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했던 코이케 류노스케 님의 에세이.
표지에 쓰인 글처럼
'생각하지 않고 오감으로 느끼면 어지러운 마음이 서서히 사라진다'
라는 내용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행복, 명상, 불교, 자기계발 등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유익한 책이다.
그런데 책을 정리하면서 보니 재미난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싸니까 샀다는 것은 싸지 않으면 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무언가를 산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돈이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악한 제품을 대량으로 만들어 많이 팔아치우려는 사람보다도, 정말 좋은 제품을 정중하게 마음을 담아 만드는 사람에게 돈이 가도록 해서, 결국 그런 사람들이 장사가 잘 되도록 해야 한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물건을 사는 것에는 투자라는 측면도 있다. 정말 좋은 물건을 파는 사람들에게 돈이 가게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쇼핑을 하면 돈을 제대로 쓰고 있다는 만족감이 들 것이다....
싸니까, 갖고 싶으니까 사는 것보다 '필요하니까 비싸더라도 산다', '정말 필요한 것을 적게 산다'라는 자세를 관철하면 욕망에 더럽혀지지 않고 양심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다."
바른 '소비(혹은 금전적 지출)' 행위에 대한 스님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구절로
돈의 올바른 지출이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일종의 '투자'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이러한 삶의 태도가 바로 사회책임투자(SRI)가 지향하는 바이기도 하다.
금전적 이익의 극대화가 유일한 동인이 되기보다는,
사회와 환경에 유익한 모범적인 기업들과 함께 더 나은 사회에 일조하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투자 행태가 바로
SRI (Socially Responsible Investing, 사회책임투자) 인 것이다.
(물론 이밖에도 좋은 내용 많습니다..^^)
★★★★☆
<머리말>
* 우리가 실패하는 원인은 대부분 지나치게 많이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부정적인 생각이 문제다.
* 마음속에서 제멋대로 굴며 우리를 지배하는 생각을 멈출 수만 있다면, 스스로의 마음을 조종할 수 있게 된다.
* 이 책에서 제안하는 생각 버리기 훈련법은 오감을 갈고 닦아 실제적인 감각을 강화시키는 연습이다. 평상시에 눈, 귀, 코, 혀, 몸의 오감에 집중하여 생활하는 훈련을 하다 보면, 생각을 자유롭게 조정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다.
<<<제1장 '생각'이라는 병 - 인간은 생각하기 때문에 '무지'하게 된다>>>
<뇌 속에 틀어박히면 집중력이 떨어진다>
* 우리가 일상 속에서 생각하고 행동할 때 짧은 순간순간 이런 잡음들이 무수히 끼어들어 집중을 방해한다. 이때, 다른 무엇보다도 집중을 분산시키는 행위는 자기도 모르게 이런저런 것을 '생각하는' 일이다.
* 침착할 때에는 이것저것 많이 생각하지 않지만, 마음이 혼란스럽고 어지러울수록 생각하는 양과 시간이 늘어난다.
<인간의 세 가지 기본 번뇌 - 분노, 탐욕, 어리석음>
*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싫증은 불교에서 말하는 '번뇌'와 깊은 관련이 있다.
*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듣고 싶지 않다'라고 반발하는 마음의 충동 에너지는 분노이다....단순히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것도, 누군가를 질투하는 것도, 과거를 후회하는 것도, 쓸쓸한 기분이 드는 것도, 긴장하는 것도 원인은 모두 하나이다. 바로 분노의 번뇌 에너지가 연료가 되어 타오르는 충동이다. 만일 조금이라도 반발의 힘이 작용한다면, 그것은 분노라 할 수 있다. 어떤 종료이든 일단 부정적인 감정에 휩쓸리게 되면, 분노의 어두운 번뇌 에너지가 증폭되어 스트레스의 뿌리가 된다. 그리고 부정적인 사고를 하기 쉬운 인격이 만들어진다.
* 우리 마음은 새로운 자극을 얻기 위해 부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을 몰고 가도록 프로그램화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사고병, 즉 '생각병'이다.
<마음 관리 - 바르게 생각하기 훈련>
* 불교에는 '팔정도'가 있다. 팔정도는 '사람이 바르게 살기 위해 실천해야 하는 여덟 가지 길'을 가리키는 것으로, 크게 다음과 같이 세 단계로 나뉜다.
제1단계 - 스스로 규칙을 정하고, 흔들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는다.
정사유 : 바르게 생각하기
정어 : 바르게 말하기
정업 : 바르게 행동하기
정명 : 바르게 생명을 유지하기
제2단계 - 집중력을 기른다.
정정진 : 마음을 정화시키기
정정 : 집중하기
제3단계 - 깨닫는다
정념 : 마음의 센서 닦기
정견 : 깨닫기
* 팔정도에서 가장 첫 단계는 '정사유', 즉 '바르게 생각하기'이다.
* 쓸데없는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 가장 적절하고 필요한 일만을 생각하는 것, 쓸데없는 사고와 헛된 사고를 버리는 것, 더 나아가 번뇌를 극복하는 것은 불교의 시작이자 목표이기도 하다.
<생각 센서로 항상 마음의 범죄를 점검한다>
* 자신의 마음 상태를 알기 위해 지금 자신의 마음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늘 지켜보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감각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면, 마음이 충족된다>
* - '보인다'라는 수동적인 상태와 적극적으로 '본다'라는 능동적인 상태
- '들린다'라는 수동적인 상태와 적극적으로 '듣는다'라는 능동적인 상태
- '냄새가 난다'라는 수동적인 상태와 적극적으로 '냄새를 맡는다'라는 능동적인 상태
- '맛이 난다'라는 수동적인 상태와 적극적으로 '맛을 본다'라는 능동적인 상태
- '느끼고 있다'라는 수동적인 상태와 적극적으로 '느낀다'라는 능동적인 상태
* 자신의 감각에 대해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연습을 반복하다 보면, 생각의 잡음에 방해받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의 정보를 확실히 인지해 충족감이 느껴진다.
* 생활 전반을 새로운 눈으로 보며 의식의 센서를 단련시키면, 오감에 입력되는 데이터를 제대로 깨달을 수 있기 때문에, 짜증이나 불안도 사라진다. 그러면 차츰 성격도 개선되어 특별히 강한 자극이 없어도 지금 여기에 있는 것에서 충만한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일에도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제2장 몸과 마음을 조종하는 법 - 짜증과 불안을 없애는 연습>>>
<<1. 말하기>>
<말하는 법의 기초는 자기 목소리 관찰에서부터>
* 이야기할 때 항상 자기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이다.
* 사람은 무언가를 과잉 공급 받으면 그것에 대한 욕망이 사라진다. 반면에 희소가치가 있으면 그것에 대한 욕망도 커지기 때문에, 시간을 보면서 약간 부족할 정도로 공급하는 것도 결과적으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효과가 있다.
* 부처도 경전에서 말했듯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높지도 낮지도 않게 지혜롭게 이야기하는 방법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만(慢)'이라는 번뇌 때문에 쓸데없는 대답을 한다>
* 만이란, 자신이 좋게 평가받고 싶다고 걱정하며 조바심 내는, 프라이드에 집착하는 탐욕이란 번뇌 중 하나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는 욕구도 있지만 그보다 더 강한 것은 자신의 주가를 깎아내리고 싶지 않다는 자기 이미지에 대한 집착이다.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는 연습>
* 불교에서 권하는 대처 방법은, 억압과 발산이라는 길이 아닌 제3의 길, 즉 '응시'이다. 이때 우리가 응시하는 것은 자신의 감정이다.
* 만일 화가 치민다고 생각되면, 이 "화가 치민다"를 따옴표로 묶어버린다. 그 다음 '나는 "화가 치민다"고 생각한다, 나는 "화가 치민다"고 생각한다...'라고 되풀이 하며 마음속으로 외우다시피 한다. 그러다 보면 지금 화가 치민다는 것은 단순히 생각일 뿐이고, 자신의 마음을 만들어내는 것일 뿐이라고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사과할 때에는 구체적인 개선책을 말하라>
<자기를 위한 변명은 상대의 고통을 증가시킨다>
<성실한 변명은 상대의 고통을 위로한다>
* 변명이란 마구 기분 내키는 대로 난사하는 기관총이 아니다. 그때그때 상대의 성격과 감정을 살펴보면서 주의 깊게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뇌가 착각하는 단기적인 이해와 장기적인 이해>
<욕을 하면 마음이 더러워진다>
* 마음을 통제하는 것은 불교의 출발점이자 마지막 목표이다. 이것은 마음속에서 순간적으로 타오르는 분노, 탐욕, 어리석음이라는 번뇌에 지지 않고, 오히려 그것들을 다스리는 단계다.
* 번뇌 에너지를 억제하기 위해 10가지 계율...십선계...
- 불살생 : 살아 있는 것을 죽여서는 안 된다.
- 불투도 :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 불사음 : 남녀의 도를 문란케 해서는 안 된다.
- 불망어 :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 불기어 : 현란한 말을 해서는 안 된다.
- 불악구 : 험담을 해서는 안 된다.
- 불앙설 : 이간질을 해서는 안 된다.
- 불탐욕 : 마음속에 욕망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 부진애 : 마음속에 분노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 불사견 : 무상, 고, 무아의 법칙을 안다
<거짓말을 자꾸 하면 어리석어진다>
* 쓸데없는 이야기란 무엇일까? 또 쓸모있는 이야기란 무엇일까? 불교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상대방에게 의미가 없는 것은 모두 쓸대없다고 보면 된다.
<'감사 병'은 마음을 비뚤어지게 한다>
* 불교에서는 행복하게 살기 위해 키워야 할 4가지 감정으로 '자비희사(慈悲喜捨)'를 강조한다.
자는 사람을 포함해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 평화롭게 지내기를 원하는 마음이고, 비는 가엽게 여겨서 괴로움과 고통을 없애주려는 마음이며, 희는 다른 사람이 기뻐할 때 함께 기뻐해주는 마음이다. 마지막으로 사는 분노와 어리석음을 버리고 평상심을 유지하는 마음을 말한다.
* 흐흡....가장 중요한 것은 호흡하는 방법이 아니다. 나는 좌선이나 명상을 가르칠 때에도 호흡법을 다루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방법이 아니라, 한 곳에 의식을 집중하는 것이다.
* 자신이 어떻게 호흡을 하고 있는지 의식을 집중해보자. 화가 나거나 흥분하거나 무언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때에는 자기도 모르게 호흡이 얕아져 있을 것이다. 보통 마음이 편할 때에는 호흡이 길고 깊어지고, 불안하거나 초조할 때에는 짧고 거칠어진다.
* 사람은 자신의 참 모습을 알게 되면 변한다. 말투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말투를 바꾼다. 마음이 비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면, 마음가짐을 발 한다. 호흡이 지나치게 얕아졌다는 것을 알게 되면 심호흡을 한다. 심호흡을 하며 편안한 상태가 되면, 얕은 호흡의 원인이었던 싫은 감정과 번뇌가 흘러가버리고, 자기자랑을 하고 싶다거나 따지고 싶은 감정이 흐려진다.
<<2. 듣기>>
<소리에 세뇌되지 않도록 깨어있어야 한다>
* 아이 앞에서 부부싸움을 하는 것과 큰 소리를 내는 것은 삼가야 할 일이다.
<소리 하나하나에 집중해본다>
* 어떤 정보라도 자세히 관찰하면 항상 변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은 계속 맹렬한 속도로 변하며, 영구불변하는 것은 없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제행무상이라 한다.
<세계에 귀를 기울일 수 있으면, 세계가 변한다>
<상대의 고통을 듣는 것이 커뮤니케이션의 기본이다>
* 이야기를 들을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감정 상태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상대의 목소리와 말하는 속도, 호흡의 변화라는 정보에 주목해야 한다.
<비판 받을 때에는 상대방의 고통을 헤아리는 여유를 갖는다>
<소리에 즉시 반응하지 않는다>
* 중요한 것은 '이 사람이 다음엔 무슨 이야기를 할까?' 하고 그의 이야기에 의식을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자신의 감정에 의식을 집중해야 한다는 점이다.
* 붓다는 '냄새가 날 때에는 냄새 그 자체로 두라'고 했다.
* 내가 채식주의자로 살면서 느끼게 된 것은 몸이나 입에서 나는 냄새, 심지어는 배변 시에 나는 냄새까지도 점점 흐려진다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독자들에게 채식을 권하고 싶다.
<<3. 보기>>
<자극이 강한 영상은 번뇌를 키우기 쉽다>
<'나는 괴로운데, 상대는 괴롭지 않다'는 오해>
*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때에는 그 사람을 쳐다보는 게 중요하다. 예의상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상대의 표정을 통해 고통과 번뇌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관찰 결과를 자아에게 일일이 피드백하지 않는다>
* 상대를 관찰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상대가 지루한 표정을 짓고 있으면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나부터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것도 항상 자기에 대한 평가에만 신경 쓰는 만이라는 번뇌이다.
<반쯤 감은 부처의 눈을 흉내내 집중한다>
* 대인 울렁증이 있는 사람들은 왜 다른 사람들 앞에서 발표만 하면 긴장하는 것일까? 그것은 '내가 실패해서 다른 사람들이 날 보고 발표도 못하는 바보 멍청이라고 하면 어쩌지?' '부정적인 평가를 받으면 어쩌지?' 하고 만의 번뇌에 속하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지나치게 많은 생각을 한 나머지 긴장하게 되는 것이다.
* 대인 울렁증이 있는 사람은 한 사람이든 여러 사람이든 상대를 잘 관찰하며 거리감을 두면,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자신의 표정을 항상 자각한다>
* 자신과 상대의 표정을 잘 관찰하면,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여유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온화한 미소를 짓게 된다.
* 다른 사람을 무시하며 비웃는 것은 그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고, 자신의 실패를 스스로 비웃는 것은 자기를 공격하는 것이다.
* 스스로의 표정을 확인하면서 긴장을 없앤 부드러운 미소를 떠올려 보자.
<<4. 쓰기와 읽기>>
* 인터넷과 전자 메일의 출현으로 지난 20년 동안 커뮤니케이션 방법이 극적으로 변했다. 다른 사람에게 받아들여지고 싶은 욕구가 거대한 시장을 만들어 그곳에서 거액의 돈이 움직이고 있다.
<'받아들여지고 싶다'는 욕구가 고통을 부른다>
* 불교에서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을 '무참(無懺)'이라고 한다. 이때 참은 '부끄러움'이란 의미이다. 따라서 무참이란 우리 마음이 부끄러움을 모르게 되어 나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것을 말한다.
<번뇌는 구하면 구할수록 증가한다>
* 글을 완성해서 올리는 데 좀 더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보 가치가 있으면서 다른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질 높은 글을 쓰도록 주의해야 한다. 또 쓰고 싶은 글이 10편 정도 있다면 취사선택해서 3~4편 정도로 줄이는 것이 좋다. 다른 사람에게 유용하지 않은 것은 버리고, 정말 필요하고 좋은 것만 남기기 위해서이다. 바로 인터넷에 올리고 싶더라도초고를 쓰는 과정을 거치면, 내면의 여과 과정을 통과한 좋은 알갱이들만 남게 된다.
* 블로그에 글을 올릴 때 조심해야 되는 것이 또 하나 있다. 현재 자신을 화나게 하는 일에 대해 이게 싫다, 저게 싫다고 비판하는 글을 쓰는 일이다....이왕이면 좋은 영화나 상점에 대한 글을 올려 독자들이 그것을 읽고 '좋은 정보구나'라고 생각하도록 해야 한다. 늘 자신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들에 대한 글을 올리고, 부정적인 글은 올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 자신의 블로그나 미니 홈페이지에 대한 댓글이나 반응이 있어도, 그것에 일희일비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방문자 수가 증가하거나 칭찬하는 메일이 와도 그때마다 들뜨지도 말아야 한다. 만일 들뜨게 되면, 인정받고 싶다는 괴로움이 사라진 만큼 쾌락이라는 정보 처리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침착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반대로 방문자 수가 줄거나 비난하는 메일이 와도 낙담하며 풀이 죽는 일이 없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방문자 수에 대해 신경을 쓰지 말고, 확인하지 않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댓글이나 트랙백 난을 아예 없애는 방법도 있다.
* 블로그 독자들로부터 질문이 들어오질 않아 기분이 상한다면, 질문 코너를 열어두지 않는 것도 좋다. 그런 코너야말로 '다른 사람에게 감사를 받아 자신의 비참함을 감추고 싶다'는 만의 욕망을 채우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즉, 상대를 먹이로 삼아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코너라는 뜻이다.
*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다든가 누군가를 공격하고 싶다는 번뇌는 구하면 구할수록 커지고, 마음을 비뚤어지게 한다.
<익명 게시판은 잔인한 마음을 키운다>
* SNS 기능을 가진 블로그나 미니홈페이지를 움직이는 욕구는 현실속 자신의 정체성과 개성을 기초로 '모두에게 받아들여지고 싶다'는 만과 관련 있다. 그에 비해 익명 게시판에서 보여주려는 정체성은 현실 사회에서 보여주는 자신과 거리가 멀다. 가명을 쓰기도 하고, 엉뚱한 캐릭터로 가장하기도 한다..익명 게시판은 '여기에 원래 내 모습은 없다'라고 생각되는 곳에서 오히려 자신의 본성을 속속들이 드러낸다는 역설적인 진리를 보여준다.
* 쾌락이란,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다. 뇌가 고통이 줄어드는 것을 그만큼 즐거움이 늘어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일 뿐이다. 이것이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일체개고'라는 진리이다. 이 진리에 따르면, 한 번 쾌락을 맛본 뒤에는 '좀 더 좀 더'하고 보다 큰 즐거움을 찾으며, 그 재료가 되는 괴로움을 더욱 구하게 된다.
* 스마트 폰이 보급되면서 블로그에 새로 올린 글을 몇 명이나 읽었는지, 어떤 칭찬의 댓글이 달렸느지를 언제 어디서나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자아는 짜릿짜릿한 전기 쇼크를 받는 듯한 자극을 느끼게 된다. 만일 블로그에 새로운 방문자가 전혀 없거나 댓글 수가 줄었다면, '내 주가가 떨어졌군' 하고 부정적인 자극을 받게 된다. 그리고 어느 쪽이 되었든 자아의 괴로움을 비대하게 키우게 되는 것만은 분명하다.
* 이처럼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욕망을 추구하는 일은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고, 자아의 괴로움을 지나치게 키운다. 그러므로 이런 사실을 늘 염두에 두고, 방문자 수와 댓글 수를 확인하는 버릇을 고치도록 노력하길 바란다.
<메일로 서로의 마음을 자극하지 않는다>
* 이메일을 쓸 때에는 보내기 전에 반드시 읽어보고 고치도록 한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의 핵심은 무엇이며, 그것이 효과적으로 전달되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쓰기는 말하기와 달라, 시간을 들여 고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일단 상대에게 전달한 글은 더 이상 고칠 수 없고, 오랫동안 남아 그대로 몇 번이고 읽힌다. 이 과정에서는 좋은 점이든 나쁜 점이든 확대되어 보인다.
* 이메일을 쓸 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게 왠지 세련되지 못하며 무언가 완충장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날씨나 주변 상황에 대해 쓰는 것이 좋다. '비가 계속 와서 울적하군요.' 라든가 '추워서 싫어요.' 등 자신의 가치관이나 평가를 넣지 말고 사실만을 쓰도록 한다. '비가 와서 조금 습도가 높아진 방에서 펴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곳 날씨는 어떤지요?'라든가, '지금 시계 바늘이 정각 12시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라든가, '보름달이 뜬 밤에 이렇게 메일을 드립니다.' 라든가 하는 식으로 마치 옛 소설에 나오는 편지글처럼 사실을 그대로 기록한다.
* 아무리 줄이려 해도 잘 안 된다면 이미 중독된 것이므로, 자각을 하고 그 상태에서 벗어나려 애써야 한다.
<글을 쓰며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 이메일 말고도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글을 써보길 권하고 싶다. 특히 나 자신만 읽기 위한 일기 (원래 일기란 그런 것이기는 하지만)를 쓰는 게 좋다.
*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인터넷에 올리는 일기는 자기 자신을 바로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진정한 자아를 왜곡시킨다.
* 자신의 감정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되면 차츰 통제하기가 쉬워진다.
* 사람은 일이 자기 계획대로 풀려나가는가, 그렇지 못한가에 따라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한다. 그래서 웬만하면 애초에 계획했던 대로 일을 추진해나가는 것이 좋다.
* 우리가 계획대로 일을 밀고 나가지 못하는 주된 이유는 무엇일까? 대부분은 쓸데 없는 욕심 때문이다.
<<5. 먹기>>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할수록, 뇌는 하고 싶어진다>
* 배불리 먹은 뒤에는 혈액이 위 쪽으로 집중하고 포만감도 크기 때문에 깊은 사고를 하기 힘들어진다.
* 이상하게도 우리 뇌는 무언가를 하면 안 된다고 자꾸 생각할수록, 그 일에 더 집착하고 더 큰 흥미를 느낀다. 그리고 이런 감정은 우리 마음에 격렬하게 스며든다.
<만족 알기 훈련으로 자신의 적정량을 안다>
<생각하지 않는 식사법 _ 전편 - 하나하나의 동작을 예민하게 느낀다>
<생각하지 않는 색사법 _ 후편 - 혀의 움직임에 집중한다>
* 야채는 유기농 야채나 화학 비료를 사용하지 않은 것이 몸에도 좋을 뿐만 아니라, 양념을 조금만 해도 식재료의 맛이 살아난다. 농약을 사용해 대량생산한 값싼 야채를 사면, 벌레를 살생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일에 가담하는 게 돼버린다.
<<6. 버리기>>
* 물건뿐만 아니라 무엇에든 집착하지 말자.
< 잃어버리는 게 두렵다는 생각이 부담을 증가시킨다>
*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저항감과 공포감이 증가하면 마음도 어지러워진다....
<무언가를 버릴 수 없다는 생각이 '무명(無明))'을 키운다>
<집착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버리기 훈련>
<자아를 지나치게 자극하는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 불교에서 말하는 '보시'도 결국은 버리는 행위이다. 즉, 자신이 집착하고 있는 것을 가장 뜻있는 일을 위해 버리는 것이다.
* 물론 서구의 대부호들 중에는 교회에 거액을 기부하거나, 자선사업을 하거나, 공공사업을 벌이거나, 대학에 장학금을 내놓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자선 활동을 하는 한편,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는 일도 벌이기 때문에 위선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 싸니까 샀다는 것은 싸지 않으면 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 돈을 쓸 때에도 나름대로 좋은 방법이 있다. 몸에 정말 좋은 것, 살아가는 데 기초가 되는 것에는 제대로 돈을 쓰고, 그러고 나서 남는 것은 오락이나 취미에 쓴다.
* 무언가를 산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돈이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악한 제품을 대량으로 만들어 많이 팔아치우려는 사람보다도, 정말 좋은 제품을 정중하게 마음을 담아 만드는 사람에게 돈이 가도록 해서, 결국 그런 사람들이 장사가 잘 되도록 해야 한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물건을 사는 것에는 투자라는 측면도 있다. 정말 좋은 물건을 파는 사람들에게 돈이 가게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쇼핑을 하면 돈을 제대로 쓰고 있다는 만족감이 들 것이다.
* 싸니까, 갖고 싶으니까 사는 것보다 '필요하니까 비싸더라도 산다', '정말 필요한 것을 적게 산다'라는 자세를 관철하면 욕망에 더럽혀지지 않고 양심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다.
* 내가 명상을 시작하고 얻은 큰 성과는 사람들이 한 줄로 서지 않았다거나 새치기를 한다고 화를 내지 않게 된 것이다.
* 조급해하거나 짜증을 낸다고 해서 더 나아질 것은 없다.
<<7. 접촉하기>>
<집중이 잘 안 되면 접촉하고 있는 감각에 주의를 기울인다>
<'가려우니까 긁는다'를 멈춘다>
<<8. 기르기>>
<자신을 위한 충고를 공격하지 않는다>
* 사실 곤란에 처한 사람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은 조용히 있어 주는 것이다. 가만히 침묵을 지키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좋다....상대방이 나와 함께 있는 것을 편안하게 생각하고 차분히 긴장을 풀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난 후에는 상대방을 부정하거나 일부러 긍정하지 않는다.
* 상대의 이야기가 단순한 푸념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상대가 스스로 생각을 정리해 설명할 수 있도록 여러 방면에서 질문을 해 보도록 권한다. 상대가 자기 인지를 보다 객관화하기 쉽도록 해 주기 위한 것이다....대화를 마치면서 얻은 결론을 자신이 끌어낸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그를 조금이라도 부정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고 싶은 욕심에 휘둘리지 않는다>
* 우리는 내 의견은 옳고 틀리지 않다고 믿으며, 상대의 의견을 보충하고 싶어하는 '견(見)'의 욕망에 지배당하기 쉽다. 상대에게 의견을 인정받으면 견이 자극되기 때문에, 곧 자기 의견을 장황하게 늘어놓고 싶어진다.
<동정과 걱정을 적절히 해야 한다>
* 성실하게 다른 사람을 배려한다는 것은, 적극적으로 상대에게 무언가를 해 준다든가 걱정해 준다든가 하면서 끈적하게 들러붙는 것이 아니다. 나는 친절을 베풀려는 의도였다 해도, 내면에서 들끓는 번뇌 때문에 상대에게 쓸데없는 참견이 될 수도 있다. 좋은 나, 친절한 나로 보이려고 만들어낸 친절함은 본인도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상대에게 압박으로 다가갈 수 있다.
<격렬한 감정이 아니라 담담한 자비를 키운다>
<룰을 지키지 않으면, 마음이 부정적인 것을 끌어들인다>
* 불교에는 '선우(善友)'라는 말이 있다. 친구 중에서도 서로의 마음을 성장시키는 둘도 없는 친구를 가리키는 말이다.
* 만일 마음을 더럽히는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그 말을 멈추어야 한다. 마음을 더럽히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그 생각을 차단해야 한다. 마음을 더럽히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그 행동을 그만두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불교의 '계(戒)'로서, 모든 일의 기준이 되는 법칙이자 룰이다. 계는 사고, 말, 행동의 규율로써 마음이 어지러워지는 것을 막아준다.
<부모의 꼭두각시가 아닌 독립적인 아이로 키운다>
* 아이들은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칭찬받거나 꾸중을 들으면서 성장한다. 그런데 아이가 자기 말대로 하면 칭찬해 주고, 그대로 하지 않으면 꾸중하는 일이 패턴처럼 되풀이될 경우에 문제가 생긴다. 아이는 우리 엄마는 '엄마가 말한 대로만 하는 아이'를 원하니, '만일 내가 그렇게 하지 못하면 나 같은 것은 필요 없을 거야'라고 생각하게 된다. 부모에게 자신이 정말 필요한 존재라고 안심할 수 있게 해 주지 않으면, 아이는 아주 쓸쓸한 기분을 느끼게 될 것이다.
창찬받으면 자신의 가치가 높아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에, 아이 역시 칭찬 받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지금 나는 이것을 할 수 있으니 엄마에게 칭찬받는 것이고, 만일 못 하게 되면 사랑해 주지 않을 거야'라는 것을 무의식중에 느끼고 있다.
창찬하거나 꾸중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어느새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된다. 아이는 거절당하기 싫기 때문에 마음이 내키지 않는데도 칭찬받을 수 있는 쪽으로 자신을 무리하게 변화시킨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자신이 부모의 꼭두각시 인형이 된 듯한 기분이 들어 억울한 기분이 들기 시작한다. 결국 부모가 자신을 꼭두각시 인형으로 만들고 싶어하기 때문에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근본적인 외로움이 마음 깊이 새겨진다.
이런 상태를 완화시키려면 아이를 확실히 지켜보면서도 적당히 풀어주는 것이 좋다.
* 유아기에는 특별히 있는 그대로 아이의 모든 것을 받아들여줄 필요가 있다. 아이가 운다고 야단치거나 아이의 행동을 부정하지 말아야 한다...1~3세 경에는 아이와 부모 사이에 이런 기본적인 신뢰관계가 만들어져야 한다....'나는 너를 언제든 받아들인다'는 태도로 대하는 것이 기초적인 신뢰관계를 쌓는 데 아주 중요하다....신뢰관계가 돈독하려면, 아이가 태어난 뒤 몇 년이 아주 중요하다. 물론 그 후로도 무턱대고 친찬하거나 꾸중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 위압적으로 강요하거나 저자세로 치켜세우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교섭하는 자세로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 이것은 상대가 상사이든 부하이든 자식이든 마찬가지이다. 그들이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조건들을 준비해, 그 중 어느 하나를 고르게 하면서 설득해 나간다.
<남녀 간에도 설득으로 사랑을 키운다>
<항복하는 사람이 열쇠를 쥔다>
* 자기 마음을 잘 관찰한 뒤에 비뚤어지고 약한 부분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때나 설득할 때 의외로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런데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털어놓으며, 자신을 지배하는 번뇌까지 보여주는 것이 상대애게 항복하는 것은 아닐까? 마치 고양이나 개가 배를 내놓고 드러눕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막상 상대가 이런 식으로 항복하고 나오면 자기 고집을 부리기 어려운 법이다.
* 자신의 마음을 잘 관찰하면 번뇌를 쉽게 조절할 수 있다. 자신의 참모습을 알았기 때문에 변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걷는 자세가 흐트러졌다는 것을 알면, 그 자세가 바뀐다. 이야기 방법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면 그 방법이 바뀐다. 마음이 비뚤어졌다는 것을 알면 마음가짐이 바뀐다.
* 사람은 '앗!;하고 알아차리고 인지함으로써 강인하게 성장한다.
* 사람은 누구나 싫은 일에 대해선 무의식적으로 눈을 감고 모른 척하려고 한다.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지 않으려는 것이다. 이것이 곧 '업', 카르마의 구조이다. 우리는 그런 업에 이끌리지 말아 자신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싫은 부분도 잘 인지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것까지 상대에게 털어놔 보자. 아마 이런 과정을 통해 항복하는 용기가 생겨날 것이다.
* 누구든 상대를 이기고 싶어하므로, 항복하면 왠지 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오히려 먼저 항복한 사람이 열쇠를 쥘 수 있다. 이것은 바로 서로 속이며 엉클어졌던 관계를 다시 시작하게 해 주는 열쇠이다.
<<<제3장 대담 - 이케가야 유우지와 코이케 류노스케>>>
* 침묵이라고 해서 무조건 이야기하지 말자는 것은 아닙니다. 이야기하고 있는 사이에 마음속에서 생각의 잡움이 끓어오르지 않게 하자는 거지요. 즉, 생가의 잡음을 침묵시키자는 것입니다.
* 불교에서 깨달음의 과정은, 명상으로 집중력을 높여 인식 레벨을 잘게 나누어 인간이 본래 느끼는 자극은 고통이란 신호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일체개고'라고 하는데, '모든 것은 고통'이라고 인식하는 것이지요.
* 스스로 자해하는 버릇은 그 중 가장 나쁜 거지요.
* '이렇게 하면 스트레스를 피할 수 있다'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줄었다는 게 참 재미있습니다. 신체적인 스트레스도 결국 의식의 문제가 되는 거지요.
* 강제로 미소 짓는 표정을 지어도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더 재미있게 느껴집니다.
* 저는 원시 불교의 명상을 수행 중입니다. 일본에 전해진 선종교의 명상은 중국 노장사상의 영향을 받아 도교와 섞인 형태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변질되기 전, 원시 불교의 좌선명상은 아주 과학적이고 구조적이지요.
* 명상이 무엇을 위한 것일까 생각해 보면, 결국 목적이 아니라 도구입니다. 강한 집중이 습관화되면, 자신의 의식의 흐름이 보이고, 스스로 어떤 감정을 속이고, 어떤 정보를 마음에 새기는지를 깨닫고 변하게 됩니다. 또 이런 과정에서 과로움이나 즐거움에 대한 집착이 약해지면, 어려운 상황이 와도 반사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평상심을 유지하게 됩니다.
* 불교의 수행에는 계(戒), 정(定), 혜(慧) 라는 삼학(三學)이 있습니다. 계는 스스로 지키는 계율이고, 정은 집중하는 마음 상태를 말하며, 혜는 집중 상태에서 자기 마음을 관찰하는 지혜로움을 뜻합니다....이렇게 하면 자신을 얽어매고 있는 마음의 패턴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런 마음의 패턴을 무너뜨리고, 자기 속의 부정적인 감정을 털어내는 것이 바로 수행의 본질입니다.