생산성의 하락을 피하거나 막거나(적어도 재정적으로 지탱하거나)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한계 생산성이 슬슬 떨어지는 조짐이 나타나는 시점에서 새로운 보조 에너지를 확보하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석유와 원자력이 그러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술적 발판이 없는 사회는 영토 확장을 통하여 에너지 자원을 확보하려는 유혹을 느낀다. 이러한 유혹은 단순한 농경 사회에서 거대한 제국에 이르기까지 두루 경험한다. 사회 체제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들어가는 한계 비용이 갈수록 급등하여 자체 생산력만 가지고는 지탱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그것은 대단히 매력 있는 해결책으로 다가온다.
왜 그것이 강한 매력을 끄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바로 숱한 제국들의 성장과 팽창의 역사이다. 그러한 팽창 전략이 성공을 거두었을 경우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분명한 이득이 있었다. 식민지의 축적된 자원을 종주국의 체제 유지에 써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술 혁신이 되었건 에너지가 되었건 경제 체제에 새로운 요소가 투입되면 그것은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한계 생산성을 끌어올린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한계 생산성이 이 장에서 거론한 이유들 때문에 다시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 과정은 그림 20에 나타나 있다. 여기서 B1, C1은 한계 수익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생산성을 노이는 기술 혁신이나 새로운 에너지 자원이 도입되는 지점을 가리킨다. 새로 도입된 요소의 조달이나 개발과 직결되어 있는 부문을 중심으로 한계 생산성이 올라간다...그러나 나중에 가면 한계 수익이 다시 떨어지는 점에 도달하기 때문에 새로운 혁신이나 팽창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붕괴하기 쉽다. 그림 20은 그림 19보다 일부 사회의 경제적 역사를 더욱 현실감 있게 표현하고 있지만 한계 수익의 저하는 번번이 닥치는 문제라는 사실을 이 그림은 강조하고 있다.
* 영토 확장을 선택한 복잡한 사회는 설령 그것이 성공했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한계 비용이 너무 높아서 더 이상의 영토 확장이 어려워지는 상황을 맞이한다. 방어해야 할 국경선, 관리해야 할 면적, 행정 조직의 규모, 치안 유지 비용, 수도와 변방 사이의 이동 거리, 경쟁 세력들의 존재 같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영토 팽창을 어렵게 만든다.
<5 평가 : 붕괴하는 사회의 복잡성과 한계 수익>
* 처음에는 압박을 줄이거나 기회를 활용하기 위해 복잡성을 늘렸고 그것은 응분의 한계 수익을 가져오는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전략이었다. 그러나 압박이 계속되고 예기치 못한 시련이 닥치고 사회정치적 통합에 들어가는 비용이 자꾸만 올라가면 한계 수익은 차츰 감소한다. 복잡성의 한계 수익이 줄어들면 복잡성이라는 전략은 들이는 비용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적은 이익밖에 내지 못한다. 새로운 에너지원을 확보한다는가 하는 수단으로 이러한 추세를 막지 못하는 사회는 감당하기 어려운 압바깅 가중되거나 민심의 이반이 생길 경우 속수무책으로 무너진다. 이러한 추세가 계속되면 붕괴는 시간 문제가 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은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결정적 위기가 아직 닥치지 않았다 하더라도 경제는 침체되고 정치는 쇠퇴하며 영토는 축소된다.
* 네로는 데나리우스 은화를 평가절하시켰다. 은이 아닌 금속의 비중을 10퍼센트로 끌어올린 것이다. 그는 또 은화인 데너리우스와 금화인 아우레우스(처음에는 25데나리우스의 가치를 가진 금화였다)의 크기를 약간씩 줄였다.
* 영토 확장의 전리품으로 일어선 로마 제국은 팽창 정책의 중단으로 세원이 줄어들면서 근근이 현상 유지를 해왔으나 이제 어마어마한 부담에 짓눌리게 되었다.
* 3세기에 가면 데나리우스의 가치가 너무나 떨어져서 마침내 카라칼라는 안토니니아누스라고 하는 새로운 주화를 도입하였다.
* 초기 로마 제국의 신빙성 있는 통계 자료는 크게 부족하지만 이러한 거듭된 평가절하는 틀림없이 인플레를 유발하였을 것이다. 콤모두스 시대에는 노예 한 명을 사는 데 500데나리우스가 들었짐나 세베루스 왕조로 들어가면 노예 한 명에 2,500데나리우스를 호가하였다.
* 디오클레티아누스(284~330)의 집권기를 전후해서는 반세기 동안에 일년에 한 명꼴로 황제가 등극하거나 황제를 사칭하는 자가 나타났다. 대다수의 일반인들은 그저 황제가 있으려니 여겼을 뿐 정확히 누가 황제인지도 모르고 지냈다.
* 2세기에는 밀 1모디우스(대략 9리터에 해당)가 정상 가격으로 따지면 0.5데나리우스였다. 서기 301년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가격 칙령이 발표된 이후에는 이 가격이 100데나리우스로 묶였지만 이것도 너무 낮은 가격이었다. 데나리우스의 실질 가치는 예전과 비교하여 0.5퍼센트 이상 줄어들지 않은 반면 밀의 가치는 200배 가까이 뛰었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6 요약과 함의>
* 븡괴는 인류사에 거듭되어 나타난다. 그것은 지구 어디에서나 발생하며 단순한 채집 공동체에서 거대한 제국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회에 엄습한다. 특히 오늘날에는 이것이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 기본적으로 붕괴라는 것은 안정된 수준으로 확보되어 있던 사회정치적 복잡성이 갑작스럽게 상실되는 것을 가리킨다.
* 인간이 이루어내는 조직의 복잡한 형태는 비교적 최근에 등장하였으며 역사적으로는 오히려 희귀한 현상이다. 복잡성과 계층화는 전체 인류사를 조망할 때 예외에 가까우며 그것들이 일단 형성되었다 하더라도 끊임없이 자원이 투입되어야 유지될 수 있는 불인한 구조다. 지도자, 장당, 정부는 늘 자신의 정당성을 확립하고 유지해야 한다. 이런 노력을 기울이려면 물질적 기반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체제를 뒷받침하는 주민들의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정당성에 호소하건 강제력에 의존하건 결국은 지속적으로 투입될 수 있는 자원이 필요하다. 그럿은 복잡한 사회가 예외 없이 감수해야 할 조건인 셈이다.
* 산업사회는...지출은 점점 늘릴 수밖에 없지만 한계 수익은 점점 줄어드는 경험을 공통적으로 하고 있다.
* 한 사회가 복잡성을 늘리는 방향으로 투자를 한 것은 처음에는 상황에 적절히 대응하는 합리적 선택이었지만 그런 행복한 상태는 오래 가지 못한다. 가장 저렴하고 손쉬운 해결 방안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하면 더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해결 방안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 가서는 복잡성에 대한 투자를 늘린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고 한계 수익이 줄어들기 시작한다. 투자 단위당 이익이 감소세로 접어드는 것이다.
* 이런 사회가 붕괴하는 요인은 두 가지다. 첫째 복잡성에 대한 투자의 한계 수익이 감소하면서 사회는 이렇다 할 실익이 없는 전략에 점점 많은 자원을 쏟아붓게 된다....
둘째, 한계 수익이 줄어들면 복잡성은 전략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그래서 분리나 해체가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세력들이 들고 일어선다.
* 한계 수익이 계속 줄어들다 보면 일정한 수준의 투자에서 얻는 이익이 그보다 낮은 수준의 투자에서 거두는 이익보다 높지 않은 시점에 불원간 도달한다. 이 겨우 복잡성은 결정적으로 불리한 정책이 되어버리고 사회는 안팎으로 심각한 붕괴 위기에 직면한다.
* 잘 열려진 붕괴의 세 가지 사례(서로마 제국, 남서부 저지대의 마야, 차코)에 이러한 모형을 적용시키면 긍정적 결과가 나타난다. 로마 제국은 지중해 일원의 정복 전쟁을 통해 그곳에 축적되어 있었던 막대한 부를 거머쥘 수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정복지에서 들어오는 전리품을 기대할 수 없게 되면서부터는 변방의 수비대를 주둔시키는 비용이나 각종 행정 비용을 수세기 동안 감당해야 했다. 제국에 대한 투자에서 거두는 한계 수익이 감소하면서 로마 제국의 연간 예산 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위기 사태가 속출하였다. 이민족들은 세력이 약화된 로마 제국에 군침을 흘렸다. 국가는 위기 극복 수단을 증세와 통화 남발에서 찾았고 이것은 로마 체제를 지탱하는 기층 인구의 생산력에 치명적 타격을 입혔다. 체제의 지지 기반이 약화되니까 이민족들은 손쉽게 로마의 영토를 유린할 수 있었다. 복잡성에 어마어마한 투자를 한 결과가 붕괴로 나타난 것이다. 로마 제국 말기로 가면 복잡성에 대한 투자의 한계 수익이 너무 작아져서 이민족의 작은 왕국들이 오히려 유리해 보이기 시작했다. 경제적으로도 이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로마 제국을 계승한 게르만 왕국들은 로마 제국이 도저히 감당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거뜬히 해결하였다.
중앙아메리카 남부 저지대의 마야는 인구밀도가 높았고 영토도 좁았다. 집약 농업, 방어와 약탈을 위하 조직, 지배층의 확대, 기념물의 건축이 본격화되면서 마야는 개개인의 식량 확보 안정성은 이렇다 할 변화가 없는데도 과도한 비용이 투자되어야 하는 체제를 발전시켰다. 기층 인구의 보건과 영양 수준은 낮은 편이었는데 이것은 복잡성을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날로 상승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런 경향은 고전기 내내 계속되었다. 고전기 후기에도 사회적 비용은 늘어만 갔고 복잡성에 대한 투자에 상승하는 수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런 여건에서 마야의 붕괴는 불가피한 것이었다.
남아메리카의 산후안 분지에 거주하던 인구 집단은 이 지역의 에너지 평준화 체제를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일원적 관리를 통해 줄이기 위해 행정 조직과 복잡성을 증가시켰다. 한동안은 이런 투자에서 얻는 한계 수익이 컸지만 새로운 공동체들이 속속 참여하면서 이 경제 체제의 다양성과 효율성은 줄어들었다. 그런데도 기념물의 건축은 줄어들지 않았고 그것은 기층 인구에게 커다란 압박으로 작용하였다.
이 세 가지 사례에서 모두 복잡성에 대한 한계 수익의 추이를 추적하 결과 붕괴 과정이 명확히 드러났고 우리는 이를 통해 한 사회가 왜 취약해지는지를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 여기서 우리는 이 연구에서 나오는 중요한 함의와 만난다. 주목할 만한 저작을 내놓은 연구자들의 대다수는 문명과 복잡한 사회를 바람직한 것으로 여긴다. 그들에게 복잡성은 적극적으로 권장할 만한 인간의 생활 형태인 것이다. 문명은 인간 사회가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지점이며 단순하고 미분화된 사회 형태보다 훨씬 가치 있는 세계다. 문명이 이룩한 예술적.문학적.과학적 업적이 이런 견해를 낳는 데 직간접적으로 기여했을 것이다. 그래서 현대의 산업 사회는 자신이 인류 역사의 정점에 올라서 있다고 기염을 토한다. 문명을 이렇게 중시하는 이론가의 선봉에 있는 사람이 토인비다. 문명과 문명이 낳는 후유증을 혐오하는 슈펭글러라든가 레퍼포트 같은 사람은 소수파에 속한다.
바람직한 시민 사회에 이토록 무게 중심을 두다 보니 당연히 붕괴는 재난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문명의 꽃이라 할 문학과 예쑬의 몰락, 문명이 제공하는 쾌적한 서비스와 보호막의 소멸은 낙원에서 쫓겨나는 일에 못지않은 끔찍한 공포로 다가온다. 붕괴는 최악의 파국이라는 통념은 일반인들의 머리에만 박혀 있는 것이 아니라 붕괴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의 뇌리에도 박혀 있다....
이러한 편견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려면 지배층과 그들의 유물에 대해서뿐 아니라 비록 숫자는 감소되었을지언정 복잡한 사회에 붕괴가 일어난 다음에도 여전히 생산 생활을 이어간 기층 인구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연구를 해나가야 한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복잡한 사회는 인류사에서 비교적 최근에 나타났다. 그렇다면 붕괴는 원초적 혼돈으로 추락하는 것이 아니라 낮은 복잡성이라고 하는 인간의 정상적 조건으로 복귀하는 데 불과하다. 붕괴는 끔찍한 재앙이라는 통념은 이론적으로도 얼마든지 논박할 수 있다. 붕괴가 복잡성에 대한 투자의 한계 수익 감소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면 붕괴는 '효율화'의 과정인 셈이다.붕괴는 조직의 투자에서 얻는 한계 수익을 예쩐의 수준으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을 때 발생한다. 복잡성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에 비하여 거기서 얻는 이익이 턱없이 작을 때 복잡성을 잃는 것은 경제적으로도, 어쩌면 행정적으로도 이득이 된다. 여기서 다시 로마 제국 말기에 상당수의 로마인들이 이민족 침입자들에게 호의적이었던 사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 과중한 압박이 사회 조직의 변화를 요구할 때 붕괴가 일어난다. 복잡성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데서 얻는 한계 효용이 너무 낮은 상황에서는 붕괴는 경제적으로 선택 가능한 대안이다. 그래서 차코인들은 마지막 가뭄이 닥쳤을 때 차라리 복잡한 체제를 포기하였다. 위기 상황을 극복하는 데 필요한 비용이 이익에 비하여 너무 컸기 때문이다....현상 유지조차 버거운 상황에서는 붕괴야말로 논리적으로 가장 합당한 적응 방식이었다.
* 지배층에게 (그리고 후대 연구자들에게) 파국으로 보였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기층 인구에게도 같은 식으로 받아들여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통치 질서의 와해는 기본적 식량 자원을 생산할 수 있는 기회나 능력을 한 번도 갖지 못했던 사회 성원들에게만 엄청난 재난으로 비쳤을 것이다. 그런 전문적 조직에 몸담고 있지 않았던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중앙과의 고리를 끊는 것이 오히려 유리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붕괴는 곧 재난이라는 무조건적 도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붕괴는 인구 집단의 대다수에게 도리어 득이 되는 합리적.경제적 과정인 것이다.
* 저비용에서 고비용으로 조직적 해결 방안이 계속 이행되는 한 복잡성에 대한 투자의 한계 수익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느 정도 가용 자본을 확보하고 있는 사회에서는 기술 혁신, 반대급부를 기대할 수 있는 상황에서 나타나는 강력한 경제적 성취 동기, 새로운 에너지 자원의 확보, 경제 개발을 통해 한계 수익의 감소 현상을 잠시 역전시키거나 지연시킬 수 있는 부를 공급할 수 있게 된다.
* 예술 양식의 "완성"에 대한 크뢰버의 관찰에 따르면 한 예술 양식 안에서의 혁신이 점점 힘들어져서 자꾸만 예전의 작품을 답습하고 재구성하는 현상이 이어지다가 결국은 새로운 양식이 출현하여 과감한 혁신이 이루어진다.
* 고립된 주도적 국가로서 등장한 사회들과 렌프루가 "호각 체제"라고 이름지었고 B. 프라이스는 "무리"라고 부른 바 있는 상호 작용 집단으로서 발전한 사회들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렌프루의 표현은 상당히 적절하다. 호각 체제는 미케네의 국가들, 에게 해와 키클라데스 제도의 작은 도시국가들, 그리고 마야 저지대의 중심지들처럼 거의 엇비슷한 수준에서 자기들끼리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 호각 체제의 무리는 어떤 지배적 국가의 주도 아래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교환과 분쟁을 포함한 자기들 내부의 상호 작용에 의하여 발전한다는 사실을 렌프루와 프라이스는 규명하였다.
경쟁적 호각 체제가 조성된 상황에서 한 사회가 복잡성을 떨어뜨린다는 것은 곧 같은 무리 안의 다른 사회에 의해 지배당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지배를 모면하려면 조직의 복잡성에 대한 투자가 '설령 한계 수익은 감소하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다른 경재자들의 투자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복잡성은 비용에 관계 없이 유지되어야 한다. 마야에서 바로 그러한 상황이 조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마야의 개별 국가들은 수세기 동안이나 호각 체제로서 발전하다가 몇십 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에 한꺼번에 무너졌다....
그런 상황에서는 무리를 구성하는 모든 국가들이 동시에 무너지지 않는 한 붕괴는 일어나기 어렵다. 한 체제가 실패를 하면 그것은 다른 체제의 세력 확대로 이어지기 때문에 복잡성은 줄어들지 않는다. 이런 경쟁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은 마야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 아무리 한계 수익이 적더라도 각 사회가 부담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농민의 정치적 행동은 해체보다는 '개혁'을 지향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가장 합당하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그리고 호각 체제가 각축을 벌였던 그 이후의 상황에서 국민들의 참정권이 확대되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주나라가 무너지고 난 뒤 중국에서 전개되었던 춘추전국 시대와 비교하는 것도 흥미롭다. 나중에 진나라로 다시 통일되기 전까지 중국은 고만고만한 나라들이 호각 체제를 유지하였고 공자를 비롯한 사상가들이 쏟아져나와 선정과 위민의 다양한 이념을 제시하였다. 선한 위정자는 천명을 받들어야 하며 나라를 잘 다스리는 한 하늘도 그를 저버리지 않는다고 보았다....이처럼 고대 중국에서는 호각 체제는 참정권의 강화를 낳은 것이 아니라 위민 사상의 발전을 낳았다. 그리스의 도시국가들보다 인구 면에서도 영토 면에서도 훨씬 거대했던 고대 중국에서는 참정권의 강화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 여기서 서서히 와해하는 사회와 급격히 붕괴하는 사회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우리 앞에 나타난다. 전자의 대표적 사례는 비잔틴 제국과 오토만 제국이다. 이 두 제국은 모두 경쟁자들에게 영토와 권력을 서서히 내주었다. 이 과정에서 붕괴-복잡성의 갑작스러운 소멸-는 나타나지 않았다. 한쪽의 약화는 인접 세력의 강화로 이어졌을 뿐이다. 여기서 붕괴의 중요한 원리가, 그리고 붕괴를 정의하는 핵심적 내용이 등장한다. '붕괴는 권력의 진공상태에서만 일어날 수 있다.' 붕괴는 체제 와해의 정치적 공백을 너끈히 채울 수 있는 강력한 경쟁자가 없을 때만 나타난다. 그런 경쟁자가 있을 때는 붕괴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 경우 경쟁자는 영토를 확대하여, 지도자를 잃은 인구 집단을 통치하기 때문이다. 붕괴는 정권의 교체와는 다르다. 호각 체제가 각축을 벌이는 상황에서는 이들을 모두 흡수할 수 있는 강력한 외부 경쟁자가 없을 때만 붕괴가 발생해서 이들을 한꺼번에 무너뜨린다.
이것이 바로 마야와 미케네의 중심지들이 동시에 붕괴한 이유다....
한 무리에 속한 호각 체제들은 겅제적 고갈 상태에 엇비슷하게 도달하기 때문에 한꺼번에 무너진다. 마야와 미케네의 강력한 경쟁 세력(마야 고지대와 동부 지중해)은 상대의 세력 약화를 이용하기에는 너무나 먼 거리에 있었고 별로 막강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붕괴는 외부 세력의 개입 없이 이루어졌다. (반면 뒤의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정치적 진공을 이용할 수 있는 강력한 이웃들이 있었기 때문에 붕괴할 수 없었다.) 이것이 바로 서로마 제국과는 달리 동로마 제국이 급격히 붕괴하지 않은 마지막 이유다.
* 한계 수익의 감소가 반드시 붕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권력의 공백이 생겼을 때만 붕괴로 이어진다. 권력의 공백이 생길 수 없는 지정학적 상황에서는 그것은 정치적.군사적 약화로 이어져서 정권 교체를 수반한 점진적 와해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 일반적으로 한계 수익의 감소는 다음 중 한 가지 조건에서 비롯된다.
1. 이익은 그대로인데 비용이 상승한다.
2. 이익은 늘어나지만 비용은 더 빨리 상승한다.
3. 이익은 떨어지는데 비용은 그대로다.
4. 이익은 떨어지는데 비용은 상승한다.
* 한계 수익 감소 이론은 3장에서 논의한 설명 주제들을 논리적으로 포섭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 지배자가 비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경우도 있다. 비이성적 행동 그 자체만으로는 역사를 설명할 수 없다. 서비스는 엘리트가 성공을 거두느냐 아니면 비이성적으로 행동하느냐는 상황을 보고 우리가 사후적으로 내리는 해석일 뿐이라고 날카로운 지적을 했다. 잘 나가는 시대의 통치자는 좋아 보이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 생물학자 개럿 하디은 체제의 분석으로부터 강력한 함의를 갖는 너무나 간단한 교훈 하나를 이끌어낸 적이 있다. "우리는 결코 한 가지만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의 요지는 거대하고 복잡한 체제가 어떤 결과로 치달을지는 선한 의도와는 사실상 무관하다는 것이다. 이런 체제 않에 내재되어 있는 복잡한 피드백을 감안할 때 어떤 사소한 변경이 전체적으로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지를 예측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실정도 마찬가지다. 지배층의 실정은 복잡한 사회의 전개 양상에 부분적 영향밖에 미치지 못한다.
* 나는 지도력이 무가치하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다만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영향력이 작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을 따름이다. 복잡한 사회는 개인들의 변덩게 의해 진로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상황은 우리의 판단에 커다란 영햐을 미친다. 복잡성에 대한 투자의 한계 수익이 증가할 때는 지도자가 풀륭해 보인다. 그런 상황에서는 지도자가 어떤 행동을 하건 사회 전반에 누리는 막대한 이익이 먼저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반대로 한계 수익이 줄어들 때 단기적으로 그런 조류를 저지할 수 있는 힘을 지도자가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은 지극히 희박하다. 따라서 그는 아무리 노력을 하더라도 무능하게만 보인다.
* 또 다른 차원에서 보자면 이 원리는 변화의 내부 원인설/외부 원인설, 사회의 갈등 이론/통합 이론을 통합한다. 한계 수익의 감소는 모든 사회의 내부적 측면이다. 사회마다 한계 수익의 감소가 나타나는 양상은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비용이 많이 드는 구조적 해결책으로부터 비용이 적게 드는 구조적 해결책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런데 구조적 해결책과 한계 수익에 변화가 오는 것은 외부적 조건이 달라졌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갈등 이론과 통합 이론도 하나로 묶을 수 있다. 어떤 인구 집단이 복잡성의 수혜자이건 희생자이건 구조에 대한 투자의 비용/수익이 얼마나 되는지를 따질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한계 수익의 저하를 끝까지 견뎌낼 수 있는 재주를 가진 체제는 없다. 억압적 체제도 인도적 체제도 똑같이 무너진다(억압적 체제가 좀더 오래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한계 수익 저하의 원리즌 붕괴를 해석하는 다양한 이론들을(아니면 적어도 그 안의 유용한 부분들을) 통합할 수 있다.
* 붕괴는 일종의 경제적 적응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기본적 식량 자원을 생산할 수 있는 기회나 능력을 상당수의 인구로부터 앗아가는 파괴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대부분의 현대 사회, 특히 고도 산업 사회는 특이 이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이런 사회가 붕괴하면 많은 인명이 희생될 뿐 아니라 생존자들의 생활 수준도 크게 떨어지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 사라진 문명에 매혹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은 그들이 느끼는 현실적 위협이 거기에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 현대 문명의 붕괴를 점치는 시나리오는 가령 이런 것들이다.
-핵전쟁
-대기 오염으로 인한 오존층의 파괴와 기후 변동
-중요한 산업 자원의 고갈
-채무 불이행에 따른 국제 신용의 붕괴, 화석 연료의 공급 중단, 살인적 인플레 등으로 인한 경제의 총체적 파탄
* 사회가 직면한 상황이 때때로 걱정서르워질 때가 있을 것이다. 나는 사람들의 이런 불안감을 사호적 병리 현상으로 축소 해석하거나 그 타당성을 깎아내리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소 지나치다 싶을 때도 있지만 이런 경각심에는 대체로 수긍하는 편이다. 산업 사회가 언젠가는 자원 고갈과 쓰레기 처리 문제로 좌초하지 않는다고 그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붕괴에 대한 불안과 자급자족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는 것은 그만큼 사회 체제가 압박을 받고 있다는 증거이며 이런 문제를 저비용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 이 시점에서 우리가 분명히 다룰 수 있는 것은 모든 사회에서 중요한 뜻을 갖는 현상, 즉 복잡성에 대한 투자에 들어가는 비용과 거기서 얻는 수익인 것이다.
* 현대 산업 사회에서 나타나는 한계 수익 감소의 양상은 적어도 다음 분야에서 확인되고 있다.
- 농업
- 광물과 에너지 생산
- 연구와 개발
- 보건 투자
- 교육
- 행정, 군대, 기업 관리
- 새로운 성장을 낳는 GNP의 생산성
* 이러한 조류에 대해서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비관론으로 기우는 경제학자들도 많지만 상당수의 경제학자들은 우리 앞에 닥친 문제가 경제적으로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난제는 아니라고 믿는다. 경제적으로 충분한 동기 부여만 되어 있으면 인간의 창조성은 모든 장애물을 넘어설 수 있따는 것이다....
반면에 많은 환경 보호론자들은 우리가 현재 누리는 쾌적한 생활의 덤터기는 결국 후손들이 고스란히 뒤집어쓰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연구개발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자하여 경제 성장을 촉진하는 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환경론자의 시각에서 보면 이것은 결국 자원 고갈을 가속화시켜 파국을 앞당기는 지름길일 뿐이다. 따라서 환경론자들은 '저개발'을 추구하며, 더적게 소비하는 자급자족의 단순한 생활로 돌아가자고 부르짖는다.
이 문제를 심도 있게 연구한 사람들이 이처럼 전혀 상반도니 결론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두 입장에는 공통된 약점이 하나 있다. 중요한 역사적 요인들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의 낙관론은 무한 대체 가능성에 근거를 두고 있다. 다시 말해서 연구개발에 충분한 자원을 투자하기만 하면 공급이 달리는 에너지와 원자재의 대체물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무한 대체 가능성의 문제점은 구조적 복잡성에 대한 투자를 속시원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기로는 사회정치적 구조는 한계 수익의 저하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영역이며 그렇다고 해서 대체물을 개발하여 풀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정보 처리 기술의 발달과 경제 규모의 확대로 구조적 투자의 비용은 한동안 떨어질지 모르지만 결국은 한계 수익 저하의 운명은 피할 수 없다.
또 하나의 문제는 무한 대체 가능성의 원리는 말만 번지르르했지 실제로는 무한정 적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연구개발에 들어가는 비용이 턱없이 높아졌다는 사실을 이구동성으로 지적한다...
* 사실 오늘날의 세계와 과거의 세계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들이 있고 그것은 붕괴를 이해하는 데도 아주 의미심장하다. 그 차이점의 하나는 오늘날의 세계는 가득 채워져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아주 황량한 땅을 제외하고는 지구 어디에나 복잡한 사회가 들어서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류사에서 일찍이 없었던 현상이다. 복잡한 사회 자체도 인류가 비교적 최근에 경험한 사건이지만 세계 전체가 복잡한 사회들로 채워져 있는 것은 더욱더 새로운 상황이다. 이 장 앞머리에서 고대 사회의 붕괴는 권력의 진공이 있을 때만, 다시 말해서 어떤 복잡한 사회가(혹은 호각 체제들의 무리가) 덜 복잡한 이웃들로 둘러싸여 있을 때만 일어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오늘날에는 권력의 진공을 찾아볼 수 없다. 모든 국가는 강대국과 연결되어 있고 그 강대국의 영향을 받고 있다....더구나 교통 수단의 발달로 지리적 거리는 유명무실해졌다. 다시 폴 발레리의 말을 인용하자면 "전세계에 파장을 미치지 않는 사건은 있을 수 없다."
* 지난날의 붕괴는 두 가지 유형의 국제정치적 상황에서 일어났다. 즉 고립된 강대국 아니면 엇비슷한 호각 체제들의 무리에서 일어났다. 통신과 교통 수단의 발달로 지금은 공간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강대국은 존재할 수 없다. 강대국들은 오히려 경쟁젹인 호각 체제를 이루고 있다....
호각 체제들은 숨돌릴 틈 없는 경쟁 속에서 경쟁 세력이 개발한 새로운 조직적.기술적.군사적 요소를 모방한다. 새로운 무기가 나타나면 곧 이어 그에 맞서는 다른 무기가 탄생하므로 이러한 개발의 한계 수익은 계속 떨어진다. 따라서 항구적 우위를 점하기란 불가능하다. 이런 구조 안에 편입되어 있는 사회는 한계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투자를 자꾸 늘려가야 하므로 경제력은 차츰 기울어간다. 그렇다고 해서 섣불리 발을 빼기도 어렵다. 하지만 (한계 수익의 저하로 인해) 가까운 시일 안에 붕괴하는 현대 국가가 나타날 가능성 또한 희박하다. 그것은 체질이 강해서라기보다는 현대 국가들이 붙들려 있는 치열한 경쟁의 고리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몰락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 이 작은 지구에서 소비를 줄이고 저개발을 지향하자는 제안이 먹혀들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경제력과 군사력은 직결되어 있다고 볼 때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경제 개발 포기는 일방적인 군축만큼이나 무모하고 어리석은 행위로 받아들여진다. 치열한 경쟁을 감안하면 저개발 상태로 복귀하는 것은 합리적 대안이 될 수 없다.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상황에서는 인적 자원과 환경 자원이 아무리 희생되더라도 복잡성에 대한 투자와 자원의 소비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 세계의 주요 강대국들과 열강들은 한계 수익의 감소를 앞으로도 상당 기간 동안 감내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가지고 있다. 충분한 성취 동기와 경제적 잉여 자원을 가진 민족은 한계 수익이 감소해도 몇백년은 버틸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로마 제국과 마야 사회에서 확인한다. (그렇다고 안심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현대 사회의 변화 과정은 옛날 사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 호각 체제들은 치열한 경쟁으로 비용이 갈수록 상승되는 악순환을 장기간 경험하면서 한계 수익은 점점 곤두박질친다. 이런 상태에서 일어나는 붕괴는 전세계에 파장을 미친다. 개별 국가만이 붕괴하는 상황은 더 이상 있을 수 없다. 세계 문명 전체가 와해되어버린다. 호각지세로 발전해온 경쟁자들은 비슷한 양상으로 붕괴한다.
* 고대 사회에서 한계 수익의 저하를 해결하는 방법은 새로운 에너지원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농업, 목축, 인력에 주로 의존하던 경제체제에서 이것은 영토의 팽창을 통해 이루어졌다. 고대 로마와 춘추 전국 시대의 진나라는 바로 이 길을 택했다. 과거의 무수히 많은 제국이 택한 방식도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지금처럼 자체적으로 비축해둔 에너지 자원을 가지고 경제를 운영하는 체제에서는, 또 세계 전체가 가득 차 있는 상황에서는 이런 길을 선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본과 기술은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에너지원을 개발하는 데 투입되어야 한다. 한계 수익의 저하가 표면화되지 않도록 기선을 제압하는 길은 기술 혁신과 생산성 향상뿐이다.
* 산업 사회가 한계 수익이 줄어드는 시점에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불원간 그런 상황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최근의 역사를 보면 우리는 적어도 화석 연료를 비롯한 몇 가지 원자재에서 한계 수익이 줄어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생활 수준의 하락과 세계적 붕괴를 모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에너지를 개발해야 한다. 새로운 에너지가 나온다 하더라도 복잡성에 대한 한계 수익이 저하되는 추세를 뒤집어엎을 수는 없겠지만 복잡성에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은 전보다 많아질 것이다.
* 어떤 면에서 보면 권력의 진공이 없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기 때문에 진작에 붕괴했어야 할 이 세계가 아직도 유지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하나의 역설이 아닐 수 없다. 한계 수익의 저하를 감내하면서 일시적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는 것은 모두의 피를 말리는 치열한 경쟁 상황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유예된 시간을 우리는 경제적 안정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새로운 에너지를 찾아내고 개발하는 데 활용해야 한다. 설령 다른 경제 부문에서 자원을 빼오는 한이 있더라도 새로운 에너지의 연구개발에 무엇보다도 중점을 두어야 한다. 모든 산업 국가는 충분한 자금을 이 분야에 투입해야 하고 거기서 얻는 결과를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자금이 민간에서 나오든 정부에서 나오든 어쨌든 충분한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 지금은 낙관론과 비관론이 교차하는 상황이다. 우리는 치열한 경쟁 때문에 일정한 수준 이상의 투자를 해야 하고 치열한 경쟁이 다시 한계 수익을 떨어뜨리는 묘한 처지에 놓여 있다....한계 수익이 줄어들면서(이것은 지금도 계속되는 과정이다) 새로운 에너지가 절박하게 필요한 시점에 도달하면 산업 사회의 생활 수준은 예전처럼 빠르게 향상되지 않을 것이고 일부 사회와 국가에서는 생활 수준이 정체되거나 도리어 하락하는 사태까지 빚어질 것이다. 이것이 촉발하는 정치적 갈등은 핵무기의 확산과 맞물려 미래의 세계를 위험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 아무리 우리가 우리 자신을 세계사에서 특수한 위치를 누리는 존재로 이해하고 싶어하더라도 오늘의 산업 사회는 예전의 사회들을 붕괴로 몰어넣었던 원리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만일 문명이 다시 붕괴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지금의 유예된 시간을 활용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융예된 시간은 우리가 상정할 수 있는 미래에 독약이 될 수도 있고 보약이 될 수도 있다는 역설을 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