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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스크랩][프레시안]"한국경제 논쟁, 큰 산을 그려라"

"한국경제 논쟁, 큰 산을 그려라"


[인터뷰] 김영호 단국대 석좌교수

기사입력 2012-07-03 오전 8:46:48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렸다."


김영호 단국대 석좌교수는 최근 <프레시안>에서 진행되고 있는 한국 경제 성격 논쟁의 현재 상황을 이렇게 진단했다.


<프레시안>은 6월 25일 오후 단국대 연구실에서 김 석좌교수를 만났다. 한국 경제 성격 논쟁에 관한 의견과 경제 위기에 대한 진단을 듣기 위해서였다.


김 석좌교수는 경북대 교수, 도쿄대 교수 등을 역임한 원로 경제학자다. 김대중 정부 시절이던 2000년에는 산업자원부 장관을 맡기도 했다. 그 후 유한대학 총장, 중소기업시대포럼 공동 대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이사장 등을 지냈다.


김 석좌교수는 이번 논쟁의 양 진영이 타협할 여지가 있다고 봤다. 타협해서, 커다란 위기를 맞이한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의 새 판을 짤 큰 그림을 그려달라고 주문했다. 재벌 개혁과 국제 금융 자본 통제는 양자택일 식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김 석좌교수의 판단이다.


아울러 김 석좌교수는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주주자본주의가 변화하고 있으며, 기업의 사회책임을 매개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와 접근 내지 혼합되고 있는 측면도 충분히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 석좌교수는 사실상 양 진영이 이해관계자 이론이나 복지국가론을 공유하고 있으며, 재벌 개혁론과 재벌 타협론은 사실상 큰 차이가 없으므로 타협의 여지는 매우 크다고 강조했다.


김 석좌교수는 논쟁에서 성장 문제가 충분히 다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어떤 방식으로 경쟁력을 강화해 신성장 동력을 만들어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오늘날 한국 사회가 풀어야 할 중요한 사안이라는 지적이다. 김 석좌교수는 "역사적인 경제 위기 해소, 경제 민주화와 재벌 개혁, 복지 증가, 경쟁력 증가, 이렇게 4가지 축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성장 문제와 관련해 김 석좌교수는 중소기업의 활로를 열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쥐어짜는 지금과 같은 방식은 바람직하지도,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는 말이다. 이와 함께, 일각에서 한물간 것처럼 간주하는 산업 정책이 여전히 유효하며 매우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 석좌교수는 지난 정부들의 경험을 돌아보며, 민주화 세력이 경제에 대한 명확한 상을 갖고 있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구체성을 갖춘 큰 그림을 그리는 데 힘을 모아야 할 때라는 것이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세 시간에 걸쳐 이뤄진 인터뷰 진행은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가 맡았다.


프레시안 : 최근 <프레시안>에서 한국 경제 성격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어떻게 보나.


김영호 : 장하준 그룹의 책과 김상조 교수의 책을 모두 봤다. <프레시안>에 게재된 글도 다 봤다. 나로선 모두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다른 분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던데, 조금 감정적으로 경직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경제학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정예 경제학자들이 힘을 합쳐 역사적 개혁을 추동하는 회오리바람, 나아가 '태풍의 눈'이 되어야 하는데 몸통이라기보다 잔가지들에 얽매여 잔가지 싸움을 하는 것 같았다. 상대방의 전체를 안 보고 부분 내지 표현만 보는 것 같다. 각자가 가진 좋은 점이 결합되지 못하고 있다.


<프레시안>에는 '성급한 타협보다 철저한 논쟁이 중요하다'고 표현돼 있던데, 난 좋은 의미로 충분히 타협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큰 그림을 그리는 쪽으로 간다면 상당히 생산적이지 않을까, 경제 민주화의 큰 동력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에는 장하준 그룹이 문제설정을 조금 경직되게 한 것 같다. 처음부터 장하준 그룹의 타깃은 신자유주의 극복이었고, '신자유주의는 바로 주주자본주의'라고 봤다. 재벌 체제, 대기업 집단을 긍정적으로 보고 타협해서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교두보로 봤다. 그리고 경제 민주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주주자본주의를 주장하는 사람, 좌파 신자유주의자로 봐 버렸다. 그러니까 이상하게 돼버렸다.


정다산(다산 정약용)이 8세 때 지었다는 시를 소개한다.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렸다. 멀고 가까움이 다른 까닭이다." 작은 산을 보고 논쟁하는 감이 없지 않다. 큰 산 쪽으로 환원하면 (논쟁이) 큰 산을 그리는 아주 좋은 이론적 연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돼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큰 산을 보는 쪽으로 전환했으면 좋겠다.


프레시안 : 장하준 그룹에서 상대편의 문제점이라고 본 부분만 지나치게 부각시킨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김영호 : 초기에 소액주주운동이 일어났을 때 그런(지금 장하준 그룹에서 하는 것과 같은) 비판들이 있었다. 장하준 그룹의 비판이 너무 경직됐지만, 빌미의 일부는 저쪽에서 제공한 측면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서로 용납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타협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큰 산을 보면 충분히 타협이 된다. 악수하고 논쟁의 2막으로 가야 한다.



▲ 김영호 단국대 석좌교수 ⓒ프레시안 자료사진


"작은 산이 큰 산 가렸다…타협해 큰 그림 그려야"


프레시안 : 타협을 위한 공통의 기반, 출발점은 무엇일까.


김영호 :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가 큰 위기를 맞았다. 대공황을 연상시키는 대전환기다. (살면서) 이만큼 큰 위기, 전환기를 경험하지 못했다. 재계나 관료들도 위기, 위기 하는데 그것은 '위기니까 개혁 논의는 위험하다'는 보수적 위기론이고 개혁론자들이 위기, 위기 하는 것은 1930년대의 위기처럼 '새 패러다임 없이는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다'는 개혁적 위기론이다. 국민 99%의 분노가 깨어나고 있다. 총선에 이은 대선을 앞두고 야당은 물론 여당도 경제 민주화를 표방하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다. 개혁을 할 수 있는 역사적 호기이다. 여기서 새 판 짜기를 하지 않으면 위기 후 신시대에 낙오자가 되기 쉽다. 역사는 개혁의 기회를 주지만 그 기회를 못 살리면 벌을 준다. 이것이 큰 산이다. 재벌 문제도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의 새 판 짜기의 일환으로 논의했으면 좋겠다. 새가 알을 까고 나오는 것처럼, 애벌레가 허물을 벗고 나비가 되는 것처럼 시민사회가 정치적으로 자기 집을 짓는 다음 단계로, 경제적으로 세계 속에 자기 집을 짓는 새 판 짜기의 일환으로.


프레시안 : 세계 경제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위기의 본질이 무엇이라고 보나.


김영호 :실물경제를 떠난 금융경제의 증권화·세계화의 한계요, 정부 개입 없는 시장 근본주의의 한계요, 고삐 없는 탐욕 경제의 한계이다. 민주주의 내지 시민사회를 떠난 카지노 자본주의의 한계라고 해도 좋다. 그러니까 실물경제와 연계되는 금융, 정부 개입의 고삐가 있는 시장경제, 민주주의와 재혼하는 자본주의여야 한다는 것이다. 2-3개월 전에 '미국 경제가 회복된다, 위기는 끝났다' 하는 조짐이 조금 있었다. 그때 주가도 많이 올랐다. 결국은 '거짓 새벽(false dawn)'이었다. 금융 완화만 해서, 돈만 풀어서 되는 게 아니다. 개혁 없이 진정한 회복은 없는 것 아니냐 하는 쪽으로 논의가 가고 있다.


타협을 위한 공통 기반의 또 하나는 양쪽이 사실상 거의가 이해관계자 이론과 복지국가론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난 이 논쟁에서 주주자본주의를 대부분 조금 경직되게 본다고 느꼈다. 회사의 자산 중 실물자산만 중요하다고 보는 건 이미 지났다. 신뢰, 사회적 평가, 투명성 등의 사회자본이 중요한 시대다. 어떤 기업이든 주주의 이익만 직접적으로 고려하면 오히려 주주에게 손해가 가게 된다. 좋은 일을 많이 해야 평가가 좋아지고 그래야 회사 가치가 올라가고 장기적으로 주주에게도 득이 되는 시스템이다. 회사는 여러 이해관계자에게 좋은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자와 소비자를 고려하고, 세금을 잘 내고, 환경을 잘 고려하는 것 등이 주주에게 오히려 이익이 되고 있는 것이다.


주주자본주의가 주주자본주의로만 남아 있을 수가 없다. CSR(기업의 사회책임)을 매개로 주주자본주의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가 상당히 접근하며 변모하고 있다.


그렇다면 주주자본주의를 타깃으로 한 재벌 옹호론이 계속해서 설 자리가 남아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주주자본주의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급격한 혼합형으로 가고 있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또 주주자본주의적이면서도 CSR에 앞장선 기업도 얼마든지 있다. 영국의 허밋(Hermes)이 한국의 삼성에 투자했다가 삼성의 지배구조 개혁을 요구하다 투자를 철회한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국제 자본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유엔 PRI(책임 투자 원칙)에 서명하고 ESG(환경·사회·거버넌스) 중시 경영을 표방한 국제 금융 자본이 32조 달러다. 전체 금융의 약 3분의 1에 해당한다.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한국의 문제는 국제 금융 가운데 단기 투자를 하는 헤지펀드처럼 구태의연한 것들에 여전히 잡혀 있는 것이다. 국제 금융 그 자체가 문제라고 보지는 않는다. 국제 금융에서 SRI(사회 책임 투자) 금융이 한국을 상대적으로 외면하고 있다. 오히려 한국은 단기 투자펀드의 왕국이다.


"주주자본주의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서로 접근하며 변하고 있다"


프레시안 : SRI 펀드가 한국에 잘 들어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김영호 : 헤지펀드 양이 국제적으로 축소됐다. 5조 달러 정도였다가 지금은 3조 5000억 달러 정도로 줄었다. SRI 펀드가 6조 5000억 달러 정도 된다. SRI 펀드는 아니지만 유엔 PRI 원칙에 따르겠다고 서명한 게 32조 달러다. 엄청난 액수다. 거기서는 한국에 대한 투자를 주저하고 있다. 외국 신문을 보고 제일 슬플 때는 '한국은 국제 SRI 투자가 외면하는 곳'이라는 기사를 봤을 때다. 재벌 개혁과 연결되는 문제다. 재벌의 거버넌스 때문에 투자하는 데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재벌 개혁과 국제 자본 문제는 이렇게 연결되는 것이다.


프레시안 : 재벌 개혁이 더 시급한 과제라는 뜻인가.


김영호 : 재벌 개혁과 국제 금융 문제를 선후 혹은 양자택일의 문제로 보는 건 납득이 가지 않는다. 내적 요인과 외적 요인의 결합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사회책임경영기업에는 국제 SRI 펀드나 그에 준하는 장기 투자자본이 얼마든지 찾아온다.


프레시안 : 헤지펀드를 제대로 규제할 수는 없는 건가.


김영호 : 헤지펀드와 연결될 수 있는 국내 세력이 없다면 헤지펀드가 어떻게 들어오겠나. 국내 대기업과 관료(그중에서도 금융 관료)와 헤지펀드가 하나의 연결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이다. 헤지펀드, 재벌 체제, 관료 체제의 3자동맹이라고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이번 론스타 문제에서도 바로 이 구조가 도사리고 있는 것 같다.


프레시안 : 주주자본주의가 문제라기보다는 책임 있는 기업 경영이 핵심이라는 것인가.


김영호 : 주주자본주의가 문제가 아니라는 게 아니다. 주주자본주의의 내용을 잘 들여다보고, 그것이 변모하는 것을 함께 봐야 한다는 것이다. 아까 논쟁 당사자들이 사실상 이해관계자 이론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지만 세계자본주의도 사실상 주주자본주의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혼합형 내지 절충형이 대세를 이루지 않을까 하는 인상이다.


프레시안 : 재벌 개혁에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은 무엇인가.


김영호 : 재벌 개혁에 국민연금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에 공감한다. 국민연금이 367조다. 이게 170여 개 기업체에 투자되고 있다. 이것이 어떤 투자자본의 역할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는 관료만이 아니라 노동자 대표, NGO 대표, 여성, 자영업자 등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들어간다. 충분히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추동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역할을 못 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금융 전문가가 거의 역할을 못 한다. 위원장이 보건복지부장관이다. 국회에서도 보건복지위 소관이다. 금융 쪽과는 거리가 멀다.


지금 국회에서 국민연금의 의결권 강화 입법이 예고되고 있는데 재계, 그리고 재계를 대변하는 신문에서 반대하고 있다. 정치 논리가 들어오기 쉽다는 것이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전문금융논리의 강화이다. 캐나다의 CPPIB처럼, 네델란드의 APG처럼, 국민연금의 거버넌스를 독립시켜 전문금융기관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재벌 개혁에도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본다.


재벌에 맞설 힘이 없다는 말이 나온다. 노조의 힘이 커지면 좋겠는데, 계속 기다릴 수는 없다. 시민사회의 힘으로 가령 국민연금이 그 역할을 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큰 일을 할 수 있다. 스웨덴에서는 국민연금에서 자신의 연금 5%는 자기가 운용할 수 있게 한다. 우리도 이제 도입을 검토하여 재벌경제를 시민의 경제로 바꾸는 데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깨어 있는 시민, 사회책임(SR)으로 깨어 있는 시민사회는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시민의 힘으로 새로운 정부를 세우고 국회에서 법을 바꾸게 하고, 국민연금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기업의 거버넌스, 가족 경영 같은 것에 불만을 품은 외국 자본과 연대할 수도 있다. 정치 민주화를 이룩한 시민 세력이 이제는 경제 민주화를 이룩하는 세력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 나는 오히려 개혁의 핵 역할을 하는 양심적인 경제학자들의 단합된 힘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구미나 북구나 일본에 있는 대기업 내지 기업 집단과 한국의 재벌은 비슷하지만 다르다. 비슷한 것으로 합리화하면 안 된다. 또 재벌들의 사회공헌 활동이나 나눔 활동은 중요하지만, 재벌의 거버넌스나 비정규직 문제를 은폐하기 위한 활동은 CSR이 아니다. 또 재벌 개혁을 징벌적 재벌 해체론과 구별해야 한다. 오히려 대기업의 새로운 경쟁력 증가를 위해서 거버넌스를 바꾸고 중소기업과 맺은 관계를 바꾸어 새로운 공급 체인을, 혁신 촉진적인 생태계를 건설하자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장하준 그룹의 타협론도 넓게 봐줄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경쟁력에 바탕을 둔 신성장 중요…해법 찾아야"


프레시안 : 이번 논쟁에서도 재벌과 관련해 다양한 방안들이 제시되고 있다. 재벌에 대한 시각도 다르다. 어떻게 보나.


김영호 : 비슷한 것은 진짜가 아니다(似者 非眞也)라는 연암 박지원의 말을 상기하고 싶다. 앞서 말했지만 (재벌) 타협론과 개혁론이 실제 진행 과정에서 그렇게 대립적이고 양자택일적일까? 혁명이 아닌 이상, 정부 이상의 힘을 가졌다고도 하는 재벌과 타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먼저 강열하게 부딪치라지만 그것도 타협의 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함이 아닐까? 지금은 개혁하며 타협하고 타협하며 개혁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레토릭의 차이가 실제로는 크지 않을 수 있다.


(논쟁에서 주로 논의되는 것이) 세계 경제 위기, 복지국가, 재벌 개혁 이 세 가지인데, 한 가지 빠진 게 있다. 경쟁력 증가다. 스웨덴의 키워드는 복지라기보다는 오히려 경쟁력이다. 경쟁력 없는 기업은 사정없이 판다. 경쟁력을 위해서는 기업의 노동자 해고도 인정해준다. 새로운 기술 개발과 경쟁력, 여기에 모든 것의 초점을 맞춘다. 지난번에 볼보를 팔지 않았나. 경쟁력이 없어서다. 스웨덴은 법인세가 아주 낮다. 기업 경쟁력 증진을 위해서다. 또한 덴마크가 내세우는 유연 안정성 모델에서 유연은 노동 유연성이고 신자유주의적 요소다. 모 대통령 후보가 말한 '저녁이 있는 삶'을 한국에서는 여가 개념 혹은 성장주의 반성이라는 문맥에서 이해하고 있는데 북유럽에서는 일과 삶의 균형(WLB)이 경쟁력을 증가시킨다는 문맥이 강하다.



경쟁력에 바탕을 둔 성장이 중요하다. 단 과거와 같은 성장이 아니라 신성장이 필요하다. 구성장을 위해서 버렸던 것을 껴안는 성장이 신성장의 중요 부분이다. 성장을 위해 버렸던 복지를 끌어안는 성장, 종래 희생시켰던 사회 피라미드의 최저변을 끌어안는 BOP 투자 (Bottom of Pyramid, 경제 피라미드에서 맨 밑바닥에 있는 최하위 소득계층으로 1인당 소비는 많지 않지만 전체 규모는 커 막대한 잠재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종래 희생시켰던 노동·환경·중소기업을 끌어안는 성장 등이다. 역사적인 경제 위기 해소, 경제 민주화와 재벌 개혁, 복지 증가, 경쟁력 증가, 이렇게 4가지 축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프레시안 : 장하준 그룹에서는 '성장 동력을 지닌 건 재벌이니 그쪽과 타협하자'라고 한다.


김영호 : 경제 개혁론자도 대부분 재벌을 쪼개자고 하지는 않는다. 재벌을 완전히 쪼개자는 건 극소수다. 대부분은 가족 경영, 총수 중심에서 분리시켜 대기업 경쟁력을 증가시키자는 것이다. 총수 자본주의를 극복하자는 것이지, 대기업 집단을 해체하자는 것이 아니다.


한국 대기업의 경쟁력은 어디서 나오나? 총수 가족은 경쟁력을 오히려 약화시킨다. 우선 기업에 썼어야 할 돈을 빼돌린다. 또 하나는 아들, 딸, 조카라는 이유로 능력을 검증받지도 않고 기업 경영을 맡는 것이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대기업 경쟁력의 원천이 중소기업, 하청기업을 쥐어짜는 것이라는 점이다. 이건 지속 불가능하다.


삼성과 애플이 스마트폰 경쟁을 하는데, (핵심은) 삼성과 애플의 공급 체인 간의 경쟁력 차이 문제라고 본다. 애플의 공급 체인은 전 세계에 걸쳐 있다. 공급 체인에 7을 주고 애플은 3을 먹는다. 그러니까 전 세계 이노베이션이 여기에 집중된다. 삼성(의 시스템)은 이것과 경쟁이 안 된다. 흔히 말하길, 삼성은 (이익이) 3퍼센트 정도 남도록 (하청업체를) 쥐어짠다. 죽지 않을 정도, 튀지 않을 정도로만 준다. 한국 중소기업 중 외국 대기업에 납품하는 회사는 펄펄 날고 국내 재벌에 납품하는 회사는 벌벌 긴다.


우리가 중소기업시대포럼 할 때 9988234라는 말을 만들었는데 기업 수의 99%를 차지하고 고용의 88%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이 이윤 2%(3% 중 세금 등을 제외하면 2%)로서는 R&D를 못하니 3년 내에 죽는다는 뜻이다. 이런 식으로는 이길 수 없다. 총수 가족으로부터 해방시켜주고 이것을 9988588로 바꿔야 한다. 5% 이익을 보장해야 R&D를 해서 팔팔 난다는 뜻이다. 중소기업을 재벌의 동물원(안철수 교수 표현)에서 해방시켜 혁신의 주체를 펄펄 날게 해야 한다. 애플이 세계 이노베이션을 주도하는 것처럼 해야 한다. 삼천리 이노베이션 강산을 만들어야 한국 대기업의 지속가능한 경쟁력이 생긴다. 지금 중소기업이 좋은 기술을 개발해도, '재벌에 갖고 가면 빼앗긴다'고 중국에 가서 팔아먹는다고 한다. 애플의 스마트폰 관련 핵심 기술도 한국의 중소기업이 개발하여 중국에 판 것이 애플사로 흘러간 것이라고 한다.


프레시안 : 한국 경제 생태계가 약탈적이라는 지적이다. 이를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김영호 : 2011년 유럽에서 '한국 재벌은 2008년 위기에서 어떻게 빨리 회복했을까' 궁금해하며 조사단을 파견했다. 조사 결과, 3가지 요인이 있었다. 정부의 친기업 정책 일환으로서 환율 정책, 하청 제도, 비정규직 양산. 도저히 유럽에서는 채용할 수 없는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고 한다. 한국 대기업의 이런 경쟁력은 지속 불가능하고 국민에게 분노를 쌓게 하는 것이며, 중소기업의 혁신 기능을 저해하여 지적 재산권 식민지로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재벌의 트리클 다운(trickle down)이 문제의 핵심이다.


대기업은 전부 개발 독재의 산물이다. 시장이 아니라 비(非)시장이 만들어낸 것이다. 권력이 만들어낸 것이자 국민이 만들어준 것이다. 시장 경제의 일원이 되기 위해 시장 진입세를 내야 하는데, 국민의 희생이 들어간 만큼 재벌은 국민의 바람을 들어줘야 한다, 이 점에서 재벌은 부채가 있다. 정부가 재벌을 개혁하고 국민이 재벌에 요구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 중 하나다.


나는 개발독재자본주의를 '박정이'(박정희ㅡ정주영-이병철) 자본주의라고 부르는데, 유일한 자본주의로 갈 수 없을까? (유한양행을 설립한) 유일한 식의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중요하다. 지금은 재벌 총수가 인사권과 회계권을 다 갖고 있고, 고용사장의 경영권은 빛 좋은 개살구다. 가령 어느 재벌 총수가 유일한 식의 자녀 경영 참가 금지를, 즉 자식들에게 회사를 물려주지 않겠다고 공표한다면 우리 사회에 감동의 물결이 얼마나 출렁이겠으며 그 기업집단의 경쟁력은 또 얼마나 올라가겠는가. 그리고 유일한 식으로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면 그 감동이 어떠할까.





"난 산업 정책의 유효성을 믿는다"


프레시안 : 장하준 그룹은 국가의 역할을 중시하고 산업 정책을 높이 평가한다. 산업자원부 장관을 하기도 했는데, 이 부분을 어떻게 평가하나.


김영호 : 난 산업 정책의 유효성을 믿는다. 스웨덴도 지금 산업 정책을 하고 있다. 창의력은 중소기업으로 표현되고 그것이 다시 대기업으로 커가는 것이다. 이런 창의력을 살려 기업 경쟁력으로 나타나는 측면이 약화됐다. 그걸 강화하는 정책이 참 중요하다. 대학도 창의력 발전소가 됐으면 좋겠다. 기존 기업에 취업하는 것도 좋지만 새로운 창업 기업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났으면 좋겠다. 여기에서 정부의 산업 정책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본다. 나는 대학-벤처기업-중소기업-대기업-해외시장을 관통하는 지식대운하를 만드는 산업정책을 기대하고 있다.


프레시안 : 논쟁의 양 진영이 관료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 '모피아'를 비롯한 관료 집단이 제대로 된 산업 정책을 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어떻게 보나.


김영호 : 관료가 가진 건 규제다. 관료가 규제 혁파를 주장하는 것만큼 거짓말은 없다. '모피아'가 규제를 무기로 한국 경제를 실질적으로 끌어가는 것을 대체할 수 있는 세력은 없다. 그래서 대체를 못하는 것이기도 하고, (대체할 만한 세력이) 있어도 그 자리에 못 들어간다. 그래서 그들의 독주가 계속되는 것이다. 이것은 재벌, 외국 자본과도 연결돼 있다. 3자동맹이다.


이걸 깨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사회와 민주정부다. 새 정부의 새로운 경제 주도 세력이다. 새로운 경제 주도 세력은 관료 세력과 경쟁을 벌인다. 심하게 말하면 전쟁이 벌어진다. 그런데 대부분 (새로운 세력이) 진다.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때 다 그랬다. 왜 지는가? 구체적이지 못했고 현장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 이게 안 되면, 앞으로도 관료 집단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민주화 세력이 경제를 다루는 솜씨가 산업화 세력에 비해 떨어진다는 말이 나온다. 각성해야 할 점이다. 민주화 세력은 추상적으로 총론을 내걸었다가 3자동맹에 밀렸다. 신자유주의 요소는 김영삼 정부 때부터 있었다. 김영삼 대통령이 OECD에 들어가고 자본 시장을 개방했다. 김대중 정부 때 결정적으로 IMF에 의해, 또 노무현 정부 때 더욱더 (신자유주의를) 넓혔다. 민주주의가 시장주의에 밀린 것이다. 이런 결정적인 실수를 세 민주주의 지도자가 범했다는 사실은 뼈아프게 반성해야 한다.


프레시안 : 민주통합당이 '경제 민주화'를 내걸고 있다. 그 역량을 어떻게 보나.


김영호 : 민주통합당의 경제 민주화 공약이 새누리당보다 많기는 하다. 그렇지만 지난 총선 때도 '이명박 대통령 비판'만 하지 말고 새로운 비전을 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졌다는 말이 많다. 중소기업 등에 관한 개별적인 법안이 국회에 많이 발의돼 있는데, 큰 그림을 못 내놓고 있다. 큰 그림이 없다. 큰 그림을 실천할 대통령을 만들고 정부를 구성해야 한다.


(1997년) IMF 사태가 벌어졌을 때 대선 후보이던 김대중 대통령이 재협상론을 들고 나왔다. 난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조선일보> 등으로부터) 공격을 받자, 쑥 들어가버렸다. 김대중 대통령은 당선 후 ('헤지펀드의 제왕'으로 불리는) 소로스를 제일 먼저 만났다. 당시 소로스는 (투기 자본 통제를 주장하던) 마하티르가 이끄는 말레이시아로 가려다 입국 금지됐다.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은 집으로 불러다 밥을 같이 먹고 붓글씨를 써줬다. 그러고는 IMF에 다 맡겼다. 그때 제프리 삭스가 '한국이 국제 금융 자본, 채권자의 책임을 물었다면 200억-300억 달러는 득을 봤을 것'이라고 했다. 김대중 정부는 그걸 포기했다. 그때 내가 'DJ노믹스에 DJ가 없다'는 글을 썼다. 김대중 대통령은 자기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결국 못 그렸다. 그러고 나서 재벌 개혁론을 들고 나왔다. 그러나 또 관철을 못 시켰다.


노무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나는 최초로 재벌 개혁에 성공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그러나 추상적인 이야기만 하다가 자기 그림을 못 그렸다. (그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민주통합당은 자기 그림을 못 그린다. 민주화 세력에게 경제에 대한 명확한 상이 없다.


"민주화 세력, 경제에 대한 명확한 상이 없다"


프레시안 : 노무현 대통령은 FTA를 강하게 추진했다. FTA에서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는 이들도 있다. 어떻게 보나.


김영호 : 난 기본적으로 자유무역에 긍정적이다. 노무현 정부가 한미FTA를 추진할 때 난 NGO 리더들에게 '너무 반발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긍정론자인데도, 한미FTA는 노무현 정부가 참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출발이 매우 잘못됐다. 선진국과 그보다 뒤떨어진 나라가 FTA를 맺을 때, 선진국은 뒤떨어진 나라에 얼리 컨디셔너(early conditioner)라는 혜택을 준다. 그런데 한미FTA에서는 오히려 우리가 줬다. 미국이 요구한 4대 선결조건을 다 들어줬다. 그때 내가 정말로 기가 막혀 울었다. 최근 <한겨레신문>에 이와 비슷한 지적을 한 칼럼이 나와 공감을 했다.


(다시 강조하면) 새 판 짜기의 그림을 그려야 한다. 재벌 개혁 등도 그 일환으로 해야 한다. 스웨덴의 복지는 성장을 가져오는 복지다. 일본형 복지는 성장을 갉아먹지만 스웨덴은 그 반대다. 그걸 해야 한다.


한 가지 더 이야기하면, 지금 (정부에서) 하고 있는 동반성장, 이건 아니라고 본다. 대기업과 1차 협력사의 동반성장에 그치고 있다. 문제는 2차, 3차 협력사다. 한국은 중국이라는 호랑이를 타야 한다. 그러려면 중소기업을 발전시키는 길밖에 없다. 중소기업에 이윤 5퍼센트를 보장해주면, 중국이라는 호랑이를 탈 수 있다. 그래야 한국이 살 수 있다.


프레시안 : 새누리당에서도 '경제 민주화'를 하겠다고 나섰다. 어떻게 보는가.


김영호 : 현재 제스처로 봐선 박근혜 의원이 뭔가 할 것 같긴 하다. 국민 속에 쌓인 분노를 알고 있고, 그 분노를 해소하지 않으면 정권이 오래가지 못할 것임도 알 것이기 때문에 뭔가 하긴 할 것이다. 하지만 새 판 짜기는 아니고 보완 정도로 그칠 것이다.


정말 새로운 걸음이 나와야 하는 때다. 전 세계에서 하루에 유통되는 돈이 무역량의 97배 정도 된다. 상황이 이런데,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 세금을 걷는 것과 달리 왕창 버는 투기 자본으로부터는 세금을 걷지 않는다는 건 난센스다.


(투기 자본 규제를 주장한) 미국의 제임스 토빈 교수가 대구 라운드 때 내게 보낸 메시지가 있다. 그 편지에서 그는 토빈세(외환거래세) 시행을 IMF 가입 조건으로 할 것을 주장했다. IMF와 유엔, 세계은행 같은 국제기구를 통해 토빈세를 시행하자는 주장이었다. IMF는 종래 토빈세를 반대했으나 지금은 찬성 쪽으로 돌아섰다.


독일의 전 재무장관에 따르면 세율 0.05퍼센트의 토빈세를 매기면 1년에 6900억 달러가 생긴다. 10년이면 약 7조 달러다. 이것으로 그린 마셜 플랜을 하자. 그렇게 하면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가 생겨날 것이다. 나는 한국발로 토빈세를 지지하는 세계 지식인 서명운동을 했으면 싶다. <프레시안>이 앞장서주면 좋겠다.


/김덕련 기자,성현석 기자



[기사원문 :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_facebook.asp?article_num=6012062615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