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전과는 많이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는 저자가 자신의 껍질을 깨고 변화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혁신한 그를 다시보게 되었다.
이익을 내기 위해서 존재하는 기업의 경우, 이익만을 위해서 어떤 탐욕을 부리더라도 그것은 전제에 충실한 것이 정의라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기업의 전제를 잘못 해석한 데에서 오는 문제다. 기업은 물론 이익을 추구해야 하지만 이익 추구가 기업의 존재이유는 아니다. 기업의 전제는 그렇게 천박한 것이 아니다. 기업의 전제는 구성원들을 행복하게 하고, 사회에 고용과 투자의 기회를 제공하며 함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2. 다가올 미래의 핵심 키워드로 '지속가능성' 즉 환경적인 것, 공존할 수 있는 것, 공정한 것, 사람이 중심이 되는 것 등을 강조하고 있다.
핵심 키워드는 바로 '사람'...과거 시대의 키워드가 '기계'였다면 지금은 사람이 부가가치 창출의 핵심 수단...기계문명은 필연적으로 자원고갈과 환경오염의 문제를 피해갈 수 없다. 기계를 돌려 제품을 생산하고 그것이 다시 폐기물이 되는 비가역적인 사이클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벗어나 자원고갈과 폐기물의 문제에서 자유로우며 무한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생산수단이 곧 사람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엔터테인먼트, 레저, 에듀케이션, 헬스케어, 바이오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영역은 기존에 없던 것을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던 것을 재조합함으로써 시너지를 창출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개인의 성공을 위해 질주하는 스펙경쟁의 시대에 오히려 공공의식을 몸에 익힌 사람이 새로운 승자가 되는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고 있다. 지금 청년세대가 미래의 리더가 되는 가장 중요한 자질은 기성세대와 같은 '탁월성'이 아닌 '공공의식'이 될 것이다.
차세대 리더를 꿈꾸는 청년들은 바로 여기 중요한 힌트를 얻어야 한다. '시대의 요구는 과잉이 아닌 결핍과 일치'하며, 그 결핍은 다음 세대의 필수 덕목이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지금 청년들은 현재 대표적 과잉 중 하나인 무모한 스펙전쟁이 아니라 대표적 결핍인 공공성을 갖추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사회적 건강성에 헌신함으로써 차세대 리더에게 요구되는 리더십을 획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즉 과거에는 잘난 사람의 리더십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대중의 팔로십이 중요한 시대다. 예전에는 유아독존이더라도 만 명을 먹여살리는 한 명의 인재가 '팔로 미(follow me)'를 외치면 9,999명이 뒤를 따라 뛰었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끝났다. 공공의식이 없는 리더십에는 대중이 곧 염증을 느낀다. 어떻게든 성공만 하면 되고, 남을 짓밟고 올라서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고, 잘나고 똑똑하면 모두가 따르던 리더십에 염증을 느낀 대중들이 간절하게 공공의식을 가진 공감형 리더십을 요구한다.
한 시대의 화두는 그 시대에 가장 결핍되었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 시대의 키워드는 '공정'이 될 것이다. 결과불평등은 인간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이지만, 과정의 공정성은 경기 자체가 지속되게 하는 더 중요한 조건이다.
3. 공부의 방법, 주체적 삶과 자기 혁신, 철학과 인문고전의 중요성을 반복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청년은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삶이 이미 많은 사람이 줄지어 가고 있는 길의 끝에 서서 그들과의 경쟁에 몰두하는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그 길 위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뜻을 펼치는 사회의 중심으로 살아갈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남이 가는 길을 따라가면 종속되지만 남이 가지 않은 길은 험난하다. 당신은 어느 길을 선택할 것인가?
공부는 배우는 것(學)과 익히는 것(習), 두 개의 바퀴로 되어 있는데, 우리는 배우는 것만이 공부라고 여긴다. 배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실천하고 그것을 현실태로 담아낼 때 비로소 공부가 완성된다.
그동안은 타인의 성공을 보고 득실을 계산한 다음 커다란 보폭으로 그것을 추격하는 것을 '기업가정신'이라고 불렀지만, 진정한 기업가정신은 길을 찾는 것이다.
저자가 책 속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문체가 다소 현학적이긴 하다. 하지만 학문적 지식이 미천한 나에게는 참고가 될 이야기들이 많아 유익했다.
★★★☆☆
<프롤로그>
* 히포크라테스의 잠언집에는 이런 말이 있다.
"인생은 짧지만 지식은 길다. 기회는 순식간에 지나가는데, 경험은 믿을 수 없고, 판단은 어렵기만 하다(Life is Short, art long, opportunity fleeting, experience treacherous, judgement difficult)."
<1장 나를 찾아가는 시간>
* 모든 방황에는 의미가 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고민하며 방황하고 노력하는 것은 바른 길을 찾기 위한 여정이다. 인생은 고민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계속 방황하며 노력하는 것, 주저앉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실존이고 나의 삶을 증명하는 유일한 길이다.
* 괴테의 [Faust]에서 신은 이렇게 말한다.
"그가 지상에서 살고 있는 동안에는
네가 무슨 일을 하든 금하지 않겠노라.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니라."
* 인생에서 방황은 곧 시행착오일 뿐인데 우리는 이것을 죄악시 하곤 한다. 방황은 죄악이 아니다. 인간에게 방황이 없다는 것은 나아가려는 의지가 없다는 말과 같다. 인간은 욕망하는 동물이며, 그 욕망은 더 나아지려는 의지의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방황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실험이며 그것을 넘어선 것이 성취다.
* 결과만 보고 과정을 무시하며 달리는 사회적 환경은 우회와 타협의 결과다.
* 기업이 단지 더 많은 이익을 내기 위해서만 움직인다면 당장 임금과 고용을 줄이고 사회에 대한 공헌을 외면하며 국가 권력과 결탁해 불법과 탈법을 서슴지 않게 된다. 이런 사회적 환경속에서 개인 역시 단지 살아남기 위한 경주를 벌일 수밖에 없다. 그 결과, 과정은 언제나 무시된다. 학교는 교육을 포기한 채 입시를 향해 질주하고, 학생들은 생존을 위해 대학, 취업, 승진, 성공과 같은 허울 좋은 목표만 좇는다.
*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길을 내려는 방황은 아름다운 것이다. 남이 가는 길을 가면 편안하지만 종속되고, 새로운 길을 가면 험난하지만 독립적으로 서게 된다. 우리는 우주 그 자체이지 결코 종속적인 존재가 아니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내게서 출발하고, 그 답 역시 내 안에 있다.
* 지금 이 순간 우리가 고민하며 방황하고 노력하는 것은 바른 길을 찾기 위한 여정이어야 한다. 고민이 없다면 당연히 방황도 없다.
* 고민을 두려워 말자. 그리고 우리 마지막 순간까지 방황해보자.
* 우리는 익숙한 것들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새로운 환경, 낯선 것들과 만났을 때 비로소 우리 머릿속에서 '새로운 생각'들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나의 발전을 위해서는 의식적으로 새로운 환경에 도전해 새로운 생각을 이끌어내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습관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 "낯선 것과의 조우를 통해 이성이 시작된다."
이는 독일 철학자 Martin Heidegger의 말인데 가히 '생각'의 본질을 관통하는 선언이다. 우리는 익숙한 것들에 대해서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다. 습관처럼 반복되는 동작과 행동들은 본능에 의존한 관성일 뿐 생각의 결과로 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나의 발전을 위해서는 의식적으로 새로운 환경에 도전해서 새로운 생각을 많이 이끌어내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습관을 만드는 태도를 형성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 나의 사유를 두텁게 하고 내공을 쌓기 위해서는 결국 내 삶이 '새로운 자극 -> 도전 -> 생각 -> 축적된 사유 -> 태도화 -> 새로운 자극'으로 이어지는 순환고리 속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 Aristoteles는 "현상은 복잡하지만 본질은 단순하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현상의 포로가 되기 쉽다.
* 정보량이 적고 대상이 명확할 때는 본질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알 수 있지만, 정보가 많고 대상이 불명확할 때는 선택이란 걸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럴 때 모든 현상을 놓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것은 오히려 나를 오리무중에 빠뜨린다. 답은 현상 너머 본질에 있는데, 너무 많은 현상에 가려 본질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 침묵은 충동에, 감정에, 유혹에 흔들리는 나를 관찰하고 경고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침묵의 순간 세계에 대한 사색이 시작된다. 침묵한다는 것은 단순히 말을 하지 않는 것 이상이며, 관성에 의한 모든 행위를 멈춘다는 의미다. 그래서 타인과 외부에 침묵한다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열정이다.
* 침묵은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 단지 시험점수를 올리기 위한 시험기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면 공부법을 논할 때 '집중력'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 철학자 데카르트...학교교육을 통해 익힌 지식과 가르침이 언제나 옳은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살아있는 경험을 하기 위해 긴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여행 과정에서 스스로 깨달은 사실을 곰곰이 되새겨 학문에 대한 네 가지 규칙을 선언했다.
1. 나 스스로 명확하게 '참'이라고 인정한 것 외에는 어떤 것도 '참'이라고 받아들이지 마라. - 계속 의문을 가져라.
2. 모든 문제를 큰 덩어리로만 바라보지 말고 가능한 한 작게 세분하라. - 건너뛰지 말고 완전히 이해하라.
3. 가장 단순하고 이해하기 쉬운 대상에서 점차 단계를 밟아 복잡하고 난해한 문제에 접근하라. - 토대가 중요하다.
4. 어떤 항목도 빠지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모든 항목을 엵하고, 그것에 대해 광범위하게 재검토하라. - 완전할 때까지 복습하라.
'격물치지'라는 말이 떠올려지는 데카르트판 공부법...
* 데카르트...'주어진 운명을 따르기보다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며,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 이전에 자신의 그릇된 욕망을 다스리는 데 주력하라.'
* 실제 공부는 미쳐야 이룰 수 있다. 원래 미친다는 것은 정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즉 일상적으로 행하던 다른 무엇인가를 포기한 상태를 말하고, 정상적인 수준을 뛰어넘는 집착이 생겼다는 의미다. 그러니 공부 때문에 다른 것을 포기하면 할수록 제대로 미쳐가는 것이다.
* '키치(kitsch)'...'싸게 만들다'라는 뜻의 독일어 동사 verkitschen 에서 유래된 말로 '저속한 작품'이라는 뜻...
* 대중예술은 '흔적'을 등한시하지만, 고급예술은 '영원성'을 중시한다. 대중예술은 그 시대에서만 소비되지만, 고급예술은 당대를 넘어서도 유효하고 다음 시대에도 가치가 보존된다.
* 정작 예술에서만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삶도 그렇다. 사람들은 삶이 지향하는 가치를 잃어버리고, 수단인 돈과 명예와 권력만이 목표가 되어 버렸다.
* 광고인 박웅현 씨...
"실패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다. 우리는 어릴 때 수도 없이 넘어지면서 걷는 데 천재가 되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누구도 넘어지면서 일어나라는 명령에 따른 것이 아니다. 스스로 하려고 해서 이룬 일이다. 실패를 하고도 다시 일어서는 사람들을 그 실패마저도 즐겁다. 성공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는 '무언가'를 배운 기회였기 때문이다. 에디슨 식으로 말하면, '천재란 2,000번 실패해도 다시 시작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며, 창의성은 2,000번 실패한 뒤에 얻을 수 있는 빛과 같은 것이다."
* [나는 걷는다]
* 만약 창의성을 고민한다면, 사람을 만나되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고, 땅을 밟되 처음 밟는 땅을 밟고, 책을 읽되 생소한 분야를 읽어야 한다.
* 경제학에서 행복은 가진 것 / 욕망이다. 그래서 우리는 맹렬하게 분자인 '가진 것'을 키우려 하지만, 분자가 자라는 만큼 분모도 같이 자란다. 그 결과 상대적 욕망에 제동이 걸리지 않기 때문에 분자가 아무리 늘어도 우리는 언제나 행복하지 않다.
* "길에 굴러다니는 조약돌이라면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의 문제가 되면 그렇지는 못하게 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필연적이고 불가피적이며 합목적적이라야 한다고 바라고 있다. 모든 종교, 거의 모든 철학, 그리고 과학의 일부까지도 인류가 자기 자신의 우연성을 안간힘을 다해서 부인하려는 인류 전체의 끈질기고도 영웅적인 노력을 입증해주고 있다."....자크 모노, [우연과 필연]
* 결국 행복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있는 셈이다.
* 헤겔 이후 존재에 대한 질문이 무의미해진 측면이 있지만, 인류의 사상이 이 존재에 대한 궁금증으로 점철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 Edward Hopper
* 우리가 일반적으로 고독을 느끼는 것은 타인과 함께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여기지만, 진짜 고독은 타인과는 늘 함께하면서 참 나가 존재하고 있지 않다는 데서 오는 것이고, 이것을 가리켜 우울이라고 부른다.
* 누군가 말했듯, 넘어짐은 단지 일어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한 것일 뿐이다.
* 바람직한 가치관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 가치기준 아래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온전히 노력하며 뚜벅뚜벅 걸어간다면 모든 것은 일직선에 놓인다.
* 결과론으로만 보면, 아흔아홉 번의 성공을 거듭했어도 백 번째의 실패는 완전한 실패다. 그 한 번의 실패로 인생에서 되돌릴 수 없는 치명적인 결과를 떠안는 것이다. 하지만 과정의 실패는 굳은살이 되어 단단한 발판이 된다.
* 사람은 모두 태어나서 죽는다. 삶의 시작과 끝은 모두 같은 것이다. 하지만 삶에 특별한 흔적을 남긴 사람들은 다르다. 그가 걸어온 길은 다른 사람들에게 떠밀려온 길이 아니고, 그가 생각한 것은 다른 사람들이 주입한 생각이 아니다.
<2장 세상과의 대화>
* 말의 신중함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말을 많이 하면 그만큼 노출되는 것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말을 시작하는 타이밍을 한 템포 늦추도록 하자. 한 번 늦춤으로써 신중함을 인식시키고 한 번 신중함으로써 한 번의 실수를 피할 수 있다.
* 아무리 표현의 시대라고 해도 말에는 질서가 있고 설득의 힘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 어떤 말이든 입 밖에 낼 때는 두 번 생각해야 한다.
* 오스트리아 출신의 미국 사회철학자 Karl Polanyi...'맥락화의 함정'
* 누군가 반공의 우산 아래 '사회주의' 라는 우산을 끼워 넣으면, 반공산당과 반사회주의는 분명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 둘은 하나의 맥락으로 연결되어 사회주의자라는 말이 곧 공산당과 같은 나쁜 맥락을 형성한다.
* 반공의 우산 아래 '시회주의'라는 우산을 끼워넣으면...
사회주의의 우산 아래 '시장'이라는 또 다른 우산을 슬쩍 끼워넣으면...
시장의 우산 아래 '기업'이라는 우산을 슬쩍 끼워넣으면...
누군가 그 아래에 '재벌'이라는 우산을 다시 끼워넣으면...
'반재벌 -> 반기업 -> 반시장 -> 사회주의 -> 공산당'으로 연결되어 '재벌을 반대하는 것은 공산당'이라는 은밀한 맥락화의 올가미가 덧씌워진다....
이런 맥락화는 물론 그것으로 이익을 보는 세력에 의해 은밀하게 학습되고 세뇌된다. 그러므로 그것을 간파하기란 쉽지 않고 설령 간파한다고 해도 용기를 내어 말하기는 더 어렵다. 시스템에서 비주류가 되는 것은 늘 두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 나의 생각이 상위해석자들의 견해에 포섭되는 과정을 '프레임에 걸려들었다"라고 말한다....대중은 프레임에 걸린 물고기가 되기 슆고, 한 번 문 프레임의 바늘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또 한 번 프레임에 걸리면 다른 프레임에도 쉽게 걸려든다....그러니 스스로 사안의 본질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는 한, 이런 프레임들에 갇효 상대를 무조건 '틀렸다'고 규정하며 적으로 삼게 된다. 즉 '나'는 없고 그물에 걸려든 가엾은 물고기만 남게 되는 것이다.
* 1990년 영국의 경제학자 John Williamson이 주창한 'Washington Consensus'의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재정과 규율 - 균형예산과 감세
2. 금융자유화 - 시장균형에 따른 금리 결정, 특정 분야에 유리한 관치금융 폐기
3. 무역자유화 - 보호관세 철폐
4. 자본의 이동, 특히 직접투자에 대한 전면개방
5. 모든 기업의 민영화
6. 규제 철폐, 경쟁을 제한하는 모든 장애물 제거
7. 다국적회사들의 지적재산권 보호
8. 공공지출과 민간, 법인세의 축소
워싱턴컨센서스는 이후 신자유주의를 실현하는 일종의 실천강령으로 채택되었고 '국경없는 세계화'라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가 전세계로 확산되는 데 중요한 기초가 되었다.
* Francis Fukuyama...[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 역사의 종말]
* 금융산업은 원래의 존재이유를 망각하고 자본을 늘리기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
*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일까? 이 시점에서 다음 세대의 주인인 청년들은 이렇게 질문해야 한다. 기업가정신은 무엇인가? 기업의 사회적 역할은 무엇인가? 시장과 사회는 동행할 수 없는가? 이렇게 부단히 문제를 제기하고 압박하면서 시스템의 개선을 이끌어내는 것이 당장의 스펙 쌓기보다 백 배는 더 중요하다.
*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 헌법 제 119조 2항'
우리 헌법에는 이와 같이 신자유주의적 질서에 반대하고, 경제력 남용과 분배의 왜곡이 일어나지 않도록 적절히 개입해야 한다는 소위 경제민주화 조항이라는 것이 있다. 그러므로 현재 청년 위기의 근간이 된 신자유주의적 무한시장주의를 조절하지 않고 방관만 하는 태도는 헌법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과 같다. 우리에게는 대한민국 헌법정신에 입각해서 국가가 시장에 대해 균형있는 견제와 조정을 하도록 요구하고, 또 우리 스스로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우리는 지금 선택해야 한다. 공멸할 것인가, 공존할 것인가? 우리의 미래는 바로 우리들의 자각과 요구에 달려 있다.
* 청년들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는 시각은 과거와 달라야 한다. 미래를 주도할 인재는 기계가 아닌 사람이 만드는 부가가치를 이해하고 새로운 사회변화에 민감하여 다양한 지식을 결합하고 창의적인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 '폐기를 바탕으로 한 성장의 시대'...상대적 욕망을 자극해서 가진것을 버리게 하는데 주력...이때 욕망을 자극하는 수단으로 동원된 것이 테크놀로지, 브랜드, 스토리, 컬쳐 등이다.
* 최근 기계 대신 사람이 화두
* 앞으로 닥쳐올 새로운 질서는 무분별한 대량생산 방식이 아니라 친환경적이고 화석연료나 자연자원을 많이 소모하지 않으면서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새로운 산업시스템이 중심이 될 것...
따라서 미래를 주도할 인재는 기계가 아닌 사람이 만드는 부가가치를 이해하고 새로운 사회변화에 민감하며 그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준비해야 한다.
* 환경은 새로운 패러다임이며 기회다
* 환경은 단지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청년들이 조만간 맞닥뜨릴 새로운 패러다음 혹은 기회의 문제다. 청년이 미래를 계획할 때는 바로 이런 패러다임의 변화가 일어나는 지점에 주목해야 한다.
* 기존 산업사회는 이제 거의 한계점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다. 당면한 자원고갈 같은 한정된 자원의 문제만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증가한 무질서도의 증가, 즉 지구온난화와 환경오염 문제 등은 바로 이 '엔트로피의 저주'가 코앞에 다가와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 일본의 원전사고 역시 좀더 크게 보면 원전 자체의 안전성 문제보다 모든 가용자원을 이용해 에너지를 획득하려는 인간의 엔트로피에 대한 맹렬한 욕망이 근저에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더구나 이런 욕망의 그늘에는 약육강식의 논리까지 감춰져 있다. 도쿄와 대도시의 전력소비를 감당하기 위해 평온한 어촌마을에 원전이 대거 건설되고, 그 결과 재앙은 그 에너지소비의 주체가 아닌 원전 주변 주민들에게 닥친 것이다.
* 부가가치를 얻는 방식을 바꾸는 것...화석자원을 최소한으로 사용하고, 자원고갈 문제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우며 지구온난화 같은 환경문제를 피할 수 있는 분야로 이전해야 한다. 환경은 단지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청년들이 조만간 맞닥뜨릴 새로운 패러다임 혹은 기회의 문제다.
* 마른풀을 뜯고 있던 누(gnu) 떼의 일부가 강 건너에서 불어오는 신선한 풀의 냄새를 맡고 달리기 시작하면 수천수만 마리가 그들의 엉덩이만 바라보며 대질주를 시작하듯, 이런 분야에는 폭발적인 잠재력이 숨어 있다.
* 이제 시작이다. 기계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세상은 사람의 재능과 불꽃, 그 창의성이 빛을 발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그 질주는 오늘 아니면 내일 시작되거나 이미 시작되었을 수도 있다.
* 더 가짐으로써 행복하려는 믿음은 정상에 바위를 밀어 올리려는 시시포스의 신화에 불과하다. 일정 수준 이상에서는 그 대상이 개인이 아닌 사회를 향함으로써 욕망을 선량하게 관리해야 한다. 행복은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찾아지기 때문이다.
* 행복과 불행의 가늠자는 지루함...내가 행복하려면 그것을 손에 넣어도 지루하지 않은, 그것을 가지고 있음으로써 그 빛이 사라지지 않는 대상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 결국 사회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내가 행복하고자 하는 것이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애를 쓰는 것은 나뿐 아니라 타인의 행복을 위해 봉사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따라서 행복의 문제는 결국 개인을 벗어나 사회로 확장되는 데에 달려 있는 셈이다.
<3장 나를 감동시키는 자기혁명>
* 스스로 혁명가가 될 때 비로소 나는 나의 주인이 될 수 있다. 혁명성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스스로 인식하는 것들에 대해, 자신이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새로움을 경험하는 것이다. 서슴없이 경계를 허물고 기존의 것을 타파하는 행동이 나를 혁명가로 만든다.
* "습관은 제2의 천성으로 제1의 천성을 파괴한다." - 파스칼
* 우리는 대개 성과의 차이가 능력 차이 때문에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태도의 차이, 즉 집중력의 차이 때문이다.
* 애티튜드 혹은 태도는 전생애에 걸쳐 나의 삶을 좌우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 중요한 것은 결국 말이 아닌 실천이다. 어떤 계획과 목표도 실천의 뒷받침이 없다면 무의미한 수다에 불과하다.
* 목표를 이루기 위한 첫번째 발걸음은 무언가 부정적인 것을 긍정적인 것으로 바꾸는 것이다.
* 우리는 자신이 만든 틀에 스스로를 가둔다. 성취한 사람도,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자신이 규정한 틀 안에서 살아간다.
* 누구에게든 처음부터 한계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걸어가다가 주저앉는 자리가 바로 한계인 것이다.
* 혁명가의 삶은 늘 진취적이고 의욕이 넘치지만 안주하는 사람의 삶은 늘 회의적이다.
*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초월이 필요하다. 초월은 경계를 넘는다는 뜻이고 경계를 넘는다는 것은 상식을 초월하고 보편성을 깨뜨린다는 뜻이다.
* "변화는 우리가 누군가를 또는 무엇인가를 기다린다고 해서 찾아오는 게 아니다. 우리 자신이 우리가 기다리던 사람이고 우리가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변화다."..,Barack Obama
* 제러미 리프킨..."사회학자들은 지난 20만 년간 인류문명의 발전이 그동안 이 땅에 살아온 모든 인류의 노력의 결과라고 말한다. 이것은 모든 인류에 경의를 표하는 우아한 시각이지만 진실은 아니다. 지금까지 문명과 문화의 발달은 0.1퍼센트의 창의적 인간이 다른 사람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은 꿈꾸지 않는 것을 꿈꾸며, 모두가 보지 못하는 어두운 곳에 깃발을 꽂고 이곳이 젖과 꿀이 흐르는 새로운 땅이라고 외치면, 0.9퍼센트의 안목있는 인간만이 그것을 알아보고 그들과 협력하고 후원하며 새로운 문명을 건설한 결과다. 나머지 99퍼센트는 이 1퍼센트가 모든 것의 기초를 닦고, 새로운 계단을 놓고 난 다음에는 비로소 그 위에 올라와 세상 참 많이 달라졌다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또다시 그곳에 안주한다."
* 혁명가는 다르다. 그들은 태생적으로 초월성을 갖고 있다....이렇게 태생적으로 초월성이 잠재되어 있는 사람들이 예술가가 되고 과학자가 되며 시대를 이끄는 정치가나 창의적인 사업가가 된다. 그들에게 도전은 영혼이고 안주는 죽음이다.
* 열정은 막히면 뚫고 막으면 돌파하는 기백이다.
* 철학을 통해 사유의 경계를 넓혀라.
* 정보사회가 되면서 지식은 점점 세분화되고 깊어졌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남에게 배우는 공부는 넘쳐나지만 스스로 익히는 공부가 사라졌다. 그 결과 '통섭'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많지만 청소년기에 철학이 필요한 첫번째 이유는 '사고' 아닌 '사유'의 방법을 알게 해주기 때문이다.
* 통섭, 직관, 통찰을 기르는 가장 좋은 학습이 바로 철학을 공부하는 것이다.
* 필자가 좋아하는 철학자 강신주 선생은 우리가 접하는 모든 학문의 근본은 수학과 철학이라고 말한다.
* 과학기술 기대에 '높이 더 높이'를 외치며 첨탑만을 쌓아올리고 인문학이라는 땅을 다지지 않는다면 정작 그 탑을 어디에 놓아야 할지,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를 끝없이 고민할 수밖에 없다. 즉 과학기술이 하드디스크라면 인문학은 운영체제에 해당하는 셈이다. 이것이 우리가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하는 당위고, 과학에서 수학을 인문에서 철학을 중시하는 이유다.
* 우리가 인문학을 논하는 동안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다. 물리학을 하기 위해서는 수학이 필요하듯 인문학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철학을 접해야 한다는 사실을 빠뜨린 것이다.
* 철학은 문자 그대로 사유의 학문이다. 자연과학 실험실이 약품과 기구들을 이용해 결과를 낸다면, 인간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사유의 실험실은 그가 사용하기에 따라 우주를 창조하기도 하고 세상을 가로지르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철학은 그런 사유의 실험실이다.
* 철학 자체가 사유라면, 철학사는 '사유의 흐름'을 보여준다. 만약 철학사를 건너뛰고 철학을 공부한다면 비약된 의식처럼 허술하고 기괴한 모형이 된다. 철학사는 당대의 사람들이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를 알게 해준다.
* 우리 사회와 교육은 공부에 재능이 있는 사람만이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우리 사회는 공부하는 재주를 가진 사람만이 성실근면하고 우수한 자원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다른 분야에 빛나는 재주를 가진 사람들까지 모두 공부라는 재능의 줄에 서서 자신의 재주를 사장시키고 있다. 이는 사회적으로도 엄청난 낭비다.
* "최선을 다했다는 말을 함부로 쓰지 마라. 최선이란 자신의 노력이 스스로를 감동시킬 수 있을 때 비로소 쓸 수 있는 말이다."...조정래
* 조정래 선생님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태백산맥]을 썼다.
* Ernest Hemingway...."사람이 모든 길을 다 갈 수는 없다. 성공은 단지 한 분야에서만 얻을 수 있으며, 우리가 선택한 직업은 일생을 통해 오직 한 개의 인생 목표가 되어야 한다. 그 외의 다른 것들은 모두 이것에 종속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나는 일(직업)을 적당하게 생각하는 것을 싫어한다. 자신의 일은 반드시 최선을 다해야 한다. 만약 내가 선택한 길이 옳다면(그렇게 선택된 것이라면) 대답하게 행해야 한다. 사람이 이상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성공적인 삶이다. 어떤 사라을 강하게 만드는 요인은 그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 그 일을 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 "하늘이 어떤 이에게 장차 큰 일을 맡기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을 수고롭게 하고 그 근육과 뼈를 지치게 하며 육체를 굶주리게 하고 생활을 곤궁하게 해서 행하는 일이 뜻대로 되지 않도록 가로막는데, 이것은 그의 마음을 움직여 그 성질을 단련시키며 예전에는 도저히 할 수 없었던 일을 더 잘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사람은 언제나 잘못을 저지른 뒤에야 바로잡을 수 있고, 곤란을 당하고 뜻대로 잘 되지 않은 다음에야 분발하고 상황을 알게 되며, 잘못된 신호가 나타난 뒤에야 비로소 깨닫게 된다. ... 우리는 그 다음에야 우환이 사는 길이고, 안락이 죽는 길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_ 맹자
* 우리가 자기완성을 위한 도전에 직면한다는 것은 내가 나아가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고 있다는 뜻이고, 그것이 고통스럽고 힘들다는 것은 나 스스로 장애물을 넘어서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음을 증거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런 도전과 응전의 과정에서 비로소 성숙하고 발전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 만약 내가 고민 때문에 고통스럽다면 그 고통은 그것을 넘어서려는 의지의 발현이고 내가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는 증거인 셈이다.
* "만약 어리석은 사람이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는다면 그가 곧 슬기로운 사람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이 스스로를 슬기롭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어리석은 것이다."...법구경
* '시간이 없다'는 말은 위선이다. 시간은 늘 충분하다. 단지 우리가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것에 도전할 시간이 없는 것이다.
* 예를들어 기회의 문제는 자본의 탐욕이다. 누군가 공장을 여러 개 지어 돈을 많이 벌게 되면 그것에 감사하기보다는 새로운 탐욕에 사로잡힌다. 공장을 지키는 일을 남에게 맡기지 않고 내가 경비회사를 하나 차려 그 돈까지 벌고 싶고, 노동자들의 점심값으로 식당에 돈을 주느니 내가 식당을 차려 그 돈도 벌고 싶고, 광고를 맡기느니 그것도 직접 하고 싶고, 나중에는 공장에서 쓰는 문방구도 직접 조달해서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은 탐욕에 빠져드는 것이다.
* 청년은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삶이 이미 많은 사람이 줄지어 가고 있는 길의 끝에 서서 그들과의 경쟁에 몰두하는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그 길 위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뜻을 펼치는 사회의 중심으로 살아갈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남이 가는 길을 따라가면 종속되지만 남이 가지 않은 길은 험난하다. 당신은 어느 길을 선택할 것인가?
*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키팅 선생이 외친 'Carpe Diem'은 지금을 즐기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이 바로 당신의 미래요, 꿈이라는 의미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인생은 '지금'의 가치를 너무 간과하고 있다. 우리는 늘 과거에 사로잡혀 있거나 미래에 대한 망상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늘 지금이다.
<4장 _ 자기혁명을 위한 배운과 성장>
* Bertrand Russell은 인간을 원죄형, 자아도취형, 과대망상형 인간으로 구분했다.
* 자존심은 타인과 비교해서 우월감을 느끼려는 감정이고 자긍심은 자신의 내면적 충족감을 느끼는 것인데, 이들에게 존재하는 것은 자존심뿐이다.
* 인생에서 성공이란 이전에 99번을 성공했어도 현재 실패했으면 실패고, 과거에 99번을 실패했어도 현재 성공했으면 성공이다.
* 인간이 원래 상대적 욕망에 충실한 존재라는 가정은 어쩌면 편견일 수 있다. 아이들을 관찰해보면 그들은 절대적 욕망에 충실하다.
* 사람을 많이 만나는 것은 가치를 비교할 수 없는 공부가 된다.
* 상대를 경외하고 선망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바로 진정한 겸손이며, 이로써 타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두자.
* 공자가 생전에 가장 싫어한 두 부류의 사람이 있는데, 바로 향원과 예의 없는 사람이었다. 여기서 향원이란 겉으로는 정의롭고 현명하며 바른말을 하지만 실천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키는데, 공자는 잠시 나랏일을 맡았을 때 '향원을 죽이라'는 살벌한 명령을 내릴 만큼 향원을 싫어했다.
* 기억해두자. 당신은 장점 덩어리다.
* 시간의 가치는 밀도가 결정한다.
* 우리의 직선적 시간관은 '물리적 시간은 속도에 따라 달라진다'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에 의해 이미 부정된 바 있다.
* 사회가 아닌 독립적인 나를 상정한다면 시간은 그다지 필요한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사회적 습관인 시간에 얽매여 내면화된 나에게도 시간의 강박을 강요하고 있다.
* 출근을 하고 다른 사람과 약속을 잡기 위해서는 시계시간이 중요하지만 혼자서 명상을 하거나 공부할 때까지 시계시간에 따라 목표를 세워 거기에 속박될 이유는 없다.
* 내가 인식하는 시간의 속도는 늘 다른데 이때 시간의 밀도를 결정하는 것은 집중이다. 어떤 일에 골똘하게 몰두하면 시간은 쏜살같이 흐르지만...재미없는 일을 할 대 시간의 흐름은 더디기만 하다.
그러니 시간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다.
* 필자는 '시간이 없어서'라고 변명하는 사람을 가장 싫어한다. 해야 할 일을 하는데 시간이 부족하다면 그것은 곧 나태함이다. 시간은 누구든 열 배, 백 배로 압축할 수 있다. 파편처럼 흩어져버리는 수많은 시간의 조각과 망상의 시간을 붙들거나 정돈함으로써 더 많은 시간을 낼 수 있으며, 집중력과 밀도를 높임으로써 시간의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 역시 진리다. 시계시간으로 나이라는 개념은 모임의 상석에 앉거나 주민등록증을 만드는 데 필요한 사회화된 기준일 뿐, 내면화된 나의 관점에서는 의미가 없다.
* 우리는 시간을 대할 때 사회화된 나로서 의식해야 할 시간과 내면화된 나로서 의식해야 할 시간의 개념을 구분하고, 시간의 밀도를 높이는 일과 파편처럼 흩어진 시간들을 질서있게 배열하는 데 관심을 두어야 한다.
* 필자는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 중에서 성공에 이른 이를 만난 적이 없다. 우리가 쫓기는 시간에는 찌꺼기가 너무 많아서 시간이 더 필요하다면 그만큼 찌꺼기를 버리면 된다. '시간이 없다'는 말은 달콤하지만 쓸모없는 것들을 끌어안고 놓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때문에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고 필요한 것들로 채우는 과정을 '시간관리'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을 내 삶의 가치배분을 위한 포트폴리오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 시계시간에 의존하지 않고 비중을 배분하는 문제로 보면 활씬 간단해진다...몇 시부터 책을 읽고 몇 시에 운동을 한다는 시간계획은 나를 늘 초조하게 만들지만, 내가 직업 이외의 일에 배분하는 시간을 비중에 따라 비율로 나눈다면 훨씬 쉽게 시간을 관리할 수 있다....필자의 경우, 하루 여유시간의 약 10퍼센트를 '소셜'이라는 항목에 배정...여유시간의 30퍼센트 정도는 '공부'에 배분
* 우리가 뷔페에서 음식을 먹을 때에도 상대가치가 큰 음식을 선택하려면 다른 걸 줄여야 한다. 먹을 수 있는 양은 정해져 있는데, 모든 것을 욕심껏 다 취하려고 하면 마음만 초조하고 배탈이 나기 십상이다.
* 결국 시간활용은 계획이 아니라 금기를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먼저 정하고 해야 할 것을 계획하면 그것은 시천 가능한 계획이 되지만, 해야 할 것만 정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버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알코올중독자가 소주공장에서 일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 기차시간에 맞추듯 시계시간에 쫓겨다니면 계획만 세우다 마는 어리석음을 반복할 수 있음을 명심하자.
* 지식을 쌓기 위해서는 공부를 열심히 하면 되지만 지혜를 늘리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대로 이질적인 것들을 만나야 한다. 새로운 생각은 이질적인 환경에서 나오기 때문이다....습관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면 우리는 고민하게 되고 그 고민에 대한 답이 축적되면 지혜가 된다....
'고민을 하지 않는다'거나 '고민이 없다'는 것은 안주하고 있다는 말과 같다. 더 이상 달라질 것도 없고 나아질 것도 없다는 뜻이다.
* 지식은 사물을 대상으로 하지만, 지혜는 삶 자체를 대상으로 한다. 또 지식은 나에게 할당된 분야의 기술을 내 것으로 삼는 것이지만, 지혜는 내가 주체적으로 외부와 맞서면서 키워나가는 것이다. 사람은 이 두 가지가 함께함으로써 발전한다.
* 공부는 배우는 것(學)과 익히는 것(習), 두 개의 바퀴로 되어 있는데, 우리는 배우는 것만이 공부라고 여긴다. 배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실천하고 그것을 현실태로 담아낼 때 비로소 공부가 완성된다.
* 당송8대가 중 한 사람인 한유의 [부독서성남]..."금이나 옥이 귀한 보배라고들 하지만 너무 쉽게 쓰게 되고 깊이 간직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학문은 몸에 간직하는 것이다. 그 몸만 있으면 아무리 써도 남음이 있다."
* 공자는 '학이불사즉망, 사이블학즉태'...[논어][위정편]...'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리석어지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로워진다'
* 주희...[사서집주]..."널리 배우고 깊이 묻고 신중하게 생각하고 분명하게 판단하고 독실하게 행하는 것. 이 다섯 가지 중에 한 가지라도 없다면 그것은 학문이 아니다."
* 배우는 것이 벽돌이라면 생각하는 것은 쌓는 것이다. 벽돌을 아무리 많이 찍어내도 쌓지 않으면 집을 지을 수 없다.
* "지성이 배제된 감성은 맹목적이고, 감성이 배제된 지성은 공허일 뿐"...칸트
* 중국의 제자백가 중 묵자와 순자 등은 시대에 따라 부침을 거듭했다. 특히 '대동사회'와 '겸애'를 주장한 묵자의 사상은 지배계급의 입장에서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것으로 여겨져왔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 묵제의 사상을 제3의 가능성으로 다시 읽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한 시대의 금서가 권장도서로 바뀌게 된 것이다.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이나 [자본론]은 그런 부침을 겪은 대표적인 사례다.
* 저자의 논리에 매몰되지 말 것! 한 권의 책에 매료되면 가능한 한 그 반대 논리를 주장하는 책도 함께 읽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지 않을 경우 '독서로 인한 편협성'에 빠지기 쉽다.
* 완독, 다독보다 중요한 것은 독서 후의 사유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면 그 책을 읽는 데 투자한 시간 이상 책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독서는 지식을 체화하고 사유의 폭을 넓히는 수단이다. 성찰의 실마리를 던져주지 못한 책은 시간을 파먹는 좀벌레에 불과하다.
<5장 미래를 여는 변화와 도전>
* 차가운 지략가 마키아벨리는 운명에 맞서는 인간의 힘(vitru)를 강조했다.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도덕이란 욕망이나 유혹을 이성의 힘으로 통제함으로써 달성되는 가치지만, 마키아벨리의 비르투는 이런 욕망과 유혹의 불꽃이 견제나 억압 없이 그대로 드러나는 상태를 가리킨다....
"운명이 행위의 결과물에 반 이상 작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운명 역시 나머지 절반은 바로 우리 인간에게 맡겨놓았다."고 말했다. 즉 운명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잡아채는 것이며, 기회가 포착되면 놓치지 않고 거머쥠으로써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군주론]..."운명의 신은 여신으므로 그녀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가끔은 쓰러뜨리거나 제압할 필요가 있다. 운명은 거리를 두고 망설이는 사람보다 이런 사람들에게 승자의 면류관을 씌워준다. 즉 운명은 여자와 같아서 젊은 청년의 편이다. 왜냐하면 혈기 왕성한 청년은 좌고 우면하지 않고, 민첩하고 과감하게 여자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 우리 사회는 이런 대립이 계속 격화되고 있다. 시장경제체제가 완숙기를 지나면서 시장에서 성장한 대자본이 성과를 부당하게 세습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기회를 잃은 약자들은 아우성을 치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대기업은 상대적 욕망의 노예가 되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늘려가고, 자신의 자녀들에게 그만큼의 부와 지위를 물려주기 위해 내부거래, 편법 증여와 상속 등을 서슴지 않으면서 약자들의 기회를 더 약탈하고 있다. '시장원리'라는 신성불가침한 명분이 이런 부당한에 대한 견제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이대로 가다가는 공멸하고 말 것이라는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는 실적이다.
* 문제는 이 시스템에서 수혜를 받고 있느 주류들이 스스로 문제를 고치려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시스템을 고칠 수 있는 힘은 주류에게 있지만, 주류가 스스로의 이익을 보장해주는 시스템을 포기할 리 없다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딜레마다. 이때 시민의 자각과 힘이 중요하다.
* 골드먼삭스를 government socks라 부르는 미국
* 사회는 일시적으로 선.악에 대한 분별력을 잃는 경우가 많지만, 장기적으로는 항상성을 기반으로 선한 영향력의 편을 들게 되어 있다. 그리고 선한 영향력 중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감력이다.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이해하느 공감력이 있어야 영속가능한 사회가 될 수 있다.
* 선량함의 근원에는 두 가지 핵심기제가 작용하는데, 하나는 sympathy(동정)이고 다른 하나는 empathy(공감력)이다.
* 우리나라 재벌기업들은 공익재단을 만들고 사회사업을 하고 문화사업을 지원하며 사회적 역할을 다하고 있지만 사회적 기여가 없다는 지적을 받곤 한다. 이유는 그것이 sympathy이기 때문이다.
* 적극적인 자유의지와 강한 자존감을 바탕으로 나의 그것만큼 타인의 자존감도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느 능력, 그것이 empathy다. 우리 모두가 독존이 아닌 공존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바로 empathy인 것이다.
*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필자가 청년들에게 추천하는 책이 바로 [주역]이다. 영어궈에서는 [주역]을 '변화의 책(the book of change)'이라고 부른다.
* 공자가 '가죽 끈이 세 번에나 끊어질 정도'로 주역을 읽은 이유이며, 왕필을 비롯한 많은 학자가 [주역]에 주석을 달고 평생을 탐구...지배계층과 그들을 수호하는 지식인들이 탐독하며 사서오경의 한 권으로 인정
* 필자가 [주역]을 필독서로 추천하는 이유는, 이 책이 수천 년 전부터 아우성치고 있는 변화의 원리를 읽어내라고 말하고 있으며, 아울러 수동적인 '역'이 아니라 스스로 변화하는 능동적인 '역'으로의 전환이 지금 이 시대에 너무나 필요하기 때문이다.
* 우리가 현대사회에서 취해야 할 [주역]의 기본원리는 계사전의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라는 구절에 모두 녹아 있다. 이 아홉 글자의 뜻을 우리말로 풀면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며 통하면 영원하다'는 뜻으로, 이 말은 사실 인류사에 길이 남을 빛나는 선언이기도 하다.
* [주역]은 '막히면 변하라'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즉, 스스로 변하는 것이 해법이라는 뜻이다.
* 과거시대의 키워드가 '기계'였다면 새로운 시대의 키워드는 '사람'이다. 즉, 사람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맹목적인 추격과 질주를 하던 시대에는 앞선 자를 잘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지만, 사람의 시대에는 스스로 방향을 설정하고 길을 찾아나서야 한다.
* 1,2, 세대 산업자본의 기대에는 그들의 독주를 허용했던 배경에 국부 증가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국가의 정책목표는 '추격'...이 시대 교육의 목표는 추격에 적합한 근육질의 종마를 양성하는 것이었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왜?'라는 의구힘을 갖지 않으면서 앞서가는 깃발만 보고 맹렬히 질주하는 종마, 그것이 바로 인재였다.
* 문제는, 앞서 달리는 깃발이 있을 때는 그것을 보고 달리는 데 익숙하지만, 앞에 깃발이 없을 때 자신이 깃발을 들고 나아가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길을 찾는 방법을 한 번도 고민해보지 않은 것이다. 그동안은 타인의 성공을 보고 득실을 계산한 다음 커다란 보폭으로 그것을 추격하는 것을 '기업가정신'이라고 불렀지만, 진정한 기업가정신은 길을 찾는 것이다.
* 핵심 키워드는 바로 '사람'...과거 시대의 키워드가 '기계'였다면 지금은 사람이 부가가치 창출의 핵심 수단...기계문명은 필연적으로 자원고갈과 환경오염의 문제를 피해갈 수 없다. 기계를 돌려 제품을 생산하고 그것이 다시 폐기물이 되는 비가역적인 사이클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벗어나 자원고갈과 폐기물의 문제에서 자유로우며 무한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생산수단이 곧 사람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엔터테인먼트, 레저, 에듀케이션, 헬스케어, 바이오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영역은 기존에 없던 것을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던 것을 재조합함으로써 시너지를 창출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 현재 인도를 제외하고 30세 이상의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곳은 아프리카밖에 없다.
* 개인의 성공을 위해 질주하는 스펙경쟁의 시대에 오히려 공공의식을 몸에 익힌 사람이 새로운 승자가 되는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고 있다. 지금 청년세대가 미래의 리더가 되는 가장 중요한 자질은 기성세대와 같은 '탁월성'이 아닌 '공공의식'이 될 것이다.
* 행복과 선함에 대해 논할 때 걸코 빼놓을 수 없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오늘날 우리가 '윤리'라고 부르는 선량함의 규율에 대해 "행복은 어떤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행위 그 자체에 있다."고 선언했다.
* 김제동...;내 아이가 행복하려면 이웃집 아이가 행복해야 한다'
* 차세대 리더를 꿈꾸는 청년들은 바로 여기 중요한 힌트를 얻어야 한다. '시대의 요구는 과잉이 아닌 결핍과 일치'하며, 그 결핍은 다음 세대의 필수 덕목이 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지금 청년들은 현재 대표적 과잉 중 하나인 무모한 스펙전쟁이 아니라 대표적 결핍인 공공성을 갖추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사회적 건강성에 헌신함으로써 차세대 리더에게 요구되는 리더십을 획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즉 과거에는 잘난 사람의 리더십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대중의 팔로십이 중요한 시대다. 예전에는 유아독존이더라도 만 명을 먹여살리는 한 명의 인재가 '팔로 미(follow me)'를 외치면 9,999명이 뒤를 따라 뛰었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끝났다. 공공의식이 없는 리더십에는 대중이 곧 염증을 느낀다. 어떻게든 성공만 하면 되고, 남을 짓밟고 올라서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고, 잘나고 똑똑하면 모두가 따르던 리더십에 염증을 느낀 대중들이 간절하게 공공의식을 가진 공감형 리더십을 요구한다.
* 지금 모두가 개인의 성공을 위해 질주하는 스펙경쟁의 시대에 오히려 공공의식을 몸에 익힌 사람이 승자가 되는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고 있다. 지금 청년세대가 미래의 리더가 되는 가장 중요한 자질은 기성세대와 같은 '탁월성'이 아닌' 공공의식'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 한 시대의 화두는 그 시대에 가장 결핍되었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 시대의 키워드는 '공정'이 될 것이다. 결과불평등은 인간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이지만, 과정의 공정성은 경기 자체가 지속되게 하는 더 중요한 조건이다.
* 한 시대의 화두는 그 시대에 가장 결핍되었다고 여겨지는 것.
* John Rawls는 공리주의에 입각한 마이클 센델과 달리, 정의의 문제에서 평등의 개념을 직접적으로 제기한 사람이다.
* 이익을 내기 위해서 존재하는 기업의 경우, 이익만을 위해서 어떤 탐욕을 부리더라도 그것은 전제에 충실한 것이 정의라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기업의 전제를 잘못 해석한 데에서 오는 문제다. 기업은 물론 이익을 추구해야 하지만 이익 추구가 기업의 존재이유는 아니다. 기업의 전제는 그렇게 천박한 것이 아니다. 기업의 전제는 구성원들을 행복하게 하고, 사회에 고용과 투자의 기회를 제공하며 함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다.
<에필로그>
* 목표를 세울때는 반드시 나를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 의식을 집중해서 무의식을 가만히 탐색하고, 나의 장점과 단점을 잘 비교한 다음, 최소한 장점 항목이 단점을 능가할 때 장점들을 잘 모아서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는 재능을 파악한다.
* 두 마리의 토끼를 좇지 말라는 것은 패배자의 논리다.지금 만약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면 두 마리의 토끼를 좇아라. 지금 어려운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현재에 최선을 다하면서 ,미래에 대한 준비를 병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 그만큼 다른 것을 포기해야 한다. 불필요한 순서대로 나에게 붙어 있는 나쁜 습관의 찌꺼기를 떼어내고, 시간을 압축해서 밀도를 높이고, 코피가 터지고 엉덩이가 짓무르도록 집중해가면서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 성급해할 필요는 없다. 물은 99도가 될 때까지 끓지 않는다. 100도가 되기를 기다리는 인내와 여유가 필요하다. 내가 노력하고 있다면 기다림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여유가 필요하다. 세상의 모든 것은 발효 과정이 필요하다. 무언가를 시작해서 당장 성과를 얻는 것은 그야말로 운이다.
* 하필 행운의 여신이 나만 피해갈 리 없고, 하필 불행의 여신이 발목만 잡을 리도 없다. 인생은 정직한 것이다. 묵묵히 걸어가라. 결과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 "나는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운 것이 없다.
나는 자유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