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리스크에 휘말린 오리온…오너 vs 전문경영인 이전투구
기사입력 2012.06.18 09:12:10 | 최종수정 2012.06.18 10:30:25
“죽음의 혈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끝까지 갈 겁니다. 오너 말을 무시하고 사장 자리를 유지하자는 게 아닙니다. 모든 일을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진행해 달라는 것입니다.” (박대호 스포츠토토 대표)
“시간이 해결해줄 것입니다. 연봉을 6억원이나 받는 CEO가 기득권을 유지하겠다고 그룹을 시끄럽게 만드는데…대주주가 나가라면 나가는 거지 못 나간다는 게 무슨 정신 나간 소리입니까.” (오리온그룹 고위 관계자)
오리온그룹이 시끄럽다. 오리온그룹이 67%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스포츠토토가 주인공이다.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이 박대호 스포츠토토 대표를 해임하겠다고 나섰는데 정작 박 대표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나선 때문이다. ‘오너가 기침만 한번 해도 분위기가 싸~해지는’ 기존 재벌그룹 분위기에 비춰 볼 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셈이다. 최근 임수경 민주통합당 의원의 ‘탈북자 발언’으로 유명해진 탈북 대학생 백요셉 씨의 농담을 빌리자면 ‘바로 총살감’인 수준이다.
덕분에 오리온그룹은 지난해 5월 담철곤 회장이 회사 돈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될 때만큼이나 시끄럽다. 외부적으로는 담 회장이 구속될 때보다 이미지가 더 안 좋아졌다. “뭔가 약점이 있는 오너 회장이 꼬리를 자르려고 계열사 전문경영인을 내쫓으려다 오히려 부메랑을 맞았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결과적으로 담철곤 회장의 권위가 송두리째 무너졌다. 재계 한 관계자는 “계열사 대표는 오너가 못마땅한 기색만 내보여도 ‘일신상의 이유’란 이유를 내세우며 먼저 사임하는 게 보통이다. 오너가 직접 나가라고 했는데도 말을 듣지 않는다면 ‘오너의 권위’라는 건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 권위를 무너뜨린 사람은 오너 자신이다”라고 꼬집었다.
어쩌다 오리온그룹이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것일까. 또 어쩌다 담철곤 회장은 오너의 권위라곤 찾아볼 수 없는 수준으로까지 떨어진 것일까.
박대호 대표 “끝까지 가보겠다”
시곗바늘은 지난 3월 30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3월 30일에 열린 오리온 주주총회에서 담철곤 회장은 3년 임기의 대표이사 연임에 성공하면서 경영에 복귀했다. 같은 날 스포츠토토 이사회도 열렸다. 오리온그룹은 스포츠토토 이사회에 ‘박대호 단독대표 체제를 각자대표 체제로 전환하자’는 내용의 안건을 올렸다. ‘스포츠토토의 체질을 바꿔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명목상 취지가 덧붙여졌다. 오리온그룹이 박대호 대표와 함께 각자대표로 추천한 인물은 담철곤 회장 측근으로 알려진 오리온그룹 재무담당 출신인 정선영 씨다. 이 안건은 그러나 사외이사 4명과 사내이사 1명 등 총 5명의 이사가 ‘회사 상황이 중요한 시점인데 각자대표로 변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반대의사를 내 무산됐다(전체이사 9명).
대신 박대호 대표는 정선영 씨를 스포츠토토 부사장과 사내 등기이사로 임명했다.
사태가 급속도로 험악해진 때는 지난 5월 25일이다.
5월 25일 스포츠토토는 법무법인 바른으로부터 ‘임시주주총회 소집청구서’란 제목의 팩스를 받는다. ‘대표이사 박대호 및 사내이사 윤덕기의 해임과 새로운 이사들의 선임을 통해 귀사의 경영진을 교체하고자 한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오리온그룹이 새로운 이사 후보자로 내세운 인물은 총 6명. 최필규 오리온 영업부사장, 이규홍 오리온 생산부사장, 김준선 OSI 대표, 유정훈 미디어플렉스 대표, 하상일 오리온 법률·노무담당 임원 등이 사내이사 후보로 추천됐다. 사외이사 추천자는 박철 법무법인 바른 구성원 변호사다. 같은 날 담철곤 회장은 강원기 오리온 대표 등 4명을 스포츠토토에 보내 박대호 대표에게 문서 한 장을 전달했다. ‘2012년 5월 25일부로 대표이사 박대호의 직위해제 조치를 추진한다’는 내용이다. 박대호 대표의 직위해제를 추진하는 이유로는 ‘두 차례에 걸친 인사권 수용 거부’를 들었다.
일반적인 계열사 CEO였다면 이 정도쯤에서 백기를 들었을 터다. 그러나 경향신문 기자 출신 박 대표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아무리 오너라 해도 법에 근거하지 않고 대표이사를 맘대로 해임할 수 없다”며 정면승부를 다짐했다.
“인사에 불복했다는데 누가 인사에 불복했습니까. 각자대표 건은 제가 ‘안 된다’고 한 게 아니라 주총에서 사외이사들이 반대한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정선영 씨를 사내 등기이사로도 올리고 부사장으로도 임명했습니다. 이게 어떻게 인사 불복이 됩니까.”
이 와중에 오리온그룹과 박대호 대표는 서로가 적법하다고 주장한다. “절 ‘자르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자르더라도 제대로 자르라’는 겁니다. 오리온은 임시주주총회를 열기 위한 이사회를 소집하라고 요구했고 저는 이 요구를 받아들여 6월 7일 이사회를 소집했습니다. 이사회에서 대표이사 해임 안건을 처리하기 위해 임시주총을 열자고 하면 열면 되고, 임시주총에서 대표이사 해임 건이 가결되면 제가 해임되면 됩니다. 이게 바른 것 아닙니까.” 박대호 대표 얘기다.
이에 대해 오리온그룹 측은 이렇게 반박한다.
“적법하게 해임 절차를 밟겠다는 것인데 ‘맘대로 해임시켰다’고 난리입니다. 사실 계열사 대표 인사야 그룹 인사 때 새로운 인사를 내세우면 그만인 수준 아닙니까. 그렇게 안 하고 절차를 밟아 하고 있는데 뭐가 적법하지 않다는 것입니까.”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이 이처럼 세상을 시끄럽게 하면서까지 박대호 스포츠토토 대표를 해임하려고 하는 것은 왜일까. 세간에서는 ‘담철곤 회장이 스포츠토토 관련 새롭게 비자금 의혹이 불거질까봐 꼬리 자르기를 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지난 4월 19일 검찰은 스포츠토토를 압수수색했다. 4월 30일에는 스포츠토토 자금 담당자를 구속했다. 검찰은 조경민 전 오리온그룹 전략담당 사장이 2007년부터 스포츠토토가 골프장 사업에 진출한다는 명목으로 140억원을 빼돌리고, 자신의 형이 운영하는 회사에 계약을 몰아줘 70억원을 챙기는 등 회사 돈을 빼돌린 혐의를 포착하고 조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스포츠토토 횡령 의혹과 관련 6월 8일 조경민 전 사장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조경민 전 사장은 오리온그룹 오너 일가의 금고지기 역할을 해온 인물이다. 1980년대 초반 동양제과(오리온 전신)에 입사한 조 전 사장은 담철곤 회장과 이화경 사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전문경영인으로 승승장구했다. ‘조경민이 오리온그룹의 숨은 실력자’란 사실은 전 재계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조경민 전 사장은 지난해 5월 담철곤 회장이 총 300억원대 회사 자금을 빼돌린 혐의로 구속될 때 함께 구속됐다. 두 사람에게 드리워진 혐의도 거의 비슷했다. 지난해 10월 1심에서 담철곤 회장은 징역 3년, 조경민 전 사장은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올 1월 항소심에선 담철곤 회장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조경민 전 사장은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현재 검찰이 항소해 3심이 진행 중이다.
오리온그룹 이미지 땅에 떨어져
지난 5월 25일 법무법인 바른이 오리온의 대리인 자격으로 스포츠토토에 보낸 ‘임시주총 소집청구서’.
그런데 재판 과정에서 담철곤 회장과 조경민 전 사장 관계가 완전히 틀어졌다는 후문이다. 조사 결과 조경민 전 사장이 회장 지시와 무관하게 혼자 빼돌린 금액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이 밝혀진 데다 재판 중에 회장인 자신을 보호해주지 않은 조 전 사장에게 담철곤 회장이 배신감을 느꼈다는 후문이다. 조 전 사장은 조 전 사장대로 자신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려는 담철곤 회장에게 서운함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조 전 사장이 “앉아서 당하진 않겠다”며 벼르고 있다는 말까지 돌았다.
경위야 어쨌든 담철곤 회장이 박대호 대표를 해임하려는 것은 ‘조경민 전 사장과의 인연 끊기’와 연관이 깊다는 게 재계 관계자들 인식이다. 재계에서 내세우는 시나리오는 두 가지다. 박대호 대표라는 꼬리를 잘라냄으로써 조경민 전 사장과 얽힌 비자금 사태 불똥이 담철곤 회장에게까지 튀는 사태를 막으려 한다는 시나리오가 우선 대두된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담철곤 회장이 이번 사태의 진원지인 스포츠토토에 자신의 사람을 보내 자신에게 불리할지 모를 증거를 세탁하려 한다는 내용이다. 두 가지 시나리오 중 어느 시나리오가 맞든, 혹은 두 가지 시나리오 모두 맞지 않다 하더라도 담철곤 회장에게 드리워진 ‘부도덕한 오너’의 이미지는 쉽사리 씻기지 않을 듯하다는 데 수많은 재계 관계자가 의견을 같이한다.
한편 6월 7일에 열린 스포츠토토 이사회는 박대호 대표 해임안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6월 21일 이사회를 재소집하기로 했다.
이번 사태에 대해 재계는 또 하나의 관전법을 제시한다. 이사회를 장악하지 못한 최대주주 오너와 지분은 없지만 이사회를 장악한 전문경영인 간 역학관계에 대한 시선이다. 더불어 오너 전횡에 대한 견제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대두된다. 한 재계 관계자는 “사실 전문경영인들은 아무 잘못 없이 하루아침에 해임 통보를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연임이 예정돼 있다가도 갑자기 오너가 한마디만 하면 바로 뒤집힌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이 같은 관행이 자정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소연 기자 sky6592@mk.co.kr ]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661호(12.06.13~6.19 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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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항목 중 G(Corporate Governance)와 관련이 있겠네요.
기업의 투명성, 그리고 기업 지배구조 등과 관련된 기사입니다.
기업에 투자하는 투자자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한번 생각해 봅시다.
위와 같은 오너 및 경영진의 음행으로 인해 가장 손해를 보는 것은 누구일까요?
아마도 (투자자이면서 내부자이거나 의사결정자가 아닌) '소액의 투자자'일 것 같습니다.
그나마 이런 구린 일이 행해지고 있음에도 기업이 성장해서 투자차익을 보았다면 다행이긴 하지만요..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의 대기업에는 이런 일들이 참 빈번합니다.
기업의 내외부에 공정하지 못한 관행들이 고착화되어 있어 투자자들은 이를 어느정도 감안해서 투자합니다. (혹은 아예 눈을 감아버립니다)
그런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음에도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나 혹은 다른 대안이 별로 없기 때문에 기존의 투자 행태를 지속합니다.
하지만 다르게 한 번 생각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들(재벌, 오너, 경영진)은 더 크게 이득을 봤지만 나 역시 이득을 보았으니 그만 아니냐' 라는 생각에 머물 것이 아니라
'내가 그들을 방조한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닌가' 혹은
'투자자, 소비자로서 장기적으로 더 큰 이익을 놓친 것은 아닌가'
하는 식으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기업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그럼 기업을 안팎에서 먹여살리는 것은 누구입니까?
그렇다면 기업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입니까?
권력의 등에 업힐 생각 대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행동으로 주변에 해를 끼칠 수 있음을 주지하고
주변을 돌아보아야 겠습니다.
※)
SRI LAB에서는 환경과 사회에 이로운 기업에 투자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또한 다양성을 지속가능성의 전제조건으로 생각합니다.
이에 존경할만한 중소기업들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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